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명료한 전사는 붓다, 미망의 사제는 중생

조현 200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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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전사는 붓다, 미망의 사제는 중생


“신은 죽을 수 없기에 인간을 질투” 통쾌한  역전
“지금 후회없이 사랑하라” 인도 고승 말과도 일치

 

 

 

“신전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려주지.
신들은 인간들을 질투해.
신들은 죽으려야
죽을 수 없기 때문이지.
신들에겐 마지막 순간이란 게 없거든.
이 세상 모든 것들 보다 인간들이 
더 고귀한 것은
인간은 사라지기 때문이야.
넌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순 없어.
지금 이 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아.”

-아킬레스
 
 (“Let me tell you a secret, something they don’t teach you in your temple.
 The Gods envy us.
 They envy us because we’re mortal, because any moment may be our last.
 Everything is more beautiful because we’re doomed.
 You will never be more lovely than you are now.
 We will never be here again.” -Achilles)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여사제에게 “인간은 사라지기 때문에 고귀”

 

영화 <트로이>에서 불세출의 전사 아킬레스(브래드 피트)가 적국 트로이성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에게 해준 말이다.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브리세이스를 자신의 막사로 데려와 겁탈하려한다. 이 때 칼을 목에 대고 반항하는 그녀에게 “칼을 쑤셔라!”면서 아킬레스가 태연하게 한 말이다.

 

‘진실’엔 힘이 있다. 아킬레스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브리세이스에게 한 말은 허구를 꿰뚫는 통찰이, 거짓을 허무는 진실이 담겨 있다.

바다를 건너와 처음 아킬레스를 따라 트로이성쪽으로 쳐들어간 병사들은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신전의 거대한 아폴로 신상 앞에선 두려움에 떨었다. 신상에 해코지를 했을 때 따르는 보복과 저주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 때 아킬레스는 “신상은 신(神)이 아닌 상(像)일 뿐”이라며 거대한 신상을 단칼에 베어 넘어트려 버린다.

 

신상은 신이 아닌 상일뿐이라면 단칼에 싹둑

 

‘우상 타파!’

 

그처럼 우상에 농락당하지 않고 우상을 과감히 혁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기독교인들은 우상을 타파한 아킬레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아킬레스가 교회의 십자가나 예수상조차 단칼에 베어버릴 사람인 것을 알면 기겁을 하면서 그런 박수를 거둬드리고말 것이 뻔하지만.

 

<트로이>는 지상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야드>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가 2004년 미국에서 처음 개봉됐을 때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들은 그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과 웅혼한 스케일과 재미엔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리스 신들의 존재를 회피했다”거나 “가슴이 없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영화평론가들은 신의 허구를 통렬하게 꿰뚫어보는 ‘인간’ 아킬레스를 보면서도 수천 년 전 신화시대의 안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명료한 인간의 시대 이끈 감독에  “짝! 짝! 짝!”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인가, 인간인가?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 신을 믿는 이도, 신을 사랑하는 이도, 신을 불신하는 이도, 신을 증오하는 이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신이 원치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다. 자신과 주위, 즉 현실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가? 지금 여기를 사는 것보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나는 과거의 기억 속에 매몰되지 않고, 과거의 신화 시대의 안개를 헤치고 명료한 인간의 시대를 이끈 볼프강 페터슨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 짝! 짝!”

 

트로이 왕의 조카이자 미모의 소유자인 브리세이스는 트로이성 총각들의 간절한 청혼을 물리치고 아폴로 신에게 헌신한 사제가 되었다. 사제로서의 존재 이유였던 아폴로 신상을 단칼에 베어버린 아킬레스를 얼마나 죽이고 싶었을 것인가. 그러나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스가 한 그 말의 진실 앞에 무너진다.

 

신을 부러워했던 인간의 처지, 단번에 뒤집어

 

인간은, 특히 권력과 부를 가진 자일수록 ‘영원’과 ‘불멸’에 목을 메달아 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그 육체를 가지고 불멸을 이룬 자는 없었다. 천하를 얻은 자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했다. 알렉산더도, 진시황도,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그래서 인간은 고통스러워했고, 신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아킬레스가 단번에 신과 인간의 처지를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어 불행한 신, 언제나 유한해서 지금 하는 일이 최고의 일이고, 지금이 최고의 시간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일수 밖에 없는 인간. 그 유한성의 특장을 그는 보여주고, 지금 이 순간 신이 누리지 못하는 특혜, 그 죽음을 기꺼이 맞이한다면 기쁘게 갈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 때 브리세이스가 겨냥한 날카로운 칼끝은 아킬레스의 목에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칼끝을 그대로 둔 채 체위를 바꿔 브리세이스 위에서 덮쳐 섹스를 시작한다. 그런데도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스를 죽이지 못하며, 자신의 신을 내리친 아킬레스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수천 생을 반복한다해도 다시 만난다는 건 드문 일, 그러므로…”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인도의 고승 산티 데바의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 ‘진리의 말씀’을 브리세이스의 머리는 거부하더라도 가슴은 거부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머리는 관념과 허상과 번뇌에 물들 수 있지만, 가슴은 그런 것들에 물들 수 없으므로.

 

자신이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싸우며, 바로 그 순간에 전 존재를 거는 치열한 전사는 ‘불멸’이라는 망상 속을 헤매는 사제나 성직자보다 삶이 명료하다. 불교에서 ‘깨달은 이’(붓다)와 ‘못 깨달은 이’(중생)의 차이는 ‘여실지견’(如實之見·‘있는 그대로’본다)하느냐, 미망을 헤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트로이에서 여실지견하는 것은 전사이며, 미망을 헤매는 이는 사제들이다.

