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토론

조현 2012.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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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밤 서울 조계사에선 흥미로운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놓고,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본부장인 도법 스님이 묻고, 원로 선승인 고우 스님이 답변한 형식이었다.

 도법 스님은 조계종 개혁의 주역이자, 생명평화운동가다. 고우 스님은 선승들 가운데서도 가장 솔직하고 열린 원로다. 도법 스님처럼 자신의 의문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놓을 용기가 없어도, 고우 스님처럼 이런 야단법석에 기꺼이 내려와 함께 응대해줄 배려가 없어도 이뤄질 수 없는 자리였다.

 

다음은 즉문즉답 내용이다.


도법 : 일상적으로 보면 높은자리에 모시고 격식도 갖춰 큰 스님 모셨어야 하는데…. 격식 모두 내려 놓고 맨 바닥에 앉아 스님께 여쭙기도 하고 말씀 듣기 위해 모셨다. 너무 감사하다. (큰 박수).


우리 사부대중이 모이긴 했지만, 재가 대중이 많이 모였으니, 높은 자리에 거룩히 모시고 그 분 앞에서 엄숙히 절도하고 엄숙히 법문도 듣고 하는 그런 부처님이나 큰스님이 좋은가? 맨 바닥에 앉아 시시껄렁 이야기도 하고 말도 듣고 하는게 좋은가? 후자가 좋다. 이런 자리 좋은 자리다. 사실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깨달은 이후 첫 법문을 하시고 만난 친구들이 누구인가하면 밤새 술마시고 춤추고 논 청년들이다. 그 청년들이 밤새 술마시고 놀아도 허무하고 의미부여가 안되고 가슴이 쓸쓸하고 버려놔 버린 것처럼 아프기도 해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숲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만나 대화를 한다. 그 대화 속에 안목이 열리고 출가를 하게 된다. 참선을 한 분이 아니다. 대화 속에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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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스님




육조스님도 나뭇꾼이었다. 나무를 해 시장에서 팔다 금강경을 듣고 출가를 했다. 우리는 해 보면 안 깨달아진다. 깨닫고 싶은데, 저는 깨달음 병 때문에 피눈물나는 젊은 세월을 보냈다. 안 돼서 좌절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선방을 떠나기도 했다. 장돌배기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하는 불교, 일상속에서 그런 자리가 만들어 졌으면 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큰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야사비구처럼 육조대사처럼 가슴이 열리기도하고 해 삶의 활로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몇일을 고생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갖고 질문을 만들었다. 스님께서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답해 주시면 될 것 같다.


깨달음만이 인생의 해답이라는 믿음으로 22살부터 40살까지 참선에 골몰했지만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심각한 회의와 좌절감을 안고 선원을 떠났다. 그 후로도 깨달음 병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고 극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다. 돌이켜보면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여겨진다. 스님께서는 깨달음 때문에 좌절감을 겪은 적이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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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



고우: 도법 스님의 이런 질문은 하기 어렵다. 대중을 위해 자기의 단점을 부끄럼없이 드러내고 이야기 한 것으로 이해하겠다. 요 대답을 간단히 20대인가 30대에 신문에서 본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겠다. 장개석이 모택동을 피해 대만으로 갔다. 대만 청년들이 많이 피폐해 있었다. 유학을 가서 대만을 바꿔보겠다고 공부하고 돌아온 후 1년동안 노력해봤지만 안됐다. 2년차에는 어떻게 살지 고민을 했다. 3년차에는 안되니 그냥 같이 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위직에 있다보니 부정부패가 더 쉬웠다. 우리나라가 부정부패가 많을 때 이런 내용이 기사로 나왔다. 처음 출가를 해서는 용맹정진하다 어느 순간 고민이 들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상향된 2년차는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해 본다. 하향된 2년차는 그냥 풀어진다. 질문을 보고 상향된 2년차에 머물러 있는 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저도 상향된 2년차였다. 강원에서 공부하고 도통하겠다고 선방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해 봤다. 내 위에 성철, 석호 스님 등이 나를 보면 꾸중할지도 모른다. 하향 2년차가 안 된 것이 다행이라고 본다. 성철 스님 가르침이 저와 조금 비슷하다. 참선을 하더라도 노젓기를 알고 하자. 성철 스님이 총림에 있으면 100일동안 법문을 했다. 그게 백일법문이다. 선방에서 안내문 없이 한길로 달려 3년차로 간 분들 상당히 많다. 나는 백일법문이라는 안내문을 가지고 가고 있다. 안내문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소개하는 것이 중도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뭘 깨닫는가? 내 존재원리, 금강경에서는 폐난습하라고 했다. 유정무정, 비비상처 등 9가지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다. 이 모든 존재는 중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걸 깨달은 것이다. 이 존재원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그 시각을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도법 : 금오 스님은 제 은사 스님이고 성철 스님 서옹 스님은 직접 모셨다. 20대에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도 들었다. 모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도인 깨달으신 분 이러면 저 나름대로의 상에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드린다.


