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성직자보다 성직자다운 전기공

박기호 신부 2013. 11. 06
조회수 24642 추천수 0


 [나를 울린 이사람]


전기공사-박종식-.jpg

한 전기공을 공사를 하는 모습. 사진 박종식 기자



박기호 신부-.jpg

필자인 소백산 산위의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   사진 조현



‘야곱’ 형제를 만난 것은 본당 주임신부 때였다. 고압 전신주에 올라가 일하는 노동자였는데. 어느 날 감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수개월 뒤 지체장애자가 되어 돌아왔다. 불편하고 답답한 몸도 추스릴 겸 함께 낚시를 가곤 했다. 입질이 끊겨 막걸리를 한잔 나눌 때 그가 말했다.


 “막걸리만 보면 생각나요. 어릴 적 광산촌에 살던 우리는 너무 가난했어요. 어머니가 양조장 술지게미를 얻어다가 죽을 써주곤 했는데, 한번은 우리 형의 담임이 형을 보고 ‘술을 먹고 왔다’면서 마구 때렸어요. 나는 화가 나서 선생님을 찾아가 막 울면서 항의했었어요. 신문까지 났다 하더라고요.” 아 순간, 청년 시절 그 기사를 보며 눈물을 훔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야곱 형제는 나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심어준 사람이다. 순박하고 정직하면서도 성실한 그를 대할수록 성자가 따로 아니다고 느껴진다. 학교를 못 간 소년으로 상경했던 그는 신문팔이로 시작해서 전기공이 되었다. 집안의 기대주였던 형은 총학생회장도 했다. 장애자로 살아오며 병을 앓던 여동생이 있었는데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의 죽음에 어찌 그렇게도 서럽게 울던지… 노동일로 모은 월급은 종종 형님의 카드빚과 노모를 돌보는 데 들어갔다.


 묵묵한 그는 정석으로 사는 순리의 사람이다. 일용노동자라면 소득신고도 제대로 안 하던 시대에 그는 수당까지도 모두 신고할 만큼 원칙주의였다. 감전 사고를 당했을 때 납세 근거에 따라 고액의 산재보상을 받게 되어 집도 마련했으니 인과응보다. 그에겐 자녀가 없었다. 좋다는 보약도 치료도 효험이 없었다. 직업병이 분명했지만 그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상의 끝에 딸을 입양해서 살고 있다.


 하늘의 축복이란 자신의 삶으로 짓는 것이라 믿게 된다. 지금도 종종 우리 공동체를 찾아온다. 그를 만나면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예감을 받는다. 누가 사제인지 모르겠다. 


 박기호 신부(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 마을)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음식과 돈에도 혼이 있단다음식과 돈에도 혼이 있단다

    박기호 신부 | 2018. 09. 20

    내가 먹는 음식과 옷과 신발, 집, 그 모든 돈은 무엇에서 오는 거지?

  • 세상에서 가장 큰 엄마의 사랑세상에서 가장 큰 엄마의 사랑

    박기호 신부 | 2018. 08. 31

    지상의 인간들은 쉼없이 사랑을 말하지만 가장 완벽한 사랑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뿐입니다.

  • 내 것과 내게 속하지 않은 것내 것과 내게 속하지 않은 것

    박기호 신부 | 2018. 08. 13

    기도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아는 것입니다.

  • 노동을 잃어버린 인간노동을 잃어버린 인간

    박기호 신부 | 2018. 06. 03

    수 만 년을 통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삶을 건설하고 진화시켜온 힘은 ‘노동’이었다.

  •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박기호 신부 | 2017. 12. 25

    우리 시대의 광야 운동“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오?”(요한 1,19-28)세례자 요한이 평범한 주민이었다면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요?’ 질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낙타 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식사도 못되는 들꿀 정도를 먹으면서 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