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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이 만난 사람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또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란 인류정신사의 가장 큰 주제를 오해 테마로 한 인터뷰와 이에 대한 목사와 신부, 스님, 주역의 대가와 심리학자 등 10명이 모여 토론한 대담을 선보입니다.

“진화 못하는 인간, 인간과 종교의 위기”

조현 2011. 06. 02
조회수 38157 추천수 2

[인간은 변하는가] 연중 연속토론 첫번째

 

개인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마음 직시해야 진리에 접근

종교가 현대인 심리에 아부, 진실 말하지 못하는게 문제

 

   

<휴심정>이 연중테마를 진행한다.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않은가’란 주제다. 이 토론자들은 동서고금의 진리를 함께 탐구해온 ‘환희당 모임’ 멤버들이다. 토론엔 개신교에서 전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으로 씨알사상연구원장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겸 작은삭개오교회 목사, 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인 이정배 감신대 교수 겸 목사, 불교계에선 미국에서 20여년간 선(禪)을 전한 서울 육조사 선원장 현웅 스님, 실상사 화림원장을 지낸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스님, 가톨릭에선 예수살이공동체대표이자 소백산 산위의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 원불교에서 서울 안암교당 김제원 교무, 주역의 대가인 동방문화진흥회 청고 이응문 회장, 미국에서 종교학과 심층심리학을 공부한 서울대 ‘인문한국’(HK) 성해영 연구 교수 등이 함께 했다. 치열한 구도적 열정으로 자기 세계를 이루고서도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않은 이들의 대담은 ‘인간 변화’에 대한 기상천외의 마당으로 안내한다.

모든 종교와 교육은 거듭남과 깨어남, 변화를 지향한다. 성현과 철학자들은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가르침을 펼쳤다. 그러나 석가와 예수가 이 땅에 출현한지 2천여년이 지난 지금 물질과 과학의 변화는 매일 눈을 씻고 봐야할 만큼 빠르지만, 인간의 변화가 성숙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영장류라는 인간이 오히려 ‘지구의 암’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나아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의 분출로 지구가 폭발할 날이 멀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근본적인 가르침’이란 뜻의 종교(宗敎)가 속된 인간의 성숙을 견인하기는 커녕 종교가 속화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종교 비리’는 희귀한 뉴스가 아니다. ‘인간 변화’의 한 경지를 보여준 것으로 종교적 깨달음과 성령 은사를 앞세운 이에게 구름떼처럼 인파가 몰려들지만 결국 겉모습의 뒤엔 ‘사이비 교주’의 사욕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보여준 예도 적지않다.

대부분의 종교는 ‘변화할 수 있다’면서 개성과 욕망을 부정하는 혁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자는 ‘학의 다리가 너무 길다고 자르려하거나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어뜰리려는 짓’을 경계했고, 로마의 격언은 ‘천성은 아무리 쫓아내도 곧바로 되돌아온다’며 변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2천년 전 이슬람 수피들로부터 유래해 서구 기독교에 의해 널리 퍼진 에니어그램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9가지 유형의 하나로 이 성격 유형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끊임 없는 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개성과 마음을 그대로 존중해야한다는 심리학의 도전도 만만치않다. 인간이 내적 성숙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행복과 평화로 이끌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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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안암동3가 환희당에서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를 주제로 대담 중인
‘환희당 모임’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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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 첫째줄부터 김경재 목사, 이정배 교수, 현웅 스님, 법인 스님, 박기호 신부, 김제원 교무, 이응문 회장, 조현기자.

