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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미래를 모두 품은 교황의 인사말

장동훈 신부 2015. 08. 05
조회수 5876 추천수 1



점심 맛있게 드세요!



바티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살았었다.

덕분에 로마에 십수년을 살아도 운이 닿지 않으면 경험 못할 교황의 죽음과 그 후임의 선출을 지척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주일 정오면 광장에 면한 집무실 창을 열고 순례자들을 위해 강론하는 교황의 목소리를 땡볕이나 빗속의 광장이 아닌 기숙사 창문을 통해 편히 들을 수 있었다. 익숙해서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들었던 강론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새삼스레 로마의 이 유구한 주일 전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지금 교황의 말 습관 때문이다. 그가 늘 잊지 않고 챙기는 당부가 그렇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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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연설을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AP뉴시스


이 허드레 인사가 내게 각별하게 들리는 까닭은 단순히 친근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점심 무렵이니 이제 다들 허기를 느낄 거라는 사정을 알뜰히 살피는 상냥함 너머, 적어도 그는 ‘밥벌이의 지엄함’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모두가 짊어진 현실의 혹독함을 알 거라는, 그도 나와 같이 오늘을 견디고 있을 거라는 동질감 때문이겠다. 이런 나의 기대는 그가 보인 지금까지의 행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식 문헌들 속 일관된 그의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문헌은 늘 암울한 현실을 응시한다. 경제 전문가와 자본가들의 거센 반발에도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낙수효과의 허구와 자유시장경제가 불러온 재앙을 성토한다. 정치중립적일 것 같은 환경을 다루면서도 돈이 만든 “인공적 고요”, “소수만의 생태거주지”에 대한 역겨움과 노여움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런 그라면, 삼복더위 프라이팬처럼 달궈진 전광판 위의 노동자들이 까먹는 도시락의 맛을,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감당해야 하는 오늘에 들러붙은 이 어두움의 두께를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막막함, 절망, 두려움 말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진정한 동시대인은 자신의 시대를 경멸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에 속해 있음을,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자라 했다. 시류에 부응하거나 그 시대가 발하는 빛에 눈이 멀지 않는 자, 그러면서도 오늘의 두터운 어두움을 응시하고 어제 또는 내일이 뿜어내는 빛을 쫓는 이라 했다.


결국 ‘시대착오’는 그가 자신의 시대와 맺는 관계란 이야기다. 그렇게 따지면 교황만한 동시대인도, 그의 말만큼 시대착오적인 것도 없어 보인다. 그가, 그의 선임들이, 아니 교회가 집요하게 천착했던 단어들은 오늘에 비추면 죄다 ‘쓸모없어진’ 것들이거나, 있어도 견고한 현실 앞에 맥을 못 출 맹탕의 말들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저 옛날부터 해왔고, 또 앞으로도 해야 할 말들, 그것으로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는 믿음, 이 집요함이 그가 쏟아내는 말들의 힘이다.


밥벌이의 지엄함을 알지만 결코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어제와 내일에 흩어진 낱말들을 귀히 여기면서도 무력한 향수에 젖지 않는 것, 그의 말이 깊은 어둠을 견디는 우리에게 위로인 이유다.


주일이면 여전히 그는 밥때가 다가온 광장의 사람들에게 인사할 게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다시 묻는다. “세월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티칸을 방문한 한국 주교들 앞의 일성이란다. 해지고 희미해진 우리의 어제를 그가 다시 묻는다.


장동훈(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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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훈 신부
가톨릭 사제다. 인천가톨릭대에서 신부 수업중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로 일하고 있다. 늘 사람 옆을 맴돈다. 사람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사람 때문에 분주하며 사람 때문에 운다. 어딜가나 무얼하나, 마지막 시선이 머무는 곳 역시 사람들 언저리다. 때문에 그의 사랑은 ‘질척’거린다.
이메일 : dongframmen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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