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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죄? 마음이 죄!

오강남 2015. 06. 14
조회수 18313 추천수 0



가난이 죄

-결국은 가치관의 문제



“가난이 죄”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저지르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주로 가난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박정한 것, 서로 아웅다웅하는 것, 장사에서 뒷거래를 하는 것, 남을 속이는 것, 훔치는 것 등등 모두가 결국은 그만큼 가난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광에서 인심난다고 광에 곡식이 그득하면 인심도 쓰고 옆 사람도 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의식(衣食)이 풍족하지 않은 데 무슨 놈의 예절이고 뭐고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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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맞는 말이다. 가난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대표적 예가 우리가 잘 아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 혹은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 장발장의 경우다. 이 경우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할 놈 없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적 여건과 우리의 마음 상태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나쁜 짓이 모두 가난 때문 만일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뒷거래, 밀수, 위조, 탈세, 뇌물수수, 사기, 불법이민 알선, 투기 등등이 모두 가난하기 때문 만일까? 이 모두가 사흘 굶은 상태에서 생긴 일들일까?


‘가난이 죄’라고 치자. 그러더라도 이 말을 남이 잘 못했을 때 이해해주려는 자세에서 받아들이면 몰라도, ‘내가’ 한 짓, ‘우리가’ 한 잘못의 책임을 몽땅 ‘가난’에다 뒤집어씌우고 우리 스스로는 무죄한 양 자기 합리화, 정당화에 이용하려 드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올바른 심사에서 나온 태도 같지가 않다.


문제는 가난 자체라기보다 ‘말 타면 종 앞세우고 싶어지는’ 마음, 종을 앞세우면 다시 뒤에도 세우고 싶어지는 마음, 이렇게 상한선을 모르고 치닫는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 좀 거창한 용어를 쓰면 물질 제일주의적 인생관 내지는 천민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화근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인생관, 이런 가치관에서는 ‘성공’이라 할 때 일반적으로 가난에서부터 부로, 부에서 더욱 큰 부로 옮겨감을 뜻한다. 성공한 사람이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 그것도 더욱 잘 되어 준재벌이나 재벌 정도가 된 사람을 말한다. 모두 복 받은 사람들로서 우리의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이런 현대적 가치관에서 볼 때 예수님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뿐인가. ‘하늘 궁전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심’으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처지가 된 예수님, 왕자의 위치를 버리고 무소유의 수도승이 된 석가님, 학문적·사회적 특권을 버리고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는’ 위치로 떨어진 바울, 부유한 상인의 아들에서 알거지 신세가 된 성 프란체스코, 변호사로서 누릴 수 있는 일신상의 호강을 포기하고 헝겊 한 조각으로 몸을 가리며 살다간 간디--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공담’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로만 보일 뿐이다. 그야말로 ‘구름 잡는 사람들’의 정신 나간 짓거리가 아닌가.


우리가 예수를 믿든 부처님을 따르든 나만은 그 덕으로 ‘잘 살아보자’를 외치고 있다면, 이는 끝없는 욕망의 줄사다리를 오르려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욱 빨리 오르려고, 열심히 움켜잡는다. 부정이든, 불의든, 부패든 수단 방법을 가릴 것 없이 온갖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난에다 우리의 죄를 모두 뒤집어씌우지 말 일이다. 죄가 있다면 가져도가져도 더 가지고 싶어지는 마음, 아무리 가져도 자꾸만 가난한 것으로 느껴지는 마음, 자족(自足)할 줄 모르는 마음, 아귀(餓鬼) 상태의 마음이다.


공자님 말씀 몇 가지가 생각난다.


“부와 명예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연연하지 말라. 가난과 업신여김 받는 것은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오는 것이라면 거기서 도피하려 하지 말라.(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IV,5).  


“사회에 도가 편만할 때라면 빈천해지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사회에 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부귀를 누리는 것은 부끄러움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VIII,13).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어도 거기에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 불의로 얻어지는 부귀, 내게는 뜬 구름과 같도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 富且貴 於我如浮雲)”(VII,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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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종교의 기존 도그마를 그대로 전수하는 1차원적 학자에서 벗어나 종교의 진수로 가기 위해 도그마를 깨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종교학자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이자 서울대 객원교수다. 저서로 <종교,심층을 보다>,<예수는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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