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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싸운 영광의 시간

박미라 2018. 04. 27
조회수 4481 추천수 0


당신의 엄격한 자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엄마 때문에 힘든 어린 시절 보낸 여성 “엄한 선생이 된 나, 괜찮나요?”


박미라-.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엄한 선생입니다. 제 아이에게도 단호하구요. 칭찬보다는 더 큰 성장을 위한다며 더 크게 볼 것을 요구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저에게 학부모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려요. 얼마 전 우연히 글을 읽었는데 부모 없이 일찍 혼자 큰 경우나 일찍 자립한 경우는 심리 상태가 아이였을 때로 남아, 그런 부분이 내 아이에게 강요될 수도 있다 하더라구요. ‘나도 했어. 나도 했는데 넌 왜 안 돼? 너도 할 수 있어….’ 혹시 내가 내 아이에게,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단호하고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이런 심리가 아닐까? 내가 더 부드러워지고 칭찬을 많이 해주면 더 크게 키워질 아이들이지 않을까? 요샌 그런 생각들로 마음을 조금씩 바꿔보려고 노력 중이긴 합니다.

고 2 때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갔고 그 뒤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의지하던 큰 산 하나를 한순간 잃고 할아버지 댁에 얹혀살고 하숙집에도 살며, 남 눈치를 정말 많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눈치가 참 없던 제가 눈치 많이 보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꺼억꺼억 소리 내고 우는 일도 많아지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엄마가 떠나기 전, 만나던 아저씨가 있었고 그 아저씨가 저에게 성추행을 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아니라며 당당했고 박차고 나가는 아저씨 팔을 엄마는 붙잡았습니다. 어미로서 할 짓이 못 되지요. 그래서 전 뉴스 기사에 딸 성폭행한 동거남 편을 든다는 그 미친 엄마의 이야기가 새삼 놀랍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10년. 저는 입 밖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뱉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아주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남자친구한테 의지하고 기대고 나쁜 사람들도 만나고, 엄마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되게 비관적이기도 했다가 무척 우울하기도 했다가 폭식도 했다가 약도 먹고…. 삼공일



A) 그렇게 엄마와 헤어지고 10년 동안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니 그 아픔이 얼마나 깊고 컸을지 저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부모 자격 없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삼공일님, 딸로서 엄마를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


그래도 기적적인 것은 당신이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잘 자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무엇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일까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연 글을 읽어보니 10대 후반부터 혼자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살아내신 것 같습니다. 홀로 남겨진 여자아이에게는 외로운 일도, 위험한 일도, 서러운 일도 참 많았을 겁니다. 그동안 잘 버텨주었다고, 당신은 정말 위대한 생존자라고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그 시절, 삼공일님은 자신에게 무척 엄격한 아이였을 겁니다. 잔소리해주는 부모가 없으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사셨겠지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내하고 절제하고 노력했을 겁니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우리 내면의 다양한 성격적 측면을 ‘자아’라든지 ‘인격’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의 바른 자아, 반항하는 자아, 성실한 자아, 게으른 자아, 슬퍼하는 자아, 비판자나 엄격한 자아 등이 그것입니다. 그 자아들은 대부분 우리 내면에 숨어 있다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에 맞는 자아를 전면으로 내보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니다. 삼공일님은 생존을 위해 일찍부터 엄격한 자아를 발달시켰을 거고, 그 인격이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했을 겁니다. 그래서 눈치도 보게 됐을 겁니다. 철없이 굴면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거야라는 엄격한 자아의 경고를 들으면서요.


삼공일님이 아이들에게 엄한 선생님이라면 엄격한 자아가 여전히 당신 내면에서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해. 최선을 다하라고. 너의 장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해. 고생을 두려워하지 마. 징징거리지 마. 변명하지 말라고…와 같은 말을 아이들에게 하시나요? 그렇다면 당신 자신에게도 강박적으로 그런 잔소리를 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힘주어 말하는 것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되뇌는 독백의 내용인 경우가 많답니다.


어떤 순간에는 엄격한 자아가 도움이 됩니다.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발전하고 유능해질 수 있으며, 주위의 인정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너무 오래 우리를 장악하게 되면 우리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우울해집니다. 우리 내면의 모든 흐름을 가로막고 통제하게 되니까요.


삼공일님, 당신에게는 더 이상 엄격한 자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엄격함이 아니라 안도감과 행복감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 지난한 젊은 날을 살아서 통과했고, 지금은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아이의 엄마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기뻐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따뜻한 위로와 극진한 치유가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시절 놀라고 아팠던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시간 말이지요. 아무리 위대한 생존자, 인생의 영웅이라고 해도 남겨진 상처는 있기 마련입니다. 때론 그 상처가 곪아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상담이나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해 아픔을 드러내고 위로받으세요. 또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해 자신을 즐겁고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주세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으며, 당신은 안전한 상태라는 사실을 몸으로 마음으로 실감하세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아이들에 대한 엄격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말이지요.


그리고 당신의 과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세요. 그 시간은 비극의 시간이 아니라 버림받음, 고독이라는 괴물과 싸운 영광의 시간입니다. 비극의 노래를 부를 것이 아니라 영웅담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내고 여기까지 왔는지 그 멋진 이야기를 나는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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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심신통합치유학 박사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여자와닷컴> 콘텐츠팀장을 지냈고,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안내중이다. <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bless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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