 


김제원 교무=큰 계기가 있으면 변화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태교로부터 10살 이전에 이미 80%가 고정되지않은가싶다. 한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의식 속에 어릴 속의 경험이나 상처나 아픔에 따라 성격이 형성되고, 어른이 되어선 교육이나 수행을 통해 변화된다고 하지만, 정말 변화가 쉽지않다. 따라서 교화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산모들을 공을 들이는게 더 낫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현 기자=2천년 전 중앙아시아 수피 전통에서 나온 에니어그램이란 성격 유형 분석 프로그램에 따르면 인간은 9개의 성격유형 중 하나를 타고나며, 이렇게 타고난 본성은 어떤 경우에도 달라지지않는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성격 유형 즉 자기 본성을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것 외에 행복해는 길이 없다.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있는 유형의 여자는 원더우먼 처럼 캐리어우먼으로 살아가라면 불행해질 수 밖에 없고, 캐리어우먼이 맞는 여성을 집에만 가둬놓아도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현웅 스님=어린시절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부부관계를 한 것을 보았다. 부부금실이 좋았는데, 어리니 신기하게 여기고 충격적으로만 받아들였다. 그 경험이 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훗날 불교를 만나서, 본성품(불성)엔 그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고 나서야 성에너지가 바뀌었다. 남녀 관계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여자를 대해도 당황하지않고 여유가 있어진다. 도의 꽃이 피면 성격이 어떻게 안변할 수가 있겠는가.

김제원 교무=다 변하지도 않고, 다 안변하지도 않는다. 수행을 통해, 본인의 원력이나 큰스승을 만나면 변화가 가능하다. 오래 신자들을 대하다보면 처음 올 때 어떤 유형의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이고, 어떻게 하겠구나를 알 수 있는데, 실제로 어김없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변화가 참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이응문 회장=주역에 산수몽괘가 있다. 감싸주고 포용하는 게 스승의덕이다. 스승은 어린 사람을 감싸주고 길러주지만, 가르칠 수없는 사람도 있다. 그 때는 끊어줘야한다. 도움을 주되, 욕심을 부리지말아야 한다. 사람 따라 유형별로 분수가 있다. 가르친 분의 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의 업장 때문이기도 하다. 옛 성인들은 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사람 막지않는다고 했다.

김제원 교무=에니어그램 같은 성격유형 프로그램인 ‘피플 스마트’를 배워 도움이 많이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조현 기자=불교에선 무아에 대한 깨달음을 중시하지만, ‘유아적 존재의 특성’(개성)을 알아야 한다. 사주, 관상, 체질, 혈액형, 문화적 특성, 환경, 교육, 유전자, 상처의 차이로 인해 다양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쌍둥이는 관상은 같은데 성격이 다르기고 하고, 사주 팔자는 같은데, 다르기도 하고, 형제가 한부모 아래서 같은 것을 경험하고도 전혀 다른 상처와 기억을 낳기도 한다.


현웅 스님=그래서 도를 깨닫기는 쉽지만 사람 알기가 더 어렵다는것이다.


법인 스님=수행은 끊임 없는 변화고 성숙이고 완성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 변화가 어려운가를 따져보면, 재물욕, 권세, 명예, 식욕 가운데 저는 재물, 권세. 식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돈도 경제적 행위를 안해서 그런지 그저 그렇다. 권력욕은 없었는데, 명망에 대한 것은 있는 것 같다. 선행이나 견해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은 성욕의 문제로 들어가는데. 단순한 섹스가 아니고. 심성이 어려서부터 결핍감이 있었던지 여성이 더 편했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에선 여자에 현혹되지않도록 여성을 해골로 보는 백골관을 하게 하지만, 솔직히 설득이 안된다. 오히려 여성을 긍정적으로 봐버리니 변했다.

이응문 회장=사람의 한몸에도 부성과 모성이있다.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품어주는 마음이 함께 있다. 한자로 ‘좋을 호’(好)자가 모자지간 아니냐. 어머니 뱃속에 열살동안 길러지는데, 이 때는 너무 좋은데, 태어날 때 모자가 분리되니 어머니도 아이도 악을 쓰게 된다.


이정배 교수=지금까지는 종교적으로 해결해볼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심리학의 도움을 많이 받을 필요가 있다. 프로이드 이론에 따르면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와 아이는 통일감이 있는데, 뱃속에서 나와서 아이가 크면 젖에 빨간 머큐롬도 발라 어머니는 아이 젖을 뗀다. 어머니는 사랑의 마음으로 밀쳐내지만, 아이는 죽음과도 같은 경험이다. 그 분리의 경험이 죽음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의 보상심리가 집착과 소유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여성이나 물질에 대한 집착도 그렇게 나온다. 그런 집착과 소유를 다시 통일의 경험으로 가져가느냐. 거기서 수행 수도가 필요하다.