고우 : 스님하고 나도 동감이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찾아가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도인상과 전혀 안 맞았다. 화도내고 측근과 싸움도 하는데 선방까지 들리더라. 일상생활에 실망하는 부분도 많았다. 중도에 대한 이해를 하고 부분적으로 실망했던 부분이 없어졌다. 그 분들도 인간이니 화도 내고 하는구나, 단 그 분들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렇구나 했다. 중도를 알지 못하고 체험을 못 했기에 알지 못하는 거지만, 스님들 가운데도 중도를 이해를 한 분이 몇이나 될까 하면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것이 전부다. 우리가 보는 시각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단서는 달겠다. 


도법 :붓다는 ‘귀 있는 자는 와서 들으라,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나의 가르침은 누구나 현실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이루어지고 증명된다’고 했다. 말씀의 뜻으로 보면 즉각 깨달음, 즉각 해탈, 즉각 열반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을 위시로 대부분의 스님들이 깨달음은 난행고행을 거쳐 먼 훗날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처님의 견해와 스님들의 견해가 상충하는 점이 있는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① 깨달음은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인가 지금 바로 즉각 이루어지는 것인가.

② 깨달음은 지금 바로 적용되는 것인가 먼 훗날 적용되는 것인가.

③ 만일 지금이 아니고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깨달음이 현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붓다의 가르침이 ‘바로 이해, 실현, 증명 된다’고 하는 관점에서 ‘나와 그대들은 신과 인간들의 굴레로부터 해탈했다. 그럼으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전법을 떠나라’고 하신 전법선언을 음미해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① 전법선언에 나타나 있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신과 인간의 굴레는 무엇인가

② 불교 사유방식으로 볼 때 깨달음 없는 해탈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속박의 굴레로부터 해탈하게 하는 전제조건인 깨달음은 무엇인가.

③ 깨달음 지상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나와 그대는 깨달았다’라고 할 법한데 왜 (해탈했다)고 표현했을까. ‘깨달음을 위해 전법하라’고 해야 마땅할 터인데 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전법하라고 했을까.

④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전해야 할 법은 틀림없이 붓다가 깨달은 중도, 즉 팔정도라고 사료되는데 맞는가.

⑤ 만일 제 생각이 일리가 있다면 해탈 열반의 길인 팔정도는 참선수행을 통해 먼 훗날 깨달아야 할 특별한 내용이 아니고 지금 바로 실천해야 할 내용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떤가.

⑥ 안락과 행복의 길인 붓다의 깨달음이 중도 즉 팔정도라면 굳이 참선수행하여 특별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확신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렇게 봐야 맞지 않겠는가.

