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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마음 먹은뒤 따라오는 억울함 어떡해

박기호 신부 2013. 08. 06
조회수 13998 추천수 0

 

호사종마(好事從魔)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 36~43).”

 


'가라지'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중학교 때까지 농사하는 집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웬만한 건 아는데... 논에는 '피'라는 게 있지요(표준어로는 뭐라는지?) 도시 대학생들의 농촌활동에는 피를 뽑는다고 논에 들어가서 벼를 뽑고 옥수수를 풀로 알고 뽑아버리는 학생들이 늘 있습니다. 잎이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린 거죠.


벼는 대공 마디가 없고 피는 벼보다 키가 크고 꽃도 일찍 피어나니까 성장한 다음에는 다 구분이 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어서 뽑는다는 어렵습니다. 농부들 눈에는 구분이 되지요. 피는 거름만 실컷 빨아먹은 기생초입니다. 하여간 가라지건 피건 개망초건 명아주건 농부는 심지도 않았는데 잡초는 왜 그렇게 잘 자라는지? 아마도 인간이 돌보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서 돌보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호사종마(好事從魔)',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끼게 마련이지요. 지금도 우리 마을 가족들은 잡초와의 전쟁이예요.

 

잡초제거한겨레박승화기자.jpg

*잡초를 뽑다 쉬고 있는 농부. 한겨레 박승화기자


예수님께서 농부가 기다리는 곡식(벼)과 잡초(피)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농부가 애써 심고 가꾸는 곡식은 하늘나라의 이상과 가치이고 이성적 생각과 태도입니다. 마을의 삶으로 볼 때는 좋은 생각, 겸손, 헌신, 마음 열기, 양보, 희생, 용서, 배려심, 솔선수범 같은 덕목들이겠지요.

우리는 매일 생활을 성찰하면서 그런 공동체적 가치들의 성장을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하고 겸손과 양보와 배려로 희생하려면 꼭 알 수 없는 어떤 속삭임이 있는 겁니다.

'왜 맨날 나만 양보해야 하지?' '이러면 날 호구로 알거야!' '이렇게 희생해주면 그에게 나쁜 버릇이 될거야?' '나도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해!' '나도 성깔 있다는 걸 알게 해줘야지!'

이런 속삭임이 일어난단 말이지요. 교오한 마음과 시기와 질투, 욕심과 인색함의 타당한 이유들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거지요. 좋은 생각을 곁에는 슬그머니 어느 새 감정의 한 편에 앉아있고 냄새를 피운다는 말입니다.


그런 나쁜 감정이나 생각은 좋은 생각과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차, 공간차를 두고 나타나기도 해요. 대체적으로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버젓이 버티고 앉아있는 형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악마가 그렇게 한 것이라 합니다. 악마란 좋은 마음 좋은 결심 좋은 생각 바로 뒤에 그림자로 붙어 있고 친구인척 늘 곁에 얼정거린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입니다. ‘호사종마(好事從魔)’ 라 하겠지요. ‘좋은 생각엔 늘 욕심도 따른다!’

공동생활에서 내 생활태도에서 칠죄종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나 본능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은 내 안에 악마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내 성품에 하늘나라도 있고 악령의 심보가 있다는 말인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상대방도 누구나! 이걸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에서 '가라지' 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산위의 마을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콩밭매는 아낙네야~' 노래를 수십번 불러야 한 여름을 보냅니다. 김을 매더라도 풀이 작을 때면 대충 뽑기 쉽고 성큼성큼 뽑을 수 있지만 대공이 굵어지면 나무 뽑아내듯 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예취기를 쓸 때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가치를 부정하는 가라지의 모습들은 어렸을 때 뽑아버려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뽑는다는건 몸시 힘들기 때문에 수도원도 신학교도 공동체도 어린 시절에 선택해 어린 풀을 뽑고 좋은 모종을 정식하는 것이 좋겠지요. 예의염치(禮義廉恥),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기본적 소양과 인성교육은 어른이 되면 이미 늦거나 어렵다는 말입니다.

 

 

영화집으로.jpg

*영화 <집으로> 중에서

 

 

그런데 좋은 것 나쁜 것 가릴 것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생활을 하더라도 종마(從魔)가 없고 숭고한 덕목들, 하늘나라 자녀, 밀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게 가능할까요?

그걸 완덕(完德: 아빌라의 데레사)의 상태, 혹은 합일(合一: 십자가의 성요한)이라고 합니다. 공자께서도 “七十而, 從心於欲 不足踰拒(칠십에 이르니, 욕심을 부려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더라).” 하셨습니다. 성현들이 그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충분히 우리에게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최선 최고의 경지는 '좋은 습관' 입니다. 습관이란 행동이 스스로를 기억하여 생각이 자동 센서화 된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에는 유혹이 많고 시험에 들기 쉽지만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은 이미 행위가 이루어져버렸기 때문에 악마도 기회를 놓쳐버리고 어떻게 해보려면 고심해야 하겠지요. 발붙일 기회를 자주 놓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여, 오늘도 좋은 습관! * (201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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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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