현웅 스님=인정해버리면 편해진다. 종교인은 감정을 인정하지않고 위선적이 되기 쉽다. 기독교인도 하나님을 만나면 갈등이 풀어진다. 일찌기 오행을 주역선생에게 배웠다. 선도 단전호흡도 했다.주역의원리와 기의 체험도 했다. 황제내경도 공부했는데, 응아하고 태어날 때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 음양의 허실을 따라서 오장육부의 허실이 결정된다. 허실로 인해 결핍된 성격이 중용을 이뤄야 한다. 영성과 부처를 만나게 될 때 오장육부가 조화되어 태극으로 들어가고 음양이 화합된다. 프로이드도 경험은 많이 했는데, 완전하지는 않다. 도 깨닫는 것은 쉬운데, 유아상 사람 알기가 어렵다. 중생 무지막지하게 변하는 사람 알기가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종교라는 것은 그런게 약하다.


조현 기자=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에너지가 변하고, 성에너지도 변해 성욕도 감퇴하다. 그것도 내면은 아닌 외적인 것이고, 체질과 관상,사주, 유전자, 환경도 다 외적인 요소인데. 그러면 종교나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법인 스님=운명론인가, 결정론인가.


현웅 스님=그러면 오행은 잘못 본 것이다. 오행은 태어난 것 뿐이지 희노애락은 하나다. 우리 몸에 대한 부정관 만으로는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똥든 몸 안에 불멸한 신이있다. 부정한 것만 관하면 어두워져버린다. 화두선도 부모미생전 본래면목(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너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을 묻는데, 부모미생전에 있던 나가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내 생각 알기 전에 한생각 전이다. 내가 보기엔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잘못 믿는 경우가 많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젊은 사람이 아브라함을 아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아브라함을 낳기 전에 있었느니라’고 했다. 본래미생전의 본래면목의 성품을 확신한 것이다. 성품을 보면 운명론은 낙엽이 된다. 변해가는 것은 무상할 뿐이다.

이응문 회장=운명론보다는 운전론(움직임)이다.


김제원 교무=어릴 때 어머니의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6.25를 겪고, 정부도 경찰도 누구도 믿을 수없는 상황에서 가족 밖에 믿을 수 업는 상황이 이어졌다. 유전이 몇 %를 차지고, 부모 환경적 요인이 몇 %를 차지할까. 사회. 정치적으로 아주 불안할 때 종교가 두배씩 성장했다. 종교란 정치의 어두운 면을 먹고 성장하는 것인가. 결국 마음이 운용하는 것이니 마음 공부가 최고다고도 하고, 종교가 최고다고도 한다. 그런데 현실속에선 종교가 얼마나 대중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가.


조현 기자=종교나 교육이 목표로 해야 될 지점이 뭐냐. 99%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적인 충격에 의해 그런변화를 겪는다. 내가 취재한 고승들이나 영성가들도 일찍 부모의 죽음이나 재앙이나 전쟁과 같은 극한 외적 고통을 겪으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석가모니나 예수님처럼 스스로 선택한 수행의 길에서 변화를 모색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승들 마저 상당수가 외적인 상황, 충격에 의해 회심의 동기를 갖는다. 그럼 일반인들로서 가기 어려운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길은 놔두고, 맹자의 어머니처럼 외적인 환경 변화나 모색해가며 변화를 꾀할 것이냐. 그래야 더 행복하고 진화할 것이냐.


