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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바위에 반은 허공에 묻힌 선지식 도량

조현 2008.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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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춘 땅] 영축산 백운암


산 정상 턱 밑 가장 높은 곳 최후의 혈처에 자리
지세고 사람이고 빼어나면 마장도 큰 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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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1천2백 대중들 앞에서 법화경을 설한 인도의 성지입니다.
 경남 양산 통도사를 둘러싼 산은 그 이름을 땄습니다. 하지만 양쪽을 동시에 가본 이들은 오히려 인도의 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만큼 수백 배는 돼 보이는 양산 영축산의 큰 품과 위용에 감탄하곤 합니다. 통도사가 '천하제일사찰'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통도사를 외호하는 영축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축산은 통도사 말고도 20여개 암자를 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산 정상 턱 밑인 가장 높은 곳 최후의 혈처에 백운암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독교세가 강한 한반도 서쪽지역에 비해 동쪽은 불교세가 강합니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의 불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 지역에서 백운암은 찻길이 닿지 않아 한시간 가량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유일한 암자이기도 합니다.

 

영축산하에 접어들면 영축8경중 하나라는 무풍한송(舞風寒松)이 먼저 반깁니다. 춤추는 바람 따라 물결치는 노송이 도열한  길을 따라 극락세계를 비춰주는 연못 위에 놓인 극락암의 극락영지(極樂影池) 를 건너 드디어 백운암 산행에 나섰습니다. 백운암이 천하의 길지라지만 선(禪)의 영웅 경허선사가 머물며 '백운암 찬'을 쓰고, 그의 제자 만공이 장맛비 속에 오도 가도 못한 채 백운암에 갇혀 있을 적에 활연대오하는 등 그런 선지식들이 없었다면 어찌 이곳이 길지일 수 있을 것인가. 인간계에서 누가 길지를 만들며, 누가 흉지를 만들까요.

 

빨간 매니큐어 칠한 해맑은 애기 부처 ‘천진불화’

 

Untitled-2 copy.jpg백운암은 경허가 쓴 대로 흰 구름 속에서 반은 바위에 반은 허공에 묻혀 있습니다. 그 허공 속에서 주지 태봉 스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등 뒤로 그가 그려놓은 불화는 여느 불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해맑은 애기 부처가 내민 손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습니다. 어찌 부처가 근엄함 속에만 갇혀 있었을 것입니까. 그 천진불을 보는 순간 남녀와 노소와 출세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동심이 흰 구름처럼 허공계를 감싸는 듯 했습니다.

 

백운암에선 백운암을 보기 어렵습니다. 백운암은 태평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백운암 안쪽 깊숙이 있는 토굴 쪽에서 백운암을 보면 낙락장송들 속에 가려진 기암절벽을 엿보면 이곳이 여느 터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맛비라도 내리면 정상에서 절벽 아래로 쏟아진 폭포수가 암자 밑에서 합수돼 암자를 뒤흔듭니다. 이렇게 산기운이 강해 기도발이 성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무속인들이 몰려들던 곳이기도 합니다.

 

한 달 전 태봉 스님이 이곳에 올라오기 전까지 백운암을 지키다 하산한 태봉 스님의 상좌 만초 스님이 6년 전 입산할 때 영축산의 노승들은 단단히 경계심을 불어 넣어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노승들은 백운암이 기운이 강해서 마장도 심하니, 만약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면 크게 다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백운암에서 살면서 술을 입에 댔다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정신이 이상해진 이들까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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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저문 어느 날 밤 방 한 칸 암자에 한 처녀가 찾아왔다

 

