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머리를 써야 진짜 종교

오강남 2014. 12. 15
조회수 12913 추천수 0



종교는 믿는 것? 생각하는 것?


오강남편집.jpg



종교는 믿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덮어놓고” 믿어야지 생각하고 따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얼른 보아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덮어놓고” 믿고싶지만 우선 “덮어놓고” 믿는다는 것이 뭔지라도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백성이라 산다”고 했다. 쏘크라테스도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존 캅도 최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살아 날 수고, 또 이렇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평신도가 많아야 그리스도교가 산다고 했다. 한국말로는 이경호 목사에 의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책 내용에 맞게 잘 옮긴 제목이라 생각된다.


사실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인이든 각성도 없고 검토도 없는 믿음을 “덮어놓고” 받아들일 경우 그것은 헛된 믿음일 수도 있고, 또 많은 경우 우리의 짧은 삶을 낭비하게 하는 극히 위험한 믿음일 수도 있다. 보라. 우리 주위에 횡행하면서 사람들을 죽음과 패망으로 몰아넣은 저 많은 사교 집단들을. 그리고 비록 신흥 사교집단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부 잘못된 지도자에 의해 변질되므로 그 신도들을 속박하고 질식시키고 있는 저 많은 기성 종교 집단들을. 이렇게 파리 끈끈이 같은데 가까이 가거나 수렁 같은데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극히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어느 사회나 인구의 절대 다수가 문맹이었다. 그런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덮어놓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어려운 신학적 문제는 오로지 성직자들 사이에서 라틴말로만 논의되고, 일반인들은 이들이 그림으로 그려 준 그림책 정도를 보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그림책 신학”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런 바뀌어진 시대를 반영하여 존 캅은 “일반 평신도들은 모두 신학자들”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사실 오늘 같이 일반인들의 지식이나 의식 수준이 높은 시대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민 신학자직”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supra ratio)이지 ‘이성을 거스리는 것’(contra ratio)이 아니다.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은 건전한 종교적 삶을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무조건이니 덮어놓고니 하는 말은 사실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독립적 사고력이나 분별력을 포기하거나 몰수당하는 일이다.


종교인이라고 생각 없이 덮어놓고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일수록 오히려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기 생각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것이 참된 믿음이 지향해야할 경지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오강남
종교의 기존 도그마를 그대로 전수하는 1차원적 학자에서 벗어나 종교의 진수로 가기 위해 도그마를 깨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종교학자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이자 서울대 객원교수다. 저서로 <종교,심층을 보다>,<예수는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가재는 게 편?, 학연 지연 혈연 편만 들면 ‘반편이’가재는 게 편?, 학연 지연 혈연 편만...

    오강남 | 2015. 12. 18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밖으로 위로도 펼 줄 모르면 ‘곰배팔’유유상종(類類相從). 사정이 비슷한 사람끼리 자연히 가까이 모이게 되는 것은 과부 사정 과부가 아는 것처럼 서로 이해소통이 그만큼 잘 되는 까닭이리라. 따라서 같은 고향 사람, ...

  • 새우 싸움으로 고래 등 터지지 않게!새우 싸움으로 고래 등 터지지 않게!

    오강남 | 2015. 09. 10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작은 이들의 힘“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 주로 큰 나라들이나 큰 집단들 간의 상호 이권 다툼으로 작은 나라들이나 작은 집단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 하느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하느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오강남 | 2015. 08. 10

    하늘 보고 주먹질 하기-속삭임으로 다가오는 하느님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여 정말로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하늘을 보고 주먹질이라도 해야 성이 풀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주먹질한다고 뭐가 달라지...

  • 과거 잊은 당신은 개구리!과거 잊은 당신은 개구리!

    오강남 | 2015. 07. 21

    과거를 묻지 마세요?-올바른 역사의식의 함양일본 수상 아베가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른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모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속담이 말하려는 뜻은 인간이 개구리가 아닌 이상 ...

  • 가난이 죄? 마음이 죄!가난이 죄? 마음이 죄!

    오강남 | 2015. 06. 14

    가난이 죄-결국은 가치관의 문제“가난이 죄”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저지르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주로 가난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박정한 것, 서로 아웅다웅하는 것, 장사에서 뒷거래를 하는 것, 남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