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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 기독교 연 김교신

201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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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1.jpg 성서조선 창간동인5명.JPG

1927년 2월 <성서조선> 창간 동인 6명. 뒷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인성 함석헌 송두용 김교신 정상훈 류석동. <김교신 전집>에서


김교신 기념사업회 28일 출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은 앞서 도쿄에서 치른 국가대표 선발전 직후 “오직 선생님의 눈물만 보고 뛰어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바로 양정고 김교신(1901~45·사진) 선생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을 앞두고 오는 2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김교신 기념사업회’가 출범한다. 공동대표를 맡은 이만열 숙명여대 석좌교수, 김교신 연구가인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 복음주의운동가인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 등 21명이 함께 한다. 창립총회에서는 이 교수가 ‘김교신의 삶과 생각’에 대해 강연하고,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함경도 함흥의 엄격한 유교 가문에서 태어난 김교신은 1919년 함흥공립농업학교를 나와 일본으로 건너가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 강연에 7년간 참가했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27년 귀국해 함흥 영생고보와 서울 양고보, 제일고보(경기고 전신), 개성 송도고보 등에서 지리를 가르친 그는 우치무라에게 함께 배운 함석헌·송두용·정상훈·유석동·양인성 등과 함께 <성서조선>을 발간했고, 16호부터 주필로서 편집 책임을 맡았다. 42년 ‘성서조선’ 권두문에 잠자는 민족을 개구리에 빗낸 ‘조와’(弔蛙·개구리를 애도하며)를 발표한 그는 1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고, 잡지도 폐간됐다.

우리나라 역사의식에 바탕한 ‘조선식 기독교’를 주창한 김교신은 ‘무레사네’(물에산에)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고적과 명소를 심방하며 청년 조선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켰다. 43년 5천명이 강제징집 당해 일하던 흥남비료공장에 들어가 유치원·학교·병원 등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발진티푸스에 걸린 노동자를 돌보다가 감염돼 별세했다.

양 교수는 “김교신은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참한국인이고, 참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라면서 “지금까지 복음과 예언자적 정신을 양자택일로 보아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못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본보기로 김교신을 호출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서 위에 새로운 조선을 세우고자 했던 김교신 선생이 지금껏 방치되어온 것은 한국 기독교의 수치”라면서 “그의 글과 생각을 알려 한국 교회와 우리 시대를 개혁해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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