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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뛰어 넘은 신앙이 가야할 곳

오강남 2015. 04. 12
조회수 11936 추천수 0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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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知性)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은 지성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지성이 지성을 발휘하여 스스로가 가진 오만(hubris)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지성이 자기의 한계를 절감한다는 것은 지성으로서 최고 경지에 이른 것이다.


선불교(禪佛敎)의 임제종(臨濟宗) 계통에서는 우리가 가진 지성으로 사물의 진수를 파악하려는 오만을 없애기 위해 공안(公安)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제자들에게 ‘한 손으로 치는 박수 소리(隻手)’ 같은 문제를 주고, 그것을 지성을 가지고 풀어 보라고 한다. 스승은 ‘문답(問答)’을 통해 제자들에게 그 소리의 특성, 부피, 색깔, 넓이 등을 말해 보라고 윽박지른다.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대답을 해도 야단을 맞고 쫓겨난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결국 지성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임을 절감하고 지성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 신뢰를 내려놓을 때 지금껏 지성으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실재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경지를 불교에서는 ‘깨우침’이라고 한다.


지성의 한계를 절감할 때 이른바 ‘신앙의 도약(leap of faith)’을 감행하게 된다. 지성의 영역에서 튀어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튀어나오게 될 때 어디로 튀느냐, 그 튀는 방향이 중요하다. 쉽게 두 방향으로 나누어 보면 지성에도 못 미치는 지성 이전 단계로 튀느냐, 지성을 초월하는 지성 다음 단계로 튀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성의 한계 내’에서 자기 나름대로 도출한 어떤 신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자. 지성을 활용하여 내린 결론이 아무래도 찜찜하다. 무신론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유신론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이럴 경우, 지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성의 한계성을 인정하게 되었다면 무신론이나 유신론 가운데 하나를 택할 것이 아니라 이 둘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따지는 것은 여전히 지성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종교들의 심층에서 신에 대한 이론을 모두 버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신앙은 지성에도 못 미치는 맹신이나 미신이 아니다. 신앙은 지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영어로 ‘against reason’이 아니라 ‘beyond reason’이다. 구체적으로 신을 우리의 기도나 들어 주는 이로 여기는 믿음은 사실 우리의 지성에도 못 미치는 믿음이다. 약간의 지성만 발휘해도 우리가 부탁한다고 특별히 잘 봐주고 우리가 믿어 준다고 특별히 구원해 주는 신이라면 그런 좀생이 같은 신은 우리가 받들 만한 가치가 없는 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인간 아버지도 자녀들 중에서 자기에게 특별히 잘해 주는 자식만 밥을 주고 나머지는 팽개쳐 두는 일이 없거늘 하물며 하늘 아버지가 기도를 드리고 안 드리고, 믿고 안 믿고 하는 차이로 자기 자녀들을 그렇게 심히 편애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는 것은 임상 실험이나 통계 수치와 관계없는 이야기다. 목사가 병이 나서 온 교인이 그를 위해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드려도 그 목사가 병이 나을 확률은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다. 영국 애국가에 나오는 대로 “여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Long live the Queen)” 하며 모든 영국 국민들이 매일 기도하지만 영국 왕실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환자들에게 기도해 준다고 말하는 것이 환자들의 건강에 도리어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발표까지 있다. “보채는 아이 밥 한 술 더 준다”라는 것은 보통 어머니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은 누가 더 보챈다고 더 잘 봐 주는 분일 수 없다.


지성의 한계를 절감하고 지성의 영역에서 튀어나와 병을 고쳐 주는 하느님의 품에 자기를 맡기는 일은 지성을 초월한 것이라고 보기보다 지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을 가진다면 적어도 유영모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처럼 신을 “없이 계신 이” 정도로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위의 지성인들 중에서 이런 식의 신앙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오강남 |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장,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출처 : '종교너머 아하, 경계너머 아하' 카페(http://www.nj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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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종교의 기존 도그마를 그대로 전수하는 1차원적 학자에서 벗어나 종교의 진수로 가기 위해 도그마를 깨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종교학자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이자 서울대 객원교수다. 저서로 <종교,심층을 보다>,<예수는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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