 

미망에서 깨어난 여사제, ‘지금 죽어도 좋을 사랑’ 나눠

 

브리세이스는 비록 적진에 포로로 잡혀가간 했지만 아킬레스에 의해 미망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 죽어도 좋을 사랑을 했다.

 

그러나 브리세이스가 없는 트로이성에서 사제들은 여전히 미망 속을 헤맨다. 아킬레스와 세기의 맞수인 트로이성의 첫째 왕자 헥토르는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탁월한 전사이지만, 전투와 전쟁이 무엇인지를 안다. 단 한 칼에 자신이, 즉 우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아킬레스와 맞설 경우 자신이 아킬레스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관(直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제들은 헥토르가 불굴의, 불패의 전사라면서 계속 전쟁과 전투를 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이 아폴로 신의 뜻이며, 아폴로 신이 지켜주신다면서.
 “신(神)이 대신 싸워줍니까?”

 

“신이 대신 싸워줍니까?”라며 철부지 사제들에 한탄

 

헥토르의 말은 철부지 사제들에 대한 한탄이 서려있다.

 

헥토르는 아킬레스를 이기지 못한다. 그가 아킬레스에게 밀리는 것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근육의 힘이나 속도가 아니다. 그도 전사로서 사제보다 현실을 보는 눈이 뛰어나긴 하지만 아킬레스에 미치지 못한다. 아킬레스는 너와 나, 이 현실을 냉철한 눈으로 꿰뚫어보고 있다. ‘현실’을 보는 둘의 차이는 트로이성 밖에서 둘만의 결투에 돌입하기 전 드러난다.

헥토르는 결투 전 아킬레스에게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산자는 죽은 자에 대해 영예롭게 장례식을 치러주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말한다.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약속 따위는 소용 없어!”

 

아킬레스는 ‘생과 사’에 대해 더 분명히 통찰하고 있다. 생사가 갈리면 몸은 한 공간에 있어도, 영혼은 천지현격 차이로 멀어진다. 서로 소통할 길은 없다. 장례란 산자 스스로를 위무하고 자축하는 잔치일 뿐이다. 죽은 자는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없다.

 

‘생과 사’ 분명히 통찰 “장례 약속 따윈 필요 없어”

 

헥토르가 죽은 뒤에도 사제들은 깨어나지 못한다. 스파르타군은 특공대를 숨겨놓은 거대한 목마를 해안가에 놔둔 채 군대는 전함을 타고, 모두 후퇴한 척한다. 사제들은 적군이 물러난 것은 아폴로 신의 은총이자 신의 승리라면서 목마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성 안으로 갖고 들어가자고 한다. 이 때 목마를 불태워버리자고 한 것은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왕자다. 스파르타의 왕비를 꼬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바람둥이 파리스왕자였지만, 형이 죽은 뒤 복수를 위해 밤을 새워 활쏘기를 해왔다. 활쏘기란 정신 집중에 다름 아니다. 그런 집중력을 통해 그 또한 직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목마가 신의 은총이 아니라 트로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흉물이라는 것을. 그러나 결국 아폴로신의 도움으로 적이 다 물러났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목마를 끌어들인 사제들의 덕분에 그 날밤 난공불락이었던 트로이성은 불타고 한줌의 재로 변한다.

 

 

그리고 아킬레스도 인간의 특권을 누렸다, 죽음으로

 

그러나 어찌 지상에서 사라진 것이 트로이성과 트로이 사람들 뿐일 것인가. 어느 것 하나, 누구 한 사람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는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킬레스도 이날 밤 브리세이스에게 말한 그대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을 누렸다. 그는 죽었다.

 

<트로이> 줄거리

{3200년 전, 미세네(Mycenae)의 왕인 아가멤논(Agamemnon)은 전쟁을 통해 그리스 전체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했다. 오직 데살리(Thessaly)를 제외하고. 아가멤논의 아우인 스파르타(Sparta)의 왕 메네라우스(Menelaus)는 전쟁에 지친 나머지, 그리스 왕국의 최대 라이벌인 트로이(Troy)와의 평화협정을 체결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아킬레스(Achilles)는 그리스 군의 역사상 최강의 전사였지만, 그는 아가멤논의 통치에 따르지 않았고, 아가멤논과 헤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멸에 대해 꿈을 꾼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하곤 한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누구였으며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했는 지에 대해 궁금해 할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시대, 처절한 전투가 한창인 그리스의 데살리(Thessaly, Greece). 가장 잔인하고 불운한 사랑에 빠지고 만 비련의 두 주인공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 사랑에 눈 먼 두 남녀는 트로이로 도주하고,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브렌든 글리슨)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은 동생의 복수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모든 도시 국가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 왕(피터 오툴)이 통치하고 용맹스러운 '헥토르' 왕자(에릭 바나)가 지키고 있는 트로이는 그 어떤 군대도 정복한 적이 없는 철통 요새. 트로이 정복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줄리 크리스티)와 인간인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전쟁 영웅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 (브래드 피트) 뿐. 어린 시절,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황천)에 담궜을 때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묻질 않아 치명적이 급소가 되었지만, 인간 중에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초인적인 힘과 무예를 가진 아킬레스는 모든 적국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를 아가멤논 왕이 빼앗아가자 몹시 분노해 더 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린다. 아킬레스가 전의를 상실하자 연합군은 힘을 잃고 계속 패하게 되고 트로이의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결말이 나지 않는 지루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양쪽 병사들이 점차 지쳐갈 때쯤, 이타카의 왕인 지장 오디세우스(숀 빈)가 절묘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자는 것...

 {만약 내 이야기가 기록된다면, 나는 거인들과 같이 살았다고 쓰여지길 바란다. 사람들은 쉽게 태어나고 죽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있으며... 아킬레스는 군사력의 정점인 헥토르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뭇 영웅들과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짧고 굵게 살았다고 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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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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