애초 지세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빼어나면 그에 따른 마장도 크기 마련인가 봅니다. 통도사 산신각 20미터 남쪽 응진전 옆에 있는 호혈석(虎血石)이 있는데, 돌은 백운암에서 공부하던 한 스님과 한 처녀에 대한 얘기입니다. 만초 스님이 그 전설을 들려주었습니다.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백운암에 젊고 잘 생긴 스님이 홀로 살며 수행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 스님은 통도사의 대강백(경전을 가르치는 스님)이 되기 위해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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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날도 저문 어느 날 밤 한 처녀가 암자를 찾아왔습니다. 봄나물을 뜯으러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왔다가 길을 잃고 불빛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때 백운암에는 스님이 거처하는 방 한 칸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처녀의 청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이 험한 산을 어두운 밤에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을 할 수 없이 처녀를 방안에 들여 아랫목에 자리를 깔아주고, 자신은 윗목에 앉아 밤새 경전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의 낭랑한 목소리를 밤새 들으면서 처녀는 스님에게 연정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 처녀는 그 고을 현감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내로라하는 혼처도 마다하고 처녀는 오직 백운암의 스님만을 그리워했습니다. 처녀가 시름시름 앓게 되자 부모는 그 연유를 묻게 되었고, 마침내 백운암 스님을 연모해 상사병이 들었음을 알게 되어 백운암을 찾아가 제발 딸을 받아달라고 사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먹은 뜻을 꺾을 수 없다는 스님을 뒤로하고 하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녀는 부모의 얘기를 듣고는 스님을 원망한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열심히 경전을 공부해 통도사에서 제일가는 강백 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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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집채만한 호랑이가 통도사 경내까지 들어와 날뛰었습니다. 영축산에 호랑이가 산다고는 하지만, 통도사 경내까지 호랑이가 들어와서 날 뛴 적은 없었습니다. 스님들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면서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연의 도리를 아는 스님들인지라 호랑이가 분명히 전생이 어떤 스님과 인연이 있는 게 틀림없다면서 과연 그 스님이 누구인지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스님들은 저마다 윗저고리를 벗어 호랑이쪽으로 던졌습니다. 호랑이는 다른 스님들의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백운암에서 공부했던 강백 스님의 옷을 물어뜯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강사 스님은 필시 호랑이가 자신 때문에 저리 날뛸 것이라며 호랑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호랑이는 강사 스님을 물더니 쏜살 같이 산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음날 강사 스님은 산 중턱 바위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호랑이 밥이 됐을 줄 알았던 강사 스님의 멀쩡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직 스님의 심볼만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스님을 죽도록 사모했던 현감의 딸이 호랑이로 태어나 그토록 집착했던 심볼을 호랑이가 되어서나마 취했던 것입니다. 

 

땅이 기르고 인간이 나눠 기쁨이 배가 되는 상추 한 쌈의 축복

 

Untitled-7 copy.jpg전설 속의 백운암 스님이 얼마나 잘 생긴 분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잘생기고, 청초해 보이기로는 만초 스님도 어느 스님 못지않습니다. 만초 스님도 처음 백운암에 올라와보니, 백운암은 늘 무속인들로 북적댔다고 합니다. 백운암은 그렇지 않아도 영축산 정상 비로봉 아래 있어서 매주말이면 정상을 오르는 등산객 400~500명이 들러서 깊은 산사의 정적을 깨기 십상인 곳입니다. 그러나 청초한 만초 스님이 말없이 법당에서 아미타 기도를 하거나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으면서 어느새 무속인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등산객들도 하나둘씩 땀을 식히면서 요란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처럼 찻길이 없는 암자들은 물건을 실어 올리는 케이블카라도 놓게 마련이지만 만초 스님은 그마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운암에서 먹고 쓰는 것은 사람이 하나하나 져 나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져온 음식을 아낌없이 등산객들이 나눠먹자 언제부턴가 등산객들이 하나둘씩 쌀과 반찬과 과일을 사서 져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백운암엔 언제나 등산객들과 나눌 것이 있었습니다. 스님만이 나눈 것이 아니라 신자와 신자가, 등산객과 등산객이 서로 나눌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음식과 미소와 평화까지.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백운암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평화롭기 그지없다고. 수백명이 오가는 발자국 소리마저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연꽃을 지르밟는 평화의 발걸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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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 스님의 부름에 허름한 공양간방에 들어가니 백운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군침을 돌게 하던 상추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추 한 보시기에 된장과 김치 한 접시가 반찬의 전부지만 임금님 수라상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우리는 이처럼 날마다 천공을 받아먹고 산다"고 자랑했습니다. 천공(天供)이란 하늘에서 바치는 공양물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늘만이 축복을 내릴 것입니까. 땅이 기르고 인간이 나누어 기쁨이 배가 되는 이 상추 한 쌈이 바로 하늘의 축복이 아닌가요. 축복을 누가 만들어갈까요.

 

영축산 글·사진 조현 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이규호 피디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하늘이 감춘 땅>(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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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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