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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이중적? 그건 절도 마찬가지, 다만...

법륜 스님 2016. 01. 27
조회수 26880 추천수 0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절에 다니고 있는데 기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양주시 경복대학교에서 열린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입니다. 
  질문자는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혼자 절에 다니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희 집안은 다 기독교인데 저 혼자 버티면서 절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한테 빌면 원하든 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고 가족들이 강요하는 것도 싫어서 교회에서 등을 돌렸어요. 그런데 저 역시 염원이 있으면 부처님께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런 기복적인 면이 불교 이치상 어긋난다고 말씀하셔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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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하려고 굳이 교회에서 절까지 올 필요 있어요? 
 “이치로 따지면 기독교나 불교나 다 어긋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복을 받고 싶어 해요. 남의 복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복 달라고 한다고해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주는지 안 주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그걸 굳이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기복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인연과’에도 어긋나고, 예수님의 원래 가르침에도 어긋나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복을 받으려 들기보다는 복을 지어야 해요. 원래 기독교 가르침에 따르면 복을 짓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아야죠. 좋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대가로 받은 상은 작지만, 천국에 가서 받은 상은 매우 크다고 하잖아요. 이 말의 핵심은 많이 받고 적게 받고에 있지 않아요.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서 나중에 천국에 오면 큰 상을 내릴 테니 이 세상에서 작은 이득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와 같아요. ‘내가 복을 짓고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다’ 이걸 무루복(無漏福)이라고 합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가르침의 내용은 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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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 달라고 빌면서 부르는 이름만 부처님,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 사람의 심리는 똑같아요. 그런데 그거 하려고 굳이 교회에서 절까지 올 필요 있어요? 개인적으로 교회가 싫어서 절에 오는 것은 괜찮지만, 와놓고 하는 행동은 똑같잖아요. (청중 웃음)
 ‘하나님, 복 주세요’, ‘부처님, 복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되면 ‘가피 입었다’, ‘은혜 입었다’ 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면 ‘기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믿어봐야 소용 없네’라고 해요. 이 말은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나를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 부리듯이 부리려 드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내놔라, 안 내놓으면 너를 안 믿겠다’ 그건 신앙이 아니에요. 복을 비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속내를 살펴보면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다.

쥐가 쥐약 든 고구마 달라고 빈다고 해서 줘야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독교 신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죠. 감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복을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이미 받았기 때문에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복을 한량없이 받은 거예요. 이미 복을 받았으니 기도하면서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감사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분은 모든 걸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 마음도 이미 다 아시거든요.
 성경에 ‘기도할 때 은밀히 하라’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이크 대놓고 큰 소리로 기도해요. 그분이 전지전능하다는 걸 못 믿어서 조목조목 이야기 안 하면 잊어버리고,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나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그러나 그분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전지한 분이시잖아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눈이 천 개라서 다 보시고, 손이 천 개라서 다 구제하십니다. (청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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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분이 왜 내 요구를 안 들어주실까요? 쥐가 쥐약 든 고구마를 먹고 싶어 안달하는데 입이 안 닿아서 ‘하나님, 부처님, 이거 좀 먹게 해주세요’ 하고 빌면 저렇게 간절히 원하니까 먹도록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때로는 안 이루어지는 편이 좋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간절히 빌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결혼 생활도 골치 아프고, 간절히 빌어서 애 낳았는데 지금 애 때문에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기도할 때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보셔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나으면 그리 해주시고, 안 이루어지는 게 나으면 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도 감사하고 안 이루어져도 감사하니 신앙에 어긋날 이유가 없어요. 절과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전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천국에서 스님을 만나도 기뻐해야 사랑의 하나님
 제가 조계사에서 대학생들 지도 법사로 있을 때 한 학생이 시위를 하다가 3년 형을 구형받았어요. 그 어머니가 날마다 조계사에 와서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3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며 어머니가 크게 기뻐했어요. 그런데 그만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러자 그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내가 나오라고 빌어서 아들을 죽였다’며 울었습니다. 이게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塞翁之馬)’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게 꼭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더 큰 재앙을 피하려고 들어가게 된 건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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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어서 기도하는 우리는 부처님 혹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게 신앙 고백이에요. 질문자도 교회 가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든지, 절에 가서 절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계속 행복해지고 고민도 줄어듭니다. ‘문화가 달라서 나는 교회보다 절이 좋다’ 이런 건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교회는 사랑이라고들 말하는데 겪어보니 이중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서 싫어요.”
 “절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청중 웃음)
 “하나님의 가르침이 거짓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한다는 하나님이 안 믿는다는 이유로 불신자들을 불에 던져버리는 이야기를 듣고 환멸을 느꼈어요. 그 신이 과연 자비의 신인가 의문이 계속 들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힌두교이고, 기독교라 하지만 대부분은 유대교에 가깝습니다. 질문자가 다닌 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일 뿐 유대교라고 생각하면 돼요.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천당에 갔을 때 스님도 와 있다면 반가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교도가 여기 어떻게 왔지? 안 믿어도 오는데 괜히 믿었다’ 이러기 쉽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천국에서 저를 만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교도도 구원하시니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청중 웃음)