⑦ 같은 맥락의 문제의식으로 볼 때 붓다는 최상의 선정삼매와 최고의 고행삼매를 버리고 중도, 즉 팔정도의 사유를 통해 시간적으로는 지금, 공간적으로는 여기, 존재로는 자기 자신 말고 그 밖의 그 어떤 것도 더 거룩하고 존엄하고 신비하고 완전하고 가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없다는 엄연한 실상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즉 구원의 주체가 저기에 존재하는 신이 아니고 바로 인간과 신, 구원의 장인 저기에 있는 하늘이 아니고 바로 여기 현장임을 통찰하게 되었다면 그자체가 대단한 깨달음 아닌가.

⑧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깨달음이란 깨달음 지상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신비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5비구, 야사비구, 육조, 원효, 대주 화상 등의 경우처럼 대화를 통해 실체론의 세계관에서 연기론의 세계관, 소유의 가치관에서 존재의 가치관으로 또는 인식의 전환됨을 뜻한다고 해야 맞지 않겠는가.

⑨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깨달음을 위해 난행고행정진을 해야만 된다고 강조하는 기존의 한국불교의 깨달음과 수행관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지금부터라도 정말 허심탄회하게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재정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⑩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깨달음에 대해 지금 여기 누구나 이해되고 실현되고 증명되도록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바로 이루어지는가. 현실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현실의 일상생활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가, 적용했을 때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긍하고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설명해주시길 청한다.

 인과의 법칙으로 볼 때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평화의 꽃이 피어나듯이 깨달음의 씨앗을 심어야 깨달음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지금 여기의 일로 설명되고 적용돼야 할 것이다. 자업자득의 논리로 보면 도둑질하면 도둑놈 인생 되듯이 부처로 행동하면 부처 인생이 됨으로 부처란 따로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고 할 것다. “소 타고 소 찾는다”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소와 애기는 참선, 염불, 기도 등 모르는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대화를 통해야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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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 실제는 이것보다 다양하게 이야기 했다. 팔정도는 다양하게 이야기 한 것 중에 하나다.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그 깨달음은 무엇인가. 존재원리다. 우리는 내가 있다는 전제 하에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잘못 됐다. 성철 스님 책 가운데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책이 있다. 자기를 바로 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기를 잘못 보니까 잘못 된 생각으로 우리가 한 평생 살고 있다. 이걸 동의해야 한다. 


어떻게해야 부처님 말씀처럼 행복하게 살수 있나. 중도를 알아야 한다. 부처님도 중도를 깨달았다. 이 내용을 가지고 오늘 이야기 해도 그 중요성은 다른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잠깐 하겠다. 잠깐이라는 시간동안 설명 드린다고 깨닫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해라도, 아니 소개라도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보살님은 여자이고 나는 남자다. 


남과 여 차별로 본다. 분명히 남과 여는 다르다. 차별 없이 공통된 점이 있다. 현상 말고 본질이 있다. 그걸 소박하고 쉽게 이야기 하면, 시골에 가면 새끼도 있고 짚신도 있고 가마니도 있다. 그 모양 쓰임새 크기 다 다르다. 차별이 있다. 하지만 그 재료는 하나다. 그걸 발견하는게 불교다. 불교에서는 그걸 자성이라고 한다. 그걸 알아채면 견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내가 있다고 하고 살아 간다. 이는 현상만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본질을 보라 했다.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연기 등을 알아야 한다. 


이걸 이해하면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내가 굉장히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자기를 학대하며 살아간다. 교만, 열등의식 등 내가 존재한다고 하고 살아가는 것이 학대다. 나만 학대하면 되는데 옆 사람도 학대한다. 중도 무아 공 연기 이걸 이해하게 되면 본질을 보게 된다. 본질을 보고나면 이걸 부처라고 한다. 자기가 부처임을 알게 된다. 스스로를 굉장히 존귀하게 대하게 된다. 자존 회복 의식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하게 된다. 이해했다고 전제하고 중도를 설명한다. 남녀라고 나뉘어 있지만 본질은 그게 없다. 본질은 하나다. 내가 존재한다고 항상 살며 둘로 나눠 살았다. 하나라고 하고 살면 중도다. 


