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을
휴심정의 기사와 글이 모여 있습니다.

(4) 덕숭산 만공선사

조현 2005. 10. 28
조회수 9107 추천수 0
blank.gif 005100038120050126R02194115_0.jpg

△ 만공 선사가 깨달음을 펼치며 사자후를 토했던 덕숭산 금선대에서 바라본 산하대지.

blank.gif
blank.gif























새벽종소리 타고 ‘無’ 의 화답이


신통술을 부려도 의심덩어리를 도려내도
“그건 깨침이 아니다”
스승 경허
새끼사자 벼랑 밀치듯 ‘죽비’
장맛비 걷힌 어느날...


아름다운 숲길이다. 적송이 신장처럼 서 있는 길의 풍경은 가히 비길 데가 없을 정도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곡사 들어가는 길이다. 100년 전 이곳을 걸어 들어갔던 젊은 승려 만공(1870~1946)도 이처럼 빼어났다.


근대 한국불교 선풍 탯자리


사자 새끼를 기를 때는 강아지를 키울 때와 달라야 한다고 했던가. 스승 경허는 13살에 서산 천장암에 온 만공을 10년이나 부엌데기로 부려먹기만 할 뿐 화두 하나 주지 않았다. 이 무렵 만공은 이른바 ‘타심통’이 열려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알게 돼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허는 “그것은 술법이지, 도가 아니다”며 신통을 금했다. 수월과 혜월같은 사형처럼 도를 깨친 것도 아니요, 신통조차 못 부리게 하니 혈기왕성한 만공의 가슴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던 어느 날이었다. 천장암에 들른 한 어린 승려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가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화두에 만공은 앞이 캄캄해졌다. 이 물음에 꽉 막힌 만공이 천장암을 무작정 빠져나와 찾은 곳이 ‘봉황의 머리’ 형상 아래 지어진 봉곡사였다. 이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한 지 2년이 지난 1895년 7월25일. 면벽 좌선 중 무념 상태에서 벽이 사라지고 허공법계가 드러나는 체험에 이르렀다. 이어 새벽녘에 종성 게송(종을 치면서 읊는 경전) 가운데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라.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라는 귀절을 외던 중 홀연히 의심 덩어리가 해소됐다.


산책 중인 봉곡사의 비구니 주지 묘각 스님 앞쪽의 야트막한 동산에 ‘세계일화’(世界一花: 우주는 한 송이 꽃)라는 탑이 세워져 있다. 만공 스님이 늘 하던 법어다. 1969년 이 절에 온 묘각 스님이 86년 만공 스님을 기려 세운 탑이다. ‘세계일화’는 만공의 손상좌로 최근 열반한 숭산(만공의 법제자인 고봉 선사의 제자) 선사가 서구에 선을 전하면서 가장 즐겨 쓰던 말이기도 하다.


친구 김좌진과 팔씨름 승부 못내


blank.gif005100038120050126R02194117_0.jpg

그러나 만공은 공주 마곡사 토굴에서 3년 동안 보임했으나 경허는 새끼사자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듯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며 다시 경책한다. 스승이 준 ‘무’(無)자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1901년 경남 양산 영축산의 흰구름 떠도는 외딴 암자 백운암에 이르렀다. 장마를 만나 보름 동안 꼼짝 못한 채 참선만 하던 어느날 새벽 종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 세계가 무너지고 마침내 우주의 본심이 드러났다. 31살 때였다.


그 뒤 충남 예산 덕숭산 정상 부근 정혜사에 금선대를 지어 수덕사, 견성암 등을 일으키니 이로써 덕숭문중이 태동했고, 근대 한국불교의 선풍이 여기서 일어났다.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은 출가한 12살 때부터 만공 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그를 시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보았다. 만공은 인근 홍성이 고향인 청년 김좌진과 친구처럼 허심탄회했다. 김좌진은 젊은 시절부터 천하장사였다. 만공 또한 원담 스님이 “조선 팔도에서 힘으로도 우리 스님을 당할 자가 없었지”라고 할 정도였다.


