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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가 싸다했더니 ‘꾼들의 명소’ 였다

조현 2008. 08. 20
조회수 40057 추천수 0

[인도 오지 순례] ⑧ 마리화나 상인 우탈리 <상>

 

끝내 ‘한 모금’도 안 하자 폭포 구경 꼬드겨
갈수록 어두컴컴한 외진 산길, ‘이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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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는 아름답다. 인도에선 이상향인 샹그릴라로 그려지고, 서양인들은 '인도의 알프스'라고 부른다.

 

마날리란 이름은 원래 '마누의 고향'이란 뜻이다. '인간'이란 뜻의 마누는 인도 신화에서 인류의 시조다. 그 이름을 딴 곳답다.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곳을 다녔던 한 스님은 내게 인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 마날리였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래서 인도에 가기 전부터 난 히말라야의 첫 여행지로 마날리를 꼽고 있었다.

 

인도의 알프스라 불리는 아름다운 마날리

 

마날리 시내에서 4km 떨어진 비쉬쉿에 오토릭샤로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우탈리였다. 우탈리는 그의 가명이다. 오토릭샤가 마을 가운데 있는 힌두사원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좋은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30~40대로 보이는 그는 얼굴이 유난히 검고 눈동자는 약간 취한 듯했고, 허리는 구부정한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어 도대체 품행이 방정맞아 보였다.

 

그가 못미더웠지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달리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갔다. 생각보다 훌륭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앞산엔 정겨운 토속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엔 설산까지 보였다. 그리고 바로 앞엔  마을 노천탕이 있어 몇 발짝만 나가면 온천까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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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까지 딸린 방이 100루피라니 '이게 웬 떡이냐' 싶었으면서도, 괜히 한 번 더 으름장을 놓아 봤다. 80루피로 안 깎아주면 다른 집으로 가겠다고. 그랬더니 "그렇게 해 줄 테니,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말해선 안 된다"며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쉿~" 소리까지 낸다. 다른 여행객들에게도 똑같이 취했을 그런 모션이 우습기만 했다.

 

2층 방에 짐을 풀고 얼마 뒤 베란다 의자에 앉아 설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탈리가 두 사람과 함께 베란다 저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40~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수염이 긴 히피 같고, 20~30대로 보이는 여자는 기타를 들고 있는데 발랄하고 야무져 보였다. 베란다에 걸터앉거나 바닥에 철퍼덕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한 담배를 돌아가며 피우는 듯했다.

 

우탈리가 내 쪽을 보더니 "담배 피우느냐"고 물었다. 나는 "안 피운다"고 했다. 난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는데 6년 전 담배를 끊었다. 인도에 오기 전 번민을 겪으면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만, 하루에  1~2개비 정도였고, 인도에 오면서 그나마 끊은 상태였다.

 

우탈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정말 담배 안 피우느냐"고  다시 물었고, "난 정말 안 피운다"고 답했다. 이번엔 그와 함께 있는 두 사람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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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기로 했다던 일본인도 없고 도중 만난 서양인도 거절

 

우탈리와 그의 친구들이 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는지 며칠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알고 보니 비쉬쉿은 여행객들이 마리화나(대마초)를 피우는 명소였다. 여행객 뿐 아니라 마을 어느 집이나 마리화나를 키우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말려 담배처럼 피우고 있었다. 인도도 마리화나는 금하고 있고, 가끔씩 철퇴를 때린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외국 여행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엔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난 그것도 모른 채 '마누의 전설'만을 되새기며 앉아 담배도 안 피운다고 했으니 "그런 네가 여기는 왜 왔느냐"는 눈초리를 받았던 것이다.

 

우탈리의 주업은 마리화나 장사였다. 그는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도 종업원도 아니었다. 그렇게 손님을 끌어주거나 차편이나 트레킹을 안내해주고 푼돈을 얻어서 사는 이였다.

 

나를 이 게스트하우스에 소개한 '인연'을 빙자해 그의 공략은 계속됐다. 어느 날 밤엔 갯엿이나 절편처럼 생긴 조그만 덩어리를 들고와선 "아주 질 좋은 하시시여서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나를 꼬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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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게 마리화나를 팔아먹기는 애시당초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하루는 "마날리의 트레킹이 아주 좋다"며 "500루피(7천~8천원 가량)를 내면 자기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트레킹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우탈리가 영 못 미더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우탈리는 오후 5시께 다시 와서 "뒷산 쪽에 멋진 폭포가 있는데, 일본인 친구 두 명을 그곳에 안내해주기로 했다"면서 나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멀리서 폭포만 바라보고 폭포에 갔다고 한다"며 "폭포가 떨어지는 산 위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돈도 받지 않고 폭포를 제대로 구경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난 마냥 거절만 할 수 없어 폭포를 안내받은 뒤 팁을 줄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함께 갈 일본인이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폭포 가는 길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가던 중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 나온 우탈리는 "일본인들이 어디 가고 없다"면서 "우리끼리 가자"고 했다. 둘이만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마뜩치 않았다. 산길로 접어들자 서양인 남자 한 명이 산책 중이었다. 우탈리는 안면이 있는지 그에게 인사하며 "함께 폭포에 가자"고 했지만, 그도 역시 우탈리가 못미더웠던지 "내일 따로 가겠다"고 거절했다.

 

앞서 가던 그가 가끔씩 힐끔 돌아보면 가슴이 덜컹

 

난 인도의 현지 한국인으로부터 "얼마 전 한 한국 여행객이 행방불명됐다가 한참 만에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적이 있고, 한 스님은 게스트하우스에 배낭 등 물건을 그대로 둔 채 나갔다가 3년째 행방이 묘연한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행객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몇백달러 또는 몇천달러만 손에 넣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객을 상대로 한 범행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외국인 여행객도 없는 곳에 혼자서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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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입은 뒤에 후회한들 무엇하랴. 그런데도 둘 만의 동행이 못내 불안하면서도 쉽게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소가 코뚜레에 끌려가듯 험준한 산길을 올랐다. 

 

이제 사람이라곤 전혀 없었다.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이 시간에 이곳에 올 리가 만무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나무에 가려 산은 어두컴컴했다. 잡목들이 길을 덮어 길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인도의 후텁지근한 날씨는 한국 남자를 맥 풀리게 하기에 적당했다. 숨은 턱에 차올랐다. 아무 말 없이 앞서 가던 우탈리가 가끔 뒤를 돌아 힐끔 나를 쳐다보면 가슴이 뜨끔했다. 그가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부는 순간 어디선가 여러 명이 칼과 도끼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우탈리 혼자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여러 명이 흉기를 들고 나선다면 이 외진 외길에서 활로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온라인뉴스팀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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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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