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단순함과 침묵…봉쇄수도원 일상 162분

조현 2009. 12. 23
조회수 25719 추천수 0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 조용한 센세이션
알프스 자락 ‘금지 구역’서 2년6개월 촬영
12일만에 1만명 관람…확대상영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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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소란스런 일상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곧잘 어디 조용한 산사나 피정센터에서 며칠쯤 세상만사를 잊고 쉬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홀로 그런 곳에 간 세속인은 너무도 고요해 지루하기 그지없는 그 일상에 적응하지 못해 그토록 벗어나려고 했던 세속을 그리워하며 ‘고요한 침묵’ 밖으로 금세 뛰쳐나오고 만다.
 
그처럼 현대인에게 분주하고 소란스런 삶은 가깝고 단순과 침묵은 멀다. 연말연시는 지나간 해에 대한 성찰과 다가올 해에 대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더욱더 삶을 단순화하고 내면을 고요히 할 것을 요구하지만, 다른 때보다 더 소란스럽게 보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 풍부한 때이기도 하다. 극장가에도 짜릿함에만 열광하는 연말 관객을 동원하기 위한 블록버스터의 유혹은 더욱 거세다.
 
58666_P13_103019 copy.jpg그런데 시대의 이단 영화가 등장했다. <위대한 침묵>이다. 그동안 누구도 쉽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고요한 가톨릭수도원의 내부를 그대로 비춰주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를 시종일관 채우는 것은 알프스산맥 1300m 고지의 가톨릭봉쇄수도회인 카르투지오수도원의 자연과 일상뿐이다. 어떤 윤색도 없다. 봉쇄수도원이란 그야말로 외부와 단절돼 자급자족하며 하느님과만 통교하는 수도자들만의 공간이다. 죽어서 뼈조차도 나올 수 없이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그곳에 머물며 자신을 가두는 곳이다. 이 다큐는 조명도, 음악도, 대사도 없다.
 
독일 출신 필리프 그로닝 감독은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해서도 마음속의 침묵을 맛보지 못했던지 ‘침묵을 다룬 구름 같은 영화’를 찍겠다면서 영화감독이 돼 카르투지오수도원에 촬영 허가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무려 19년이 지난 뒤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그런데 스태프 없이 감독 혼자서만 들어와 독방에서 일상생활을 수도사처럼 함께하며 일체의 조명 없이 수도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촬영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2년6개월간 촬영한 것이 이 다큐다. 상영시간 162분의 대부분은 수도사가 기다랗게 매달린 종을 잡아당기는 모습과 이어 알프스를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수도원의 산하 위에서 구름의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고요히 앉아서 기도하거나 성서를 읽거나 일을 하는 수도사들의 일상이 그대로 보일 뿐이다. 자극제라곤 없는 2시간42분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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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촌의 씨네코드 선재에서 지난 3일 단관 개봉한 이 영화는 98%의 좌석점유율을 보이며 12일 만에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2주 한정 상영 예정이던 영화는 24일부터 일반 극장으로 확대 상영될 예정이다.
 
‘인공적 자극제’ 없는 그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 것일까? 수도사들의 지극히 단순한 삶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마침내 관객의 내면에서 깊은 울림을 가져다준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도록 해준 시력 상실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며 늙은 장님 수도사가 평화로운 미소를 지을 때, 수도사들이 모처럼 눈 쌓인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순박한 웃음을 터뜨릴 때, 어두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내면에도 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마침내 알프스 수도원의 명상은 고요한 객석의 명상으로 이어진다.
 
6000374000_20091223 copy.jpg바쁜 연말 지방에서 버스까지 전세내 이 다큐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순과 침묵은 ‘잃어버린 고향’인지 모른다. 우리는 왜 그 고향을 찾아야 할까.
 
소백산의 ‘산위의 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는 “평소 말과 행동을 내보내는 데만 급급하면서 살게 마련이지만 침묵은 내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을) 듣고, 느껴서 자연의 질서와 신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라며 “트라피스트수도회 같은 곳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침묵하게 하는 것은 움직이면서 행동과 말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도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수다와 번뇌를 잠재우고 고요히 내면과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때다. 모든 이의 고향, 침묵 안에서.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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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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