법인 스님=한 스님 이야기를 하겠다. 갓출가한 스님이었는데, 사람은 아주 건실했지만 불끈불끈 화를 잘 냈다. 얼굴은 늘 굳어있고 경직돼 있었다. 어느날 불러. 참선하지말라고 이야기 해줬다. 차라리 즐겁게 사는 법 좀 배워라고 했다. 좋은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면서 건강한 삶으로 바꿔봐라고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하니 많이 바뀌더라. 마음의 꼬임이 사라져갔다. 상대의 환경을 분석하고 그 상황에 맞게 해주는게 필요하다. 수행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으로서 행복할 권리가있는데, 종교나 참선의 외피를 써서 자신을 또 왜곡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정배 교수=종교인들이 스스로 올무를 만들어 버린다.


현웅 스님=과거 6개월간 거지 생활을 했는데, 종교고 화두고 다 놔버리니 가슴이 툭 놔졌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니 마음의 변화가 왔다. 그러기 전에는 안됐다. 나는 종교를 안믿고, 오히려 사람을 믿는다. 진실이 중요하다. 사람이 중요하다. 고승도 가짜들이 많다. 사람들이 너무 속고 산다. 진실해야 한다.

김제원 교무=책이 아니라 죽을만큼의 고통이나 병, 곤란을 통해서 사람이 크는 것 같다. 사람 키울 때도 너무 하우스 속에서 키우면 안크는 것 같다.

김경재 목사=어떻게 종교가 현실 삶에 공헌할 것이냐. 인도의 간디는 본래 겁이 많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위대한 영혼이라고 하지만, 어려서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돈도 훔치고, 아버지 주검 앞에서도 욕구를 못참고 섹스를 하기도 하고 성찰하고, 끊임 없이 진리 실험을 해서 성숙해진 사람이다. 요즘 종교는 고난을 면제해주고, 피해갈 수 있다고 유혹한다. 쾌감을 만족시키 위해서다. 그래서 종교는 흥해가는데, 내적 성숙을 못해간다. 저도 엄청난 충격이나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니다. 어려서 굶기도 하고, 처자식과 살길이 막막할 때 쌀 도둑질도 해보았지만, 생사를 넘는 고난은 없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아픔이나 고난의 역경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리에 대한 눈뜸이 있어갔다. 지금 우리 현대 사회의 문제가, 대통령 시켜주면 잘 먹고 잘 시켜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이 현혹되는 것처럼, 고난을 돌파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고난을 다 면해준다는 말에만 현혹된다. 많은 개신 교회들이 예수 하나님이 전부 죄를 면해주었으니 고난 옆에는 가지도 말라고 한다.

김제원 교무=누이 좋고 매부 좋아서 그런것 아닌가.


김경재 목사=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하면 좋은데, 그건 껍데기일 뿐이다. 루터도 처음엔 에라스무스와 가까운 인문주의자였다. 자기가 실존적으로 경험해본 체험적 진리로 말하면, ‘인간에겐 의지의 자유가 없다’고 했다. 유명한 ‘노예 의지론’이다. 인간의 성숙한 진아,범아,자유인의 귀속한 고등종교나 인문주의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노예적 근성으로 보는데, 그것은 인간의 선택의 자유,결단의 자유가 없다는 게 아니다. 프로이드처럼 과학적 분석을 안해볼 뿐이니 자의식이 지극히 작은 역할 밖에 안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불교에선 의식 아래층 육식,칠식,팔식까지 느끼고 깨달으면 말라식, 아뢰야식까지, 즉 무의식의 세계까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루터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개인 실존적으로 보면 자기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기독교적 표현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선 태초부터 있었던 참마음과의 만남,통합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혜라는 표현을 썼을 뿐이다. 오늘 날 종교가 현대인들의 심리학적인 욕구에 너무 아부하고, 진실을 말 안해준다. 그래서 종교도 장사가 잘 되게 하려고 한다.

법인 스님=실상사 도법 스님이 강남의 큰절에서 1년간 설교를 했는데, 강남 신도들이 불편해한다고 하더라. 자기들의 욕망에 맞춰줘야하는데, 그렇게 하지않으니까 자기 삶에 죄책감이 들게하고, 마음이 안편하다고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김경재 목사=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삼박자 축복(영혼구원, 건강구원, 부구원)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아니냐. 사람들이 쉽게 변하느냐, 나 자신도 수도를 통해 예수를 닮은 삶이 못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설교를 해보면 좋다고는 하는데, 내 집 새끼, 내 마느라도 안변하는데, 무슨 욕심을 더 내겠느냐.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집착이 변하지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 고독해진다.