교회 다니는 손녀 합격기도 절에서 한다고 부처님이 미워할까요?
 크리스천들과 기독교가 그리 못 하는 건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원래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해요. 그러나 이건 인간의 문제이지,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에요. 예컨대 시어머니가 절에 지극정성으로 다니면서 정작 며느리 대하는 건 형편없다면 그 며느리는 절에 안 다닙니다. 반발심으로 교회에 가버려요. 질문자는 가족들이 교회에 극성이면서 실제 말이나 행동은 다른 걸 보고 실망했잖아요. 그건 인간의 죄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십니다. 질문자가 절에 좀 다닌다고 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벌주시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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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했어요. ‘스님, 하나 물어볼게요. 제가 고3 손녀 때문에 입시 합격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성취가 안 될 것 같아요. 손녀딸이 사실은 교회에 다니거든요.’ (청중 웃음)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아무렴 할머니 마음 같을까요? 고등학생이 교회 좀 다닌다고 해서 붙을 시험도 떨어지게 만드는 건 부처님이 아니에요. 그러면 대자대비하시다는 표현을 안 써야죠.’ 그러니 그런 거 걱정 마시고, 교회든 절이든 질문자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청중들도 공감이 컸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크리스천-부디스트’라고 뭐 문제 있어요?
   기독교인도 불경 보고 불자도 성경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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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조금 부족했는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우리는 종교에 대해, 세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다가가면 좋을지 추가적으로 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융합의 시대를 설명하면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사람들의 등장을 이야기한 부분은 청중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일단 결혼하면 남편이 신혼 첫날밤에 죽어도 평생 재혼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도 이혼하고, 재혼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도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 되는 게 불가능했지만 요즘은 다른 나라 사람도 될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미국 가서 살면 ‘코리안-아메리칸(Korean-American)’이라고 해요.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옛날에는 기독교 신자는 무조건 기독교만, 불교 신자는 무조건 불교만 믿어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 신자로 자란 사람이 불교를 믿어도 되고, 그 반대도 됩니다. 그걸 배신이라고 한다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부 배신자입니다. 조상들이 전부 유교 아니면 불교를 믿었으니까요. 나는 배신 안 했어도 어머니나 할머니나 증조할머니처럼 가족이나 조상 중 누구 한 사람은 반드시 배신했어요. 이걸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

그런 걸 배신이라고 한다면 한국 기독교인은 모두 배신자
 그러니 여러분들은 뭘 해도 다 괜찮아요. 기독교 믿다가 불교로 바꿔도 되고, 불교 믿다가 기독교로 바꿔도 되고,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어도 돼요. 이중국적과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일부 허용하게 될 거예요. 그것처럼 신앙은 기독교를 믿고 마음공부는 불교를 통해 하면 ‘크리스천-부디스트(Christian-Buddhist)’라고 합니다. (청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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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너무 가혹해요.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해온 토대인 기독교도 소중하고, 불법 공부도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어요. 맨해튼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에 가보면 크리스천-부디스트들이 많이들 공부하고 있고, 그 주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저도 거기서 강연을 했어요. 한편 신앙은 불교로 가지되 기독교 실천 활동이 너무 좋아서 기독교 신자가 된다면 ‘부디스트-크리스천(Buddhist-Christian)’이 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20년쯤 전에 중국에 가보니 공산당원들은 종교를 못 가진대요. 그런데 불교사상을 이야기해보면 마르크스 철학하고 유사한 면이 있잖아요. ‘세상이 다 연관되어 있다, 고정불멸하는 것은 없다’ 이런 원리가 비슷하다고 막 감동하기에 불교 믿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공산주의자여서 절대로 안 된대요. 불교 신자로서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공산주의자로서 불교 신자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옛날에 사회주의는 계획경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고 해서 사회주의가 시장경제 하면 수정주의자라고 비난받았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사회주의면서도 시장경제를 하잖아요. 그러니 공산당원 하면서도 불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년 전 당시에는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중국 공산당원들 중에서도 불교 신자들이 꽤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허용이 안 돼도 실제로는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종교 다원주의’라고 내치면 극단적인 근본주의에 빠져
 이걸 융합이라고 해요. 미래 학문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요즘 생물과 화학을 합쳐서 생화학이라고 하듯이 인문학과 자연과학도 융합이 되고, 종교와 과학도 융합되어 새로운 것이 나올 겁니다. 미래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 창조의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분열해서 장벽을 쌓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장벽을 허물고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시대예요. 이미 시대는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여러분 머릿속은 옛날 그대로 굳어 있어요. 저는 승려이긴 하지만 불교만 고집하지 않고, 종교인이지만 종교만 고집하지 않아요. 이렇게 앞서 나가니까 여러분이 강연장에 이렇게 찾아들 오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도 조금 사고의 폭을 넓히세요. 그런다고 자기 신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예요. 불교 신자로서 성경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성경인데 그걸 왜 안 봐요? 또 기독교 신자로서 불경을 봐야 해요. 인류의 귀중한 유산을 습득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예요. 앞으로 폐쇄적인 사람들과 개방적인 사람들이 경쟁하면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은 개방적인 사람이 승리합니다.
 남북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은 폐쇄적이고 남한은 개방적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한이 유리해져요. 그런데 개신교보다는 천주교가 앞으로 매력이 훨씬 커질 거예요. 천주교는 자기를 지키지만 그러면서도 좀 개방적이니까요. 개방적인 것은 자기와 다른 것 중에서 유리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계를 벗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여러분이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약간 복잡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해서 기독교 신앙에 어긋난다고들 하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너무 배타적이 되면 지금 무슬림들의 일부처럼 극단적인 근본주의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 차원을 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도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 정체성을 갖되 개방적인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개방성을 강조하다 자칫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흐지부지되기 쉽고, 정체성을 키운답시고 너무 배타적으로 하면 폐쇄적이 되어 발전하지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 자기 정체성은 갖되 개방적이어야 해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 모두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정토회 ‘스님의 하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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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하고, 정토회를 설립했다. 기아·질병·문맹퇴치운동과 인권·평화·통일·생태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실천하는 보살로서 2000년 만해상을, 2002년에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엔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 book@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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