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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날 설날엔

조성제 2014. 01. 29
조회수 12529 추천수 0

세배-임종진-.jpg

세배 연습하는 어린이들.  사진 <한겨레> 자료

 

응삼부-부적1-.jpg

액땜을 위해 붙이는 매 부적.

 

호작도-.jpg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대문에 붙였던 호작도

 

 

설은 어린아이들에겐 설레는 날이지만 원래는 ‘낯설다’, ‘새롭다’는 뜻이다.

 내가 어린 시절엔 설 전날 밤에 골목에서 복조리를 사라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시절에는 반드시 섣달 그믐날 아니면 설날이라도 복조리를 집집마다 몇 개씩 구입을 했는데, 복조리 장수들이 평소에 친분이 있는 집 담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갔다. 그리고 복조리 값은 다음날 세배하러 오면서 세뱃돈과 함께 받았다.


 복조리는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인 천선성의 조응을 받아 복을 많이 받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천선성은 하늘의 보물창고로 인간의 식록을 주관하므로 이 별의 조응을 받으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 그 당시 쌀은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집 안엔 복조리를 달아두고, 허리춤엔 복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제사를 마치고 나면 부모님이 술을 한잔씩 주셨다. 이 술을 도소주(屠蘇酒)라 한다. 도소주를 마시면 1년 동안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셨는데, 도소주는 나이 적은 사람부터 마셨다. 그 이유는 어린 사람은 한 해를 얻으니 축하해서 먼저 마시고, 늙은 사람은 세월을 잃으니 뒤에 마셨다고 한다.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은 뒤 <토정비결> 또는 그림으로 풀이한 당사주책을 펼쳐놓고 1년 운세를 미리 점쳐보고 희비가 엇갈렸던 재미도 쏠쏠했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도화서에서 수성(壽星)·선녀(仙女)·직일신장(直日神將) 등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고 서로 선물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세화(歲畵)라고 한다. 세화를 나누는 것은 장수와 건강과 행운 그리고 삿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어렸을 때 다락문에 호랑이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일반 여염집에서는 벽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였다고 한다.

 또 대문에는 용과 호랑이를 붙이고 닭은 측간에 붙였는데 닭이 울면 귀신이 달아나기 때문에 귀신이 가장 많이 있다고 믿는 측간, 즉 화장실에 붙인 것이다. 이런 문배를 붙이는 것은 질병을 물리치고 역신을 몰아내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설날 새벽에 거리에 나가 새소리를 듣고 1년의 운세를 점치기도 했다. 까치 울음소리를 들으면 풍년이 들고,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징조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의 까치는 농사를 망치고 전깃줄에 까치집을 지어 아주 미움을 받는 새가 되었으니 까치도 세월을 원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설날 저녁에는 할머니가 1년 동안 모아둔 머리카락을 버리지 않고 밤에 문밖에서 태웠는데, 머리털을 태우면 염병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대 외화벌이의 주 품목이 가발이 되면서 할머니들의 빠진 머리카락은 반찬값이 되어 식탁에 오르게 돼 이 풍속은 사라졌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어머니가 기둥에 채를 걸어두고 반드시 신발을 방에 두고 자라고 하여 누가 훔쳐갈까 염려해서 그런가 했지만 지금 알고 보니 바로 ‘야광귀’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야광귀’란 귀신이 내려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고 한다. 이때 신발을 도적맞은 사람은 그해 1년 동안 액운에 시달리고 재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풍속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야광귀를 막기 위하여 기둥이나 마당에 높은 장간(長竿)을 세워 채를 걸어두면 야광귀가 하늘에서 내려와 채를 발견하곤 채의 눈이 많으므로 몇 개나 되나 헤아리다 자꾸 헷갈려서 밤새 채만 헤아리다 닭이 울면 미처 신발을 훔쳐가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해학이 있는 귀신 퇴치법이다. 하지만 그 시절 새 신발을 훔쳐가는 도둑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신발 도둑이 바로 야광귀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설날이 지나면 삼재풀이와 홍수막이로 무당집이 바쁘다. 홍수막이는 2대 단군인 부루단군이 도산회의에서 우사공에게 9년 홍수를 다스리고 모든 액도 막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면서 시작된 것으로 1년 동안 부정한 것들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액막이 치성이다.


 삼재풀이는 9년마다 드는 삼재를 피하기 위하여 무당집에서 간단한 풀이를 하고 삼재부적인 응삼우(鷹三羽·머리 셋 달린 매 그림)를 그려서 문 위에 붙이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갑오년 삼재가 드는 띠는 작년과 같이 토끼·양·돼지띠가 되는데 2015년까지 삼재다. 삼재는 재앙이 많다고 하지만 삼재에 해당하는 띠라고 해서 너무 떨 필요는 없다. 필자도 삼재가 든 해를 수없이 지나왔지만 삼재가 든 해라고 특별히 어려웠던 것 같지는 않다.  삼재가 드는 해는 다른 해보다 매사에 더욱 조심하라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정월의 첫 토끼날은 상묘일(上卯日)이라 한다. 이 날은 남자가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남자가, 특히 가장이 대문을 열어야 1년 동안 대문으로 융성한 기운이 많이 들어와 집안이 번성한다고 했다. 올해 상묘일은 양력 2월1일이다.


 마지막으로 복조리에 아홉 집에서 밥을 얻어 화장실에서 몰래 먹으면 1년 내내 배가 부르다고 하는데, 이런 행위는 화장실에 있는 ‘측신’에게 대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늘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밥을 짓지 않으면 먹을 밥이 없듯이 복을 짓지 않고 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인과를 안다면 적어도 자녀에게만이라도 ‘복 많이 받아라’보다는 ‘복 많이 지어라’는 인사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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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53년 대구생. 공무원을 하던 중 굿판을 본뒤 모든 것을 던지고 무속 세계에 뛰어들었다. 2000년 <무속신문> 창간해 편집국장을 지냈다. 무천(舞天)문화연구소장으로서 무속의 근원을 우리 민족의 상고사 속에서 찾고 있다. 저서로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 <상고사 속의 무속이야기><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물의 상징성>, <신을 조롱하는 무당>, <무교이론ⅠⅡ>가 있다.
이메일 : muam777@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uam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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