법인 스님=본래적인 것 집착 말고, 사소한 습관 몇개라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김제원 교무=저도 설교를 할 때 ‘교무님 너무 마음이 아파요. 칭찬 좀 해주세요.’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야 기운이 살아서 변화가 될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뻘 짓거리로 소일하는 삶에 대해 어떻게 다 칭찬만 할 수 있겠는가.


현웅 스님=신앙은 사람과 사람의 신뢰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지, 어떻게 다 변화시킬 수 있느냐.


김제원 교무=나이 드신 분들은 설교를 좋아하면서도 잘 변화는 안된다. 그래서 젊은이들 교화에 나선 것이다.


김경재 목사=그러니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삶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현웅 스님=사람들이 옳은 말은 안들려고 한다.


이정배 교수=불교는 기독교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듣고보니 별로 다를게 없다. 저는 개인적으로 왕양명이라는 유교사상가를 좋아한다. 하버대 교수인 투웨이밍의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보면, 양명이 발견한게 양지(良知)인데, 불교의 불성(佛性)과 다름없는 것이다. 백사천란(백번의 죽을고비와 천번의 난관)의 고통을 겪으며 발견한 게 양지다. 간디가 자기 자신을 진리의 실험장으로 생각하고, 아버지 주검 앞에서 욕구 못참고 섹스했던 사람으로서 내적 고뇌를 통해 성장한 것처럼 왕양명도 백사천란을 거치며 자신을 실험했다. 베트남쪽까지 귀양을 가서 일자무식군들을 보며 그들의 순수성에 깃든 양지를 발견했다. 글자도 모르는 무지렁뱅이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 것이. 그래서 그래서 ‘인간은 선하다’는 유교의 이론을 굉장히 발전시켰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성직자들이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추기경 자신부터 반성했다. 일기에 ‘어느 날 보니 나는 손 하나 까딱 하나고 남들만 시키더라’고 스스로 놀라서 쓴 대목이 있다. 기독교도 불교도 종교인들이 다 제대로 길을 가고자하지만 그리 못하고 있다. 그래서 늘 왕양명의 백사천란이라는 말이 제 마음 속에 안떠난다. 자학적인 말이 아니다.


현웅 스님=3개월 전 어려서 함께 지낸 친척이 다녀갔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했더라. 그런데 순수했다. 그런데 못배운 자신을 자학한다. 못배운 사람은 순수한 면이 있는 반면 그런 자학과 자기 비하가 있고, 배운 사람은 거짓으로 물든 병이 있다. 하지만 못배운 사람들이 본성은 맑고 깨끗하더라. 못배운 이들은 내가 제대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배웠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러다. 배움은 테크닉이니 양지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요새 느낀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단순한 사람이 낫다는 것이다. 불교를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나쁜 것은 불교의 공도리를 너무 많이 알아 알긴 아는데 행동이 안된다는 것이다.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 자신은 바뀌지않으니 행복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차라리 무식한 놈이 낫다. 이 교수님 말씀한 양지가 드러나 얼마나 진실한가가 중요하다. 간디는 아버지 주검 앞에서 섹스를 하면서도 진실하게 사유한 것 아니냐. 잘못을 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깨우치고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중요하다. 깊게 사유해 힘을 얻고 깨친 사람들이 성인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일이다. 중이 바꿔져야 한다. 진실해져야 된다.