거기에는 대립과 차별이 없다. 인종 갈등 등 갈등 대립 등이 없어진다. 불교는 다른 종교를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종교전쟁이 없다. 인도에서 힌두에게 밀린다. 회교에도 밀린다. 그래도 불교가 멸망했는가? 아니다. 우리 존재가 아무리 다른 종교가 잘못된 방식으로 해도 그 존재를 중도로 보기에 대립이 없다.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면 대립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그들을 일깨워주며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부처님이 열심히 걸어 어느 마을에 갔는데 큰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여 땀을 식히고 있었다. 부처님도 그 그늘로 가려했으나 거기 사람들이 다 힌두교였다. 그래서 그냥 돌아 나가려하니 어느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부처님이 그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부처님은 그들을 부처로 봤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먼저 나와 폭발을 시킨다. 중도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부처다. 개개인도 그렇지만 지구상 곳곳이 갈등과 대립이 있다. 우리 불교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종교인데, 세상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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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 연기사상의 탄생부터. 첫 단락은 십이연기에 대한 이야기다.  


고우 : 내 나름대로 방금 질문한 것을 이해한 만큼 대답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다. 지금 듣고 보고 한평생 이 몸뚱이를 내가 있다고 하고 산 사람들에게 공이다 무아다 하면 이해가 안된다. 중도를 이해시키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공이기에 연기이고 무아다. 요즘 내가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우연히 어떤 여성으로부터 책을 한권 받았다. 달마 안에 6가지 물리 이야기라는 책이다. 얇은 책이다. 재미있어서 금방 읽었다. 한줄 건졌다. 달마씨는 물리 노벨상을 탄 미국 물리학자다. 자기를 표현하는데 우리는 자기가 있다고 표현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수억 만 개의 원자 덩어리라고 했다. 우리는 단일 독립된 나로 생각한다. 이걸 읽고 나는 이 분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이 수억 만 개의 원자 덩어리중 어떤 원자를 나라고 할 것인가도 생각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생활을 보니 다른 사람은 정장을 입는 자리에도 항상 캐주얼하게 입고 가는 등 자유분방하고 유쾌하게 살았다. 어떻게 보면 해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중도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이것과 유사하다. 연기에 대한 이해를 하시는데,  이 이야기로 곰곰이 생각해 보라. 1세기경에 나온 경전에 보면 지수화풍 4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고 나와 있다. 4가지 원소로 되어 있기에 무아이고 공이라고 대승불교에서는 설명한다. 달마씨는 수억 만 개의 원자덩어리라고 했다. 무아와 공을 이걸로 설명하겠다. 무아와 공을 알면 내가 본질이라는 것으로 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무아와 공을 알면 거기에는 남과 여가 없다. 남과 여가 없이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이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무슨 얘기로 되어 있는 게 있다. 앙굴마라가 부처님을 만나 중도를 깨닫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이는 부처님이 중도와 연기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승속간에 3년차로 오래 머물러 있어도 그분은 불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앙굴마라는 1년차다. 탁발을 갔는데, 산통을 겪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앙굴마라에게 산통이 너무 심하니 이걸 완화시켜달라고 하니 앙굴마라가 부처님께 가서 알아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간다. 내가 불교를 만난 이후로는 한번도 마음으로도 살생한 적 없다고 하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니 산모가 산통에서 벗어났다. 산통은 뭔가? 있다-없다라는 분별이다. 산통은 중생들 삶을 이야기했고 순산한 것은 중도를 깨달은 이들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도 지금 산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너다-나다라는 이원적 사고를 깨려면 중도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그걸 해결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도법 : 지금까진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세계 각 학계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지금부터가 우리가 실재로 정리할 내용이다. 깨달음에 대해 정리해야 할 점 이다. 경전내용을 면밀히 짚어가며 보니 이렇게 정리가 됐다. 이렇게 정리하는게 맞는가?


