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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더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조현 2008.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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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지 순례] 스피티 ②

 

‘신의 대리자’라도 추운 겨울에 '토굴'로 이동
평등 추구하는 사찰안에서 가문따라 배움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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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베르를 출발한 뒤 끝없는 히말라야의 민둥산을 달렸다. 차도 지칠 때쯤이면 지구가 끝나는 지점인 듯한 험준한 곳에 천년 전 흙으로 지어진 티베트 절들이 있었다. 흙으로 지어진 사찰들이 이렇게 천 년 이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구름도 이곳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천년 넘게 비가 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사막과 다름없이 나무와 풀들이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신은 살지만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신의 대리자와 같은 이가 부처나 보살, 고승의 환생자라는 린포체다. 그러나 어느 사찰에도 린포체는 없었다. 영하 20~4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을 피해 린포체들은 델리나 다람살라에 있는 '토굴'로 옮겨간 것이다.

 

구름도 넘지 못해 천년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 곳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

 

춥고 배가 고파야 도를 닦을 마음이 일어난다는 공자의 말이다. 도를 닦을 마음은 고사하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서 어찌 민초와 중생의 고통을 헤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오지의 절엔 동자승들이 넘쳐나는데, 대부분 먹고살기도 힘에 부친 부모들이 입 하나 덜고 그나마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보낸 이들이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과 달리 출가 전에 가문이 출중한 아이는 출가해서도 인도 남부의 유명 강원에 유학을 보내 공부를 계속 시키지만, 출가 전 천대 받던 아이라면 이곳에서도 제대로 경전 공부도 못해보고 불목하니 (머슴)같이 평생 뼈 빠지게 일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은사가 누구냐, 문중이 어디냐에 따라 종단 내 출세와 대우가 달라진다. 더구나 비구니 사찰에선 힘깨나 있는 스님의 딸을 비롯한 엘리트만을 공주처럼 떠받들어 키우는 반면 내세울 것 없이 힘들게 살다 출가한 이들은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부엌데기처럼 취급하던 예가 적지 않았다.

 

'모든 중생에 불성이 있다'며 모든 생명의 평등의 기치를 든 붓다를 따른다는 불교 사찰안의 이런 모습에 내 가슴도 히말라야의 사막처럼 허허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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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웅대한 절인 키곰파에도 린포체는 델리로 옮겨가고 없었다. 남은 동자승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절 마당에서 신나게 크리켓을 하고 있었다.

 

당카르로 향하는 길은 더욱 가팔랐다. 산은 돌과 흙만이 앙상하다. 수천 수만 수백만년동안 융기되고 침식된 형상들이다.

 

어떻게 저런 곳에다 절을 지을 수 있었을까. 가파른 산 위를 오르고 또 오르니 멀리서 그림 같은 당카르곰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메마른 산 절벽에 드라큘라 백작의 산장처럼 서 있는 곰파들이 '유령의 집'같다.

 

먹을 게 없어서 고기 먹는 스님, 근데 고기도 없다

 

이곳은 토사가 단단하지 않아 간혹 도로가 무너져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런 흙들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천년 넘게 버텨왔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지어져 흙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보이지도 않는 절벽 아래로 거꾸러질 법한 곰파의 2층을 오를 땐 흙 계단이 "삐거덕, 삐거덕" 움직여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카르곰파엔 역시 스님이라지만 머슴이나 다름없이 일하는 이들만 5명이 남아 겨울을 나고 있었다. 티베트 절에선 달리 먹을 게 별로 없는 환경 때문에 육식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고기 맛을 본지도 오래였다.

 

일을 끝낸 이들은 잠자리이자 부엌으로 쓰이는 토굴 같은 집으로 모였다. 이들은 이곳에 둘러앉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낡은 라디오를 통해 세상의 소식을 듣곤 했다. 이들은 승복도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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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며칠 동안 주로 이 집에서 이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일만 해서 툽덴 쉬랍은 나보다 한 살 적었지만 벌써 무릎과 허리 통증이 심해 고통스러워했다.

 

"고기만두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그들에게 난 양다리를 사다 주었다. 그들은 한 끼로나 적당한 양의 고기를 아껴 먹었다. 고기를 썰어 삶아서 다섯 명이 조그만 고기 한 덩어리씩으로 아무 반찬도 없이 밥을 먹었다.

 

고깃국그릇엔 한 덩어리의 고기만이 남아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해 무쇠라도 씹을 듯한 기세였지만, 쉬랍이 얼른 도반의 밥그릇에 고기를 얹어주었다. 그리고 서로 앞 다투어 설거지를 했고, 차를 타서 내놓았다.

 

오늘 밤도 나무를 아껴가며 조그맣게 피운 장작 난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장작불 쪽은 따스하지만 등 쪽은 시리기 그지없었다. 누구나 춥긴 마찬 가지련만 자신은 살짝 뒤로 물러서고, 동료의 앉은뱅이 의자를 난로 쪽으로 당겨주는 마음과 마음들이 난로보다 따사로웠다.

 

구름조차 오르지 못하는 당카르의 하늘처럼 천진한 얼굴들은 늘 동료들을 향해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신이 나를 안내한 토굴은 밀교의 고행승이 비밀수행을 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온라인뉴스팀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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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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