김경재 목사=종교인이 뭐냐. 사람을 중시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학교에서만 가르쳤지 목회 현장엔 오래 있지않았다. 목사의 마음을 제일 아프게 하는 것도 교인이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도 교인이다.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도 그런 말 했다. 장공은 10년 동안 경동교회를 키웠다. 그는 강당에 서서 예배보러 나온 교인들을 보면 눈물이 핑 돌아 설교를 시작하지 못하기도 했다. 뭐 목사에게 얻어들을 게 있다고 두시간 버스 타고 와서 아이들 옷한벌 사줄 돈도 없는 사람이 헌금이라고 가져오니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칼빈 계통의 교리중 본의 아니게 잘못 전달된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다. 원죄론이다. 루터나 칼뱅은 실존적으로 자신과 만나본 인간은 현실적으로는 그렇지만, 예수나 석가나 공자는 끝까지 양지를 믿었다. 예수님은 먹물 든 놈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 얘기했지, 농부나 빈자들에게 욕 한마디 한 적이 없다. 하늘의 법도를 쉽게 이야기하고, 너희들도 하느님 아버지의 천국을 누릴 수 있다고 격려했다. 기독교가 원죄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고승들이 중생들은 해탈하지 못해 무명 속에 있다고 내리 깔고 법문하는게 상례가 아닌가.

 

김제원 교무=원불교에선 인간의 정신 영역을 6단계로 나누는데, 세단계까지는 자기도 자기를 믿지말라고 한다. 항마 단계까지 가면 취사를 잘못하더라도 틀리지는 않는다.


현웅 스님=우리의 멘탈이 잘못되었다. 불교인들이 잘못한 것은 부정관이다. 기독교의 원죄관도 비슷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죄를 사한 것은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들이 법문한 것은 거의 탐진치 삼독 이야기다. 깨친 사람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먼저 한다.


이정배 교수=세상의 빛이라고 했지, 빛이 되라는 말은 안했다.


법인 스님=우리도 의사에 속하니, 진단을 정확히 해야하는데, <화엄경> 한구절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건데 매우 건강하도,부유하고 화목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병들과 패망하는 것을 보여줘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위해 나쁜 것을 보여줘서도 성숙시키기도 한다.


이응문 회장=보는 것이 주관과 객관이 있는데, 역경도 다 그 애기다. 내면을 여는 게 태극이다. 밖을 여는 것도 태극이다. 진리는 똑같다. 구하라 열리리라를 주역으로 보면 산뢰익괘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천지가 만물을 기르고 스승이 제자를 기른다. 그런데 주역 괘사를 지은 문황은 ‘너희들 신령의 거북을 두고, 왜 다른데를 보느냐’고 했다. 자기안에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근원 조종이다. 성인의 지극한 가르침을 설한다.


김경재 목사=진리를 관념 속에서 아는게 아니라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 기독교는 시골로 갈수록 강대상을 구약의 제사장이 들어가는 지성소로 여겨 일반인은 못들어간다. 그런데 설교를 하러 주일날 강대상에 올라가는 자신을 보면 요강 똥통을 들고 올라가고 있더라. 살가죽으로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똥들고 오줌 든 몸 아니냐. 프로이드가 리비도를 이야기 했듯이 성의 원액은 석유처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휘말유도 되고, 경유도 된다. 그것이 매말라버리면 설교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한다. 생리학적으로는 성기를 통해 정액, 정자가 나온다. 이론적으로 보면 심장은 가슴 뼈가 보호하고, 두뇌는 머리통이 보호하니, 그토록 중요한 것을 가슴 속에 숨겨두지않고, 오줌길에서 나오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종교가 성과 속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지만, 실제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현웅 스님=종교가 사람들을 더 어리석게 만든다.


이응문 회장=주역 첫번째 건괘 제일 위엔 항룡유회다. 맨 꼭대기는 세상에선 최고로 치지만, 맨 위로 가는 것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 나보다 더 높은 것을 용납하지않기 때문이다. 종교는 최고만 구하는 마루종 근본이다. 그 괘효는 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진퇴를 알아야 하는데 나아갈 줄 밖에 모르면 문제가 된다. 하늘은 반드시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하늘의 법도는 땅에서 펼쳐지고, 인간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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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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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변화 핵심은 채움 아닌 비움인간변화 핵심은 채움 아닌 비움

    조현 | 2011. 08. 02

    일찍이 본회퍼는 하느님이 인간 되신 것을 항차 인간을 神으로 만들기 위함이라 하였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의 고통 속에 늘상 함께 하듯 인간 역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