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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싶지않은 취업준비생에게

박미라 2018. 03. 25
조회수 2841 추천수 0

 당신의 어지럼증, 잉여라서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취업 탈락 27살 여성 “잉여처럼 느껴져 앞날이 두려워요”


사진12--.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저는 27살 여자이고, 취준생입니다. 말이 취준생이지 사실 백수입니다. 대학 다닐 때 취업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막연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나 봅니다.

졸업 뒤 1년 동안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지만 낙방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날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합격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생각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사회과학 계열을 전공했는데, 어떤 기업도 사회 계열은 찾지 않더군요.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해야겠다 싶어, 전산회계와 전산 세무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고, 또 연봉도 낮고, 야근도 많이 하고, 배우는 것도 별로 없는 등등 너무 안 좋은 정보가 많아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가 웹디자인을 배워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비 지원하는 학원을 택하면, 학원에서는 정부보조금만 챙기고 대충 가르친다 등등 또 안 좋은 글들을 보고 말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리, 사무보조뿐인 것 같아서 이력서를 내봤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에서 가까운 리조트에 ‘프런트’(계산대) 업무 공고가 떠서 지원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처음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장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장이 그게 뭐냐며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나이는 있고, 취직해야겠다 싶어서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지원했나 본데, 이러면 아무도 취직시켜주지 않아요”라는 겁니다. 면접장을 나오니 그냥 눈물만 나더군요.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인가, 바퀴벌레만도 못한가 싶었습니다. 사실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서비스직은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면접 보기가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온 지구가 저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남한테 평가받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잠도 잘 못 자고, 해가 차라리 안 떴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깨어나도 할 일이 없으니까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셔서 아침마다 일하러 나가시는데, 제가 잉여처럼 느껴지고,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무섭습니다. 울고 싶어서 부모님 일 나가시면 몰래 울고 그럽니다. 저는 어쩌면 좋죠? -서윤지


A) 서점에 가보면 청년 대상의 자기계발서가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한때 심각한 열등생이었거나 고난의 청춘기를 보낸 사람들이어서 나름 젊은이들의 고민을 잘 이해하고 또 꽤 설득력 있게 조언합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마라,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라, 자신만의 스펙을 쌓아라, 끈기를 가져라, 자신감을 가져라, 선택과 집중을 하라, 열정을 따르라 등으로요.


그런데 나는 50년을 넘게 살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삶의 올바른 지침인지 말이지요. 이런 조언들은 마치 개인이 노력하면, 개인이 지혜로우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노력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성공도 실패도 모두 한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 문제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자신의 개성이 뭔지 철저히 외면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빈부 격차와 학교 성적이 정확히 비례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마음은 잔뜩 위축되어 있고요. 학교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는 직업교육의 장이 된 지 오래지요. 또 우리 문화는 실수나 실패, 미숙함에 대해 유난히 혹독하고, 개인을 평가할 때는 일상의 행복보다 집단에 대한 기여도를 훨씬 우위에 두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비난당하고 있다는 심정, 뭔가 의무를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긴장해 있습니다.


그렇게 자란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을 경험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감 없이, 혼 없이 이 엄청난 속도의 세상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서윤지 님, 당신이 이토록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건 당신 개인이 문제라서, 쓸모없어서, 그리고 잉여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어지럼증을,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호소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니까요. 학교도 부모도, 이 예측 불가능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좌표로 삼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자신의 욕구를, 자기 생각을 믿을 때 가장 후회 없고, 안전하며 만약 실패해도 거기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아무런 기준 없이 이런저런 정보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서윤지 님, 서비스 직종의 일이 싫다는 자신의 감정을 믿어주세요. 그리고 직업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직업 선택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을 지치게 하지 않는 일 중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는 자신의 판단과 직관도 믿어야 하고요.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성격 유형인지부터 알아야겠지요. 혼란스러운 지금의 시간도 아마 그걸 찾는 시기일 겁니다.


이 세상 무엇이든 결국 첫걸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속이 타더라도 첫걸음 없이 시작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 사회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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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심신통합치유학 박사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여자와닷컴> 콘텐츠팀장을 지냈고,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안내중이다. <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bless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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