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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같은 내 친구 서기호 판사

2012. 02. 20
조회수 21171 추천수 2

 

거북이 같은 내 친구, 서기호 판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동료였던 류달현 신부의 고백
newsdaybox_top.gif 류달현 신부 btn_sendmail.gif . newsdaybox_dn.gif

 

 

 

서기호판사-.jpg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서기호 판사 연임배제시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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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달현 신부.

서기호 판사. 요 몇 주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하는 이름이다.

서기호 판사가 10년에 한 번 하는 판사들의 재임용 심사에 심사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 결국 재임용에서 탈락되고 만 순간까지 그 이름은 내게 부끄러움으로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일에 관심은 있으나 행동하지 못 하고 있는 내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세상의 불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못 하고 있는 내게 그 이름은 무거운 십자가가 되어 말을 건다.

사제인 내게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많은 신부님들이 4대강에 반대하고, 두물머리에서 생명과 평화를 위한 미사를 바칠 때, 강정마을에서 신부님들, 수녀님들, 평신도들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 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되면서 현실을 외면하려 하고 편하고 쉬운 길을 걸으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괜히 나서서 찍히면 인생 끝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애써 안주하려고 했다. 그런 내게 그 이름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을 걸어온다.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심사와 탈락의 과정을 마음 아프게 지켜보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성경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사무엘 하권 12장 15절 이하에 나오는 나탄 예언자와 다윗 임금의 이야기이다.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 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이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나탄 예언자는 다윗 임금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일을 질책한 것이다.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가난한 이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은 부자의 모습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 정의로운 판사를, 소통하려고 애쓰는 판사를 거부하는 사법권력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임금의 잘못에 대해 목숨을 걸고 간하는 예언자의 모습에서 사법개혁을 위해 애썼던 서기호 판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너무나 큰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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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호 판사   사진 <한겨레> 자료



'거북이'라 불리던 내 친구 서기호
느리지만 한발 한발 예수를 따라 걷기 위해 애쓰던 사람

서기호 판사, 서기호 분도(천주교 세례명으로 베네딕또 성인을 말한다) 아니 내게는 더 친숙하게 ‘거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를 만났을 때도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와 기호는 88학번으로 같은 동아리인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그 당시 팍스라고 불렸다) 소속 회원으로 만났다. 그 당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와 기호도 불의가 횡행하고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침해되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피폐함을 보면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 신앙을 가진 젊은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대학생 연합회 서부 지구장과 회장으로 만나 당시의 불의한 사회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의 사회로 바꾸고자 하는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 기호는 회장으로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나, 나는 그 당시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의 임원으로 활동할 때도 지금의 나처럼 조금은 미지근하고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늘 어쩡쩡하게 함께하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회의도 빠지고 집회도 빠지고 불성실하게 임원의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기호는 내게 다가와 질책이나 면박이 아닌 따뜻한 위로의 말과 행동으로, 나도 힘들지만 우리 함께 해 보자고 어깨를 두드리는 겸손하고 인정 많은 친구였다. 늘 선두에서 우리들을 지도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그 별명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한발 한발 새로운 세상, 가난한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천대받지 않는 세상, 하느님의 말씀처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참 많은 친구라는 것과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그 애정과 연민의 바탕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심이 있었다.

기호는 늘상 젊은 청년 예수의 삶을 지향하고자 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히 그 당시 소외받고 버림받았던 죄인들, 병자들, 창녀들, 세리들에게 가지셨던 애정과 연민의 마음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친구였고, 불의를 향해 비록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외치는 친구였다. 나도 기호 덕분에 아무 탈없이 서부지구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임기가 끝나자 나는 그동안 생각하고 있었던 성소에 기꺼이 응답하고자 신학교를 들어갔고, 기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사제가 되었고, 기호는 판사가 되었다. 서로 바쁜 와중에 만날 시간은 없었으나 간간히 메일을 주고 받으며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6년 동안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해 7월에 비로서 기호가 판사로서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여전히 20대의 열정을 잃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 뿐이었다. 6년 동안의 프랑스 생활은 내게 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맘은 있으나 여전히 행동에는, 실천에는 굼뜨고 게으르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그의 이름을 뉴스에서 만났고 또 다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기 위해...

기호는 내게, 내가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 할 때, 세상의 일에 무관심할 때, 나만의 안일함에 빠져있을 때,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의 아픔에 눈을 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일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친구, 바보스럽게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더 돌보려고 했던 사람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어떻게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지.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지를 말이다.

이제 나는 일어서련다. 서기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련다. 그동안의 무관심과 안일이 세상을 더욱 불의하게 만들었음을 고백하며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켜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젊은 시절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힘이 되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로 서기호 판사의 판사 생활이 끝난다. 누구보다 올바른 판결을 하려하고, 재판에 관계된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사법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한 판사를 우리는 떠나보낸다. 그 판사를 지켜주지 못 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오늘이다.

류달현(베드로) 신부 (의정부교구 신곡1동 협력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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