고우 : 계속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코스인데 이해하고 그 과정을 체험하는데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하나로 통일해 이야기 할 수 없다. 비교를 하자면 깨달음에 가는데, 굉장히 쉽게 가는 분이 있다. 육조 스님 같은 분은 금강경의 응무소주라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무 곳에도 주하지 않고 있다-없다 등에도 주하지 않고 남자 여자 그런 거 없는 자리에서 일으키는 것이다. 그걸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달았다. 비교해 보면 고층 건물에 가면 엘리베이터 타고 올가는 것이다. 못 깨닫는 분은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데 각 층마다 쉬었다 가는 것이다. 그보다 못한 분 즉, 3년차는 계단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다 같은 중도 이야기 들으면서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는 1년차는 엘리베이터 타고 쭉 가는 것이다. 2년차는 각층마다 쉬었다 가는 것이다. 3년차는 계단이다. 올라간다는 말은 중도 연기를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 내 마음을 정화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뭘 정화하는가? 있다-없다라는 2원적 사고에서 1원적 사고로 바꾸는 것이다. 세 단계를 이야기 한다. 법문할 때는 20층 등을 말 안하고 3층으로 말한다. 의식(육식), 잠재의식, 무의식(아뢰아식)이다. 2원적 사고를 정화하는 것이다. 분별심 없이 사고하는 것이다. 정화한다는 것은 2원적으로 갈라놓고 사고하던 것을 1원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가는 방법은 단박에, 각 층마다 쉬어가며, 계단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어렵다 하더라도 몇십 년 고통받고 생을 마치는 것보다는 낫다.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 보면 안타깝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보다 1층으로 한층 올라가는 것이 쉽다. 1층까지라도 이해하고 엘리베이터 타면 되지 않겠는가? 계단을 올라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못 참았지만 1층이라도 올라가면 이게 덜하게 된다. 무아와 공을 이해하면 지혜가 생긴다. 생활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내가 영주라는 도시에 있는 식당 아줌마에게 장사 잘 되는 법을 알려 줬다. 사고를 바꿔라. 장사가 잘되는 즐거움이 있지 않는가? 손님을 돈으로 보면 안된다. 그럼 장사가 안되고 장사 할 자격도 안된다. 은인으로 생각해라. 한 달쯤 돼서 연락이 왔다. 너무 잘된다고 했다.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서로 서로가 은인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돈을 주는 사람이고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사람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갈등과 분규가 생길 일이 없다. 노사분규가 있는 사장이 이 이야기 듣고 가서, 노조측에서 20%를 이야기했는데 25%를 올려줬다고 한다. 선총이라는 모임 이야기다. 소공장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 많이 해 준다. 그렇게 종업원들을 대하니 바뀌더라고 했다. 중도를 이해하고 나면 지혜가 생긴다. 긍정적인 사고가 생긴다. 사회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와는 다르다. 절대긍정이다. 불교 믿다가 포기한 사람이 많다. 중도 연기를 알면 포기해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비교가 안된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마음만 중도로 바꾸면 어떤 일이든 된다고 생각한다. 중도로 바꿔야 할 시기가 왔다. 지금이 중도가 필요한 시기다. 독재에서 산업화 민주화가 이뤄졌다. 과거의 양극화 싸움을 아직도 못 버렸다. 중도의 통합시대로 가야 한다. 그리스 같이 부도 나는 국가가 되고 있다. 


개개인, 사회. 국가 모두가 중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정치한 사람들이나 누구에게나 가는 곳에 가면 다 그 이야기 한다. 우리 종단도 마찬가지다. 중도사상을 갖고 수행하고 포교해야 한다. 그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아갈 것이다. 


도법 : 일단 공식적으로 정리한 부분은 여기까지다. 


사회자 : 1시간 40여분이 지났다. 공식적인 질문이 끝났다. 꼭 묻고 싶은게 있는 분은 질문해 달라. 