“둘이 만나면 떨어질 줄 몰라. 어린 아이들처럼 ‘야, 자’하곤 했어. 앞에 놓인 교자상을 김 장군이 앉은 채로 뛰어넘으면 스님도 그렇게 했지. 언젠가는 둘이 팔씨름을 붙었는데, 끝내 승부가 나지 않더라고.”


김좌진은 훗날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청산리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다. 만공 또한 출가한 몸이었지만 서산 앞바다 간월도에 간월암을 복원해 애제자 벽초와 원담으로 하여금 해방 직전 1천일 동안 조국 광복을 위한 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이에 앞서 일제의 힘 앞에 굴종을 강요받던 1937년 3월11일 만공은 총독부에서 열린 31본산 주지회의에서 마곡사 주지로 참석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사 가풍의 기개를 보여준 바 있었다. 총독 미나미가 사찰령을 제정해 승려의 취처(아내를 둠)를 허용하는 등 한국 불교를 왜색화한 전 총독 데라우치를 칭송했다. 이때 만공은 탁자를 내려치고 벌떡 일어나 “조선 승려들을 파계시킨 전 총독은 지금 죽어 무간아비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요. 그를 구하고 조선 불교를 진흥하는 길은 총독부가 조선 불교를 간섭하지 말고 조선승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일갈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조선불교 간섭 말라’ 일제에 호통


이날 밤 만공이 안국동 선학원에 가자 만해 한용운은 기뻐서 맨발로 뛰쳐나오며 “사자후에 여우 새끼들의 간담이 서늘하였겠소. 할도 좋지만 한 방을 먹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겠소”했다. 이에 만공은 “사자는 포효만으로도 백수를 능히 제압하는 법”이라며 껄껄 웃었다.


만공이 머물던 덕숭산 금선대에 올랐다. 방안엔 스승 경허와 사형 수월, 혜월과 나란히 만공의 진영이 놓여 있다. 산마루에서 시린 바람이 산하대지에 휘몰아친다. 기개를 일깨우려 토하는 만공의 사자후가 아닌가.

아산 예산/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은둔>(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깨달음의 자리’ 연재를 마치며‘깨달음의 자리’ 연재를 마치며

    조현 | 2005. 12. 07

    지난 1월에 시작된 <깨달음의 자리>가 33회 일우선사편으로 끝을 맺었다. 자신의 내면은 도외시 한 채 끝없이 외연의 개발과 성장과 확장, 승리만이 ‘진리’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조용히 내면의 빛을 밝힌 선지식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성찰...

  • (33) 일우 선사(33) 일우 선사

    조현 | 2005. 12. 07

    ▲ 일우 선사의 유일한 상좌 정원 스님이 25년째 은거 중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서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세상 모르게 설파한 불법… 무게가 삼천근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

  • (32) 남장사 혼해 선사

    조현 | 2005. 12. 01

    여인 품속서도 어김없었던 진흙 속 연꽃6·25 전쟁 중이었다. 대찰의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때였다. 경남 함양읍의 조그만 사찰엔 일흔이 넘은 노승이 피난 와 있었다. 이 절엔 전라도에서 피난 온 20대 여인이 공양주(부...

  • (31) 구미 금강사 철우선사(31) 구미 금강사 철우선사

    조현 | 2005. 11. 17

    주름진 선승도 머리 조아린 ‘소년 조실’ 부산 백양산 선암사에 선승들이 찾아왔다. 경남 통영 용화사 도솔암 선방의 선객들이었다. 경허 선사의 법제자로 천진도인인 혜월 선사를 조실로 모시러 온 것이다. 그런데 혜월은 그 조실청장(조실 요청서...

  • (1) 경허선사 생사의 문 넘은 동학사(1) 경허선사 생사의 문 넘은 동학사

    조현 | 2005. 10. 28

     △ 꽁꽁 언 계곡 옆으로 동학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거센 태풍의 시발이 되듯이 한 사람의 깨달음이 무너져가는 세상의 정신을 새로이 일으키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깨달음을 얻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