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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 준이를 화장하던 날

김기석 목사 2013. 08. 28
조회수 12441 추천수 0

[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여섯 살 준이를 화장하던 날

김기석목사청파감리교회.jpg

 

아주 오래전 전방부대의 군목으로 일하던 나는 국가와 신앙의 갈등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많은 군목들이 병사들을 대상으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물론 별다른 갈등 없이 자기 신념에 따라 그 지시를 수행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자리에 서라는 복음의 요청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응답했던 이들을 용공 혹은 빨갱이로 차마 매도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부 간부들은 나에게 수상쩍은 눈길을 보냈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그때 부대 정문 앞 장교 숙소엔 꼬마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주는 군목 아저씨를 좋아해 주었다. 내가 눈에 띄면 아이들은 어디선가 달려와 나를 에워쌌다. 싹싹하고 명랑한 여섯 살배기 준이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쪼르르 달려와 “목사님~” 하고 안길 때마다 외로움을 떨치고,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그런데 준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늘 숨이 차 헐떡거렸고, 푸르스름한 손끝은 뭉툭했고, 입술도 파랬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준이는 자기 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아휴,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고 말해 가슴을 찢어놓곤 했다. 아이를 고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고, 어느 의료기관의 도움으로 미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왔다. 준이는 이제 제 숨을 쉬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준이 아빠가 전화를 걸어왔다. 준이가 떠났다는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준이를 화장하던 날 보슬보슬 눈이 내렸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아이를 강물에 띄워 보내면서 준이 엄마는 “준아, 이제 좋은 세상에 가서 편히 쉬어”라고 말하며 울었다. 성탄절 전날 오후였다.

 

마음이 스산해질 때면 달려와 내게 안기던, 아니 나를 안아주던 준이 생각이 난다. 그 작은 손의 위안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고한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신학을 생각한다.

 

편집화장터영화밀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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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
청파감리교회 목회자. 그리 큰교회는 아니지만, 교인들이 성서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니게 하고, 냄비같은 신앙이 아니라 무쇠솥처럼 은근하면서 끈기있고 깊이있는 신앙을 갖도록 이끌고 있다. 생각이 깨인 젊은 기독교인들의 멘토이다.
이메일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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