남자 : 저는 산본에 살고 있는 이대호이고 대범입니다. 법명을 고우 스님이 주셨다. 좋은 말 많이 들었다. 특히 앙굴마라 이야기 들어보니 우리 사회에서 앙굴마라같은 사람이 중학생들 같다. 이제 조금씩 사회도 알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다보니 그런 거 같다. 이들을 모아서 한국불교가 우리 사상을 얘기해 줄 수 있는지. 지금 정치하는 분들 보면 아무리 바꾸라 해도 바꾸기 힘들다. 차라리 지금 중학생들 정도를 이런 야단법석을 통해 좋은 법문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스님들께서는 어떤 방법과 전략을 가지고 계시는가? 부처님 시대에는 꼭 찾아오는 신도들만 에게 법문을 했는가? 청소년들은 어떻게 교화시키고 법문했는가? 궁금하다.


도법 : 그런 질문도 필요한데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해주면 좋겠다.


남자 : 성남에 김정기라고 한다. 중도에 대해 스님이 강조하고 중점적으로 말했다. 양변을 자꾸 버리라고 하는데, 깨달음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인지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등의 이런 양변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십 년을 수행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경지에 든 분이 많으신가? 깨달은 분이 있으니 검증을 할 것 아닌가? 검증은 누가 하는가? 앞뒤가 잘 이해가 안된다. 깨달은 분이 계시다면 일상생활에서 실천적인 면에서 중도적인 관점에서 실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측근과 싸웠다는 스님이 있었는데, 이걸 중생심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봐야 하나? 중생과 같은 행동을 하는 스님이 있다면 이 스님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고우 : 이해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은 굉장히 어렵다. 이해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간다면 가는 것만큼 생활에 변화가 온다. 이해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혹 이해가 방해가 된다고 해 이해를 안 하려 하는 분이 있다. 그런 분은 양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사회에는 이해를 하고 깨달음으로 가는 게 근기에 맞는 것 같다. 실천은 이해하든 깨달음을 얻든 이해한 만큼 실천을 하게 된다. 나도 한다. 안 할 때보다는 마음이 훨신 편하다. 도인도 화를 내더라 했는데, 이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도인이 화를 내는 것은 중도를 이해한 측면에서 화를 내는 것과 양극단에서 화를 내는 것이다. 도인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하지 않는다. 화도 낸다. 중도를 이해한 측면에서 내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도 적다. 도인들도 사람이다. 양극단에 있으면 우리가 화를 내면 굉장히 마음에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이 더 심하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내는 화와 도인들이 내는 화는 감정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그건 중도를 이해하면 내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중도를 이해하고 생활화 하기 위해 참선도 하고 하는 입장이다. 나도 화를 조금은 내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싶어 화를 참기도 한다. 그건 도인의 입장이 아니다. 도인의 세계를 양극단 사고하는 우리의 사고에서는 이해안되는 것이 많다. 


남자 : 한남도 양대웅. 깨달음은 무엇인가. 18조사님께서 말한 것인 lTsmsep 송광사 방장 스님은 부처님과 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 그게 깨달음이라고 했다. 고우 스님께 질문하겠다. 주간불교 2012년 7월 25일자 지상중계 고우 스님 지상강좌 세 번째 언어문자는 소용이 없다. 무비 스님은 2007년 6월 2일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안타깝다. 참선해서 깨달은 이는 없다. 육조 혜능스님 등은 경전을 통해 깨달았다.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닫지 않았는가. 염불 사경 선 등 복잡하다. 용수보살 강원도 건봉사에서는 32명의 스님들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이 있다. 직책이 뭔가? 역할이 뭔가? 어디가면 관세음보살하라 한다. 어디가면 지장보살 하라한다.


