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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만의 시간을 버티는 힘

손관승 2018. 01. 17
조회수 4670 추천수 0


111손관승-.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 한 해를 정리한다면 여러분은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직장생활 15년차이며 40대 초반인 한 여성은 ‘척척’한 해라고 표현합니다. 무엇을 물어보든지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하는 척척박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해인들 피곤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올 한 해는 ‘척척’하느라 무척 피곤했습니다. 모임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매우 친한 척, 없는데도 있는 척, 직장에서도 잘 모르는데도 아는 척합니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좋은 척, 기분이 나쁜데도 기쁜 척 하면서 지냈지요. 나와 의견이 달라도 같은 척, 틀렸는데도 옳은 척, 거짓인데도 진실인 척해주면서 살았습니다. ‘나 요즘 얼굴이 망가졌지?’라고 동료가 물어보면 예쁘다고 맞장구쳐줘야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예의상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점점 감정연기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회의가 드네요. 진짜 느낌과 생각을 숨기고 남들 기분에 맞춰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관계에 정말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3척 행복’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예쁜 척의 3척입니다.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얼굴은 더욱 그렇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입니다. 주변에 인정받고 싶기에 인정중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출근해서 출근부 도장을 찍듯 맘에 들지 않아도 여기저기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다가 시간이 지나갑니다. 유명 저자의 북 콘서트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다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장면을 본다면 상대적으로 뒤처진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댓글이나 ‘좋아요’ 수에 연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외롭습니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고독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가끔은 고립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저런 모임에도 나갑니다. 힘들 때는 이웃이 소중합니다. 모임을 하나라도 거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빠지지 않고 찾아나섭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듭니다. 페이스북 스타를 우상으로 만들고, 교회 목사를 우상으로 만들고, 필명을 날리는 작가를 우상으로 만들고, 가수를 우상으로 만들어 그 황금빛에 취합니다.


혼자서 밥 먹는 것을 끔찍이도 못 견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성보다 남성,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당구장에 모이거나 등산모임을 즐겨 찾습니다. 결혼식, 문상 다니느라 무척 바쁩니다. 빽빽하게 메모한 일정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백수가 과로사할 지경이야!”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심리적 보험과도 같습니다. 힘들 때 누군가 챙겨주리라는 심리적 안전장치라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잊힌다는 것은 물론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잊히지 않으려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병이 됩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관계 맺기는 탈이 납니다. 관계가 넓어지고 깊어지던 어느 날 지독한 ‘관계의 중독’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탈이 납니다.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명한 책 제목처럼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면서도 실은 자유를 두려워합니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도망가려고 하는 게 우리입니다. 막연한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정작 중요한 자기 자신은 빼놓은 채 말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질 못한다면 ‘사회독’(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을 의심해야 합니다. 직관과 통찰을 중요시하는 수도자들은 사막이나 산속 같은 독립된 공간에서 얼마 동안 홀로 생활하도록 훈련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관계에서 오는 독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기 때문인데, 관계도 그러합니다. 세상과 뚝 떨어져서 홀로 지내는 그 기간을 견뎌내야 비로소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두렵지 않은 상태가 찾아온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가리켜 ‘독존의식’이라고 합니다.


신문기자로 있다가 다른 직업으로 변신한 이들은 ‘잉크물이 빠지는 데 2~3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잉크물’이란 기자라는 자의식을 말하지만, 사람관계 속에 푹 빠져 지내던 생활도 의미합니다. 일찍이 정신치료에서는 혼자 있는 능력을 성숙한 성격의 지표로 보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동안 만나게 될 자기 안의 여러 가지 단면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서 소외된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소외된 사람이 어떻게 세상 그 누구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남을 쫓다가 정작 나 자신을 놓칩니다. 다른 이들의 방식을 따라 하다 내 방식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을 잃는 것은 물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 정작 잃어버리는 나 자신입니다. 나다움이란 내 식으로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합니다.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이 최고의 매력입니다. 인맥, 소중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인맥은 정리해야 합니다. 위기 때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듯 과감히 인맥 구조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자기 혁신 아닐까요? 홀로 있는 시간을 버텨내야 자기 혁신이 시작됩니다. 가끔은 홀로 지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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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
직장인의 마음을 주제로 글 쓰고 강연 하고 있다. 언론인과 iMBC 대표이사, 세한대학교수, 중앙대학 겸임교수를 거쳤다. <투아레그 직장인학교>, <그림형제의 길>,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탑 시크릿 그림자 인간>,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 등의 책을 썼다.
이메일 : ceonom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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