고우 : 주간불교에서 나는 참선이 독이라고 표현했다. 도올이 백암록을 강의하다 중간에 그만뒀는데, 임제 스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 앞에서 “내 전법을 잘 전해야 한다” 하니 삼제 스님이 “스님의 전법을 잘 전하겠습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했다 임제 스님이 “내가 죽었다 하면 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전법을 어떻게 전할래”하니. 삼제 스님이 왁하고 고함을 쳤다. 도올은 이 장면에서 삼제 스님이 임제 스님의 의미를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우리는 중도로 존재한다. 우주의 유정무정 모든 존재는 중도원리로 존재한다. 이미 부처가 되어 있는데 무슨 법이 필요한가. 내 전법완장을 내려버렸구나라는 말은 그런의미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참선해라 중도가 뭐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독을 주는 것이다. 본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팔만대장경이 마구니 설이다. 부처님은 돌아가시며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가면 불교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내가 건방을 떤 것이다. 염불 등도 수행이 된다. 금강경에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칭찬 등을 받고 싶어하고 대가를 원하는 수행은 좋은 일은 되지만 수행은 아니다. 나다 너다가 없는 것은 중도다 이를 이해하고 봉사를 하면 수행이다.


사회 : 2시간이 지났다. 밤새워 끝장을 내자하면 끝장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일을 생각해 한두 분만 더.


남자 : 평담. 깨달음에 대해 이번 주가 두 번째다. 저번 주는 일상적인 깨달음에 대해 말했다. 교육원장 스님께서는 부파불교 등 일반불자가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의 논문을 잘 봤다. 깨달음이란 것이 그럴 것이다 이럴 것이다 문자에 나오는 것처럼 정의할 수 있는가. 남방의 교리 북방의 교리가 조금 다르다. 간화참선은 그럼 뭔가? 깨달음이란 존재 자체도 없는 것 아닌가? 오늘은 남전의 교리를 이야기 했다. 앎을 증득하는 것. 설리와 교리를 분명히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불교를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과연 재대로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럼 설리와 교리를 분명히 해달라.


고우 : 그러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한다. 이것을 선적으로 표현하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이 그랬다. 산은 산이다. 중도를 깨달아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중도를 깨닫지 않고 그러할 것이다. 산은 산이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하는 것은 분별심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깨달음을 통해서 이와 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사사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위파사나와 간화선의 다른점을 이야기 했다. 영가 스님 방에 위파사나를 비우차나라고 적혀 있다. 비우차나는 우리 성격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성적적이 되어 있을 때가 위파사나다. 위파사나의 반대가 사마타다 적적성성이 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가 참선을 하나 위파사나를 하나 우리 성격의 의식이 성성적적 또는 적적성성의 상태로 바뀌어 간다. 이걸 나는 정화한다고 표현한다. 의식이 바뀌어 가면 본래 타고난 성격과 수행을 통해 바뀐 성격이 점점 가까워져 가 만난다. 그걸 깨달았다고 한다. 회복시켜가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교리와 설리를 이야기하는데 교리와 설리는 같은 것이다. 이게 다르다면 불교가 여러 개가 된다. 다섯 손가락도 하나의 손에서 나온다. 근본은 하나에서 나눠진다. 어떤 것을 하든 우리 의식이 변하는 것은 똑같다.


사회 : 고우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계속 이야기하고 계신다. 멀리서 오신 분도 계신다. 아쉬움을 남기고 여기서 끝내고자 한다.


고우 : 우리가 중도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이를 믿어야 부처님 제자다. 이를 믿고 중도가 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중도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걸 알아가면 위대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자존의식 회복이다. 고귀한 존재인데 스스로 천덕꾸러기를 만들어선 안된다.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25살에 출가했다. 무슨 이유인지 잘 기억안 난다. 스스로를 학대해 폐결핵에 걸렸다. 교회에 갔는데 목사가 나병과 폐병환자는 천역이라고 해 교회에 안 갔다. 절에 요양 갔다가 출가했다. 학대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강원에 가 경전을 배우며 스스로가 고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나이 적은 스님이든 신도든 누구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는다.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중도가 뭔지. 중도로 되어 있다고 하니, 백일법문 읽어보면 어느정도 다 이해한다. 중도의 존재로 행복하게 살길 부탁드린다. 이걸로 끝내겠다.


사회 : 다시한번 박수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발원문을 낭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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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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