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선인들이 흘린 붉은 피 더듬어가는 천주교 순례길

휴심정 2014. 05. 09
조회수 13861 추천수 0


[매거진 esc] 여행

선인들이 흘린 붉은 피 더듬어가는 천주교 순례길
오는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주요 방문지 중 한곳인 당진 솔뫼성지와 버그내길


천주교순례길1.jpg

*신리성지의 성당 옆에 세워진 종탑.
 
삽교천은 충남 홍성에서 발원해 북으로 흘러, 당진·예산·아산의 넓은 들을 적시고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조영남이 노래 불러 유명해기도 한 지명 ‘삽다리’(섶다리, 예산군 삽교읍)에서 강 이름이 유래했다. 삽교천 하류 서쪽 너른 평야지대에 당진시 합덕읍이 있다. 백제 때부터 있던 저수지, 조선 3대 방죽으로 불린 합덕방죽(합덕제·연제)으로 이름난 마을이다.


합덕은 합덕방죽의 보수·개축에 참여한 장정들이 ‘힘을 합해 덕을 쌓았다’는 뜻의 ‘합심적덕’(合心積德)에서 지명이 유래한 곳이다. 1000여년에 걸친 주민들의 덕이 쌓여 비옥한 땅을 이룬 합덕과 그 일대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순례 코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첫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솔뫼성지)이자, 조선말 무수한 천주교 신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지역이다. 오는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방문지 중 한 곳이 이 지역이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인 탐방객 발길이 부쩍 늘어난 합덕 일대의 천주교 성지와 역사유적 등을 둘러봤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분 차별 없는 공평한 세상을 희구하다 고통받으며 사라져간 선인들의 자취를 더듬는 여정이면서, 험난한 세상 견디느라 다치고 여윈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여정이다.


천주교순례길2.jpg


솔뫼성지 경내 건물들
외관을 철판으로 장식
철판 녹슬며 띠는 붉은색은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상징


천주교순례길3.jpg

*버그내 순례길 안내 표지.
 
즐비한 천주교 성지 잇는 버그내 순례길

충남지역 중에서 당진·아산·서산·홍성·예산 일대를 따로 내포문화권이라 부른다. 내포는 육지 깊숙이 파고든 해안 지역을 뜻한다. 내포 일대는 예로부터 중국 상선이 드나들며 무역하던 길목이면서,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위해 찾아들던 통로였다. 전국 108곳에 이르는 천주교 성지 중 17곳이 내포를 중심으로 한 충남 지역에 몰려 있다.


김대건 신부 생가가 있는 당진 솔뫼성지나, 조선말 최대 교우촌으로 불리는 신리성지, 그리고 사제와 신도들이 고문받고 처형당했던 서산 해미읍성 일대와 보령 갈매못 등 천주교 성지들은 신자들의 순례 코스가 된 지 오래다. 충남도에서는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관광코스로 3개 코스의 천주교 성지 순례길을 조성했는데, 그중 하나가 솔뫼성지와 합덕성당, 합덕제, 무명 순교자의 묘, 신리성지를 잇는 13.3㎞의 ‘버그내 순례길’이다. 해마다 5월1일과 9월1일, 대전교구 주관으로 ‘내포 성지 도보순례’가 벌어지는 순례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천주교순례길4.jpg

*버그내 순례길의 ‘무명 순교자의 묘’.
 
‘버그내’란 합덕읍내를 거쳐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물길 이름이면서, 조선말 천주교 신자들이 비밀리에 만나던 장소인 합덕장터의 옛 지명이다. 버그내 순례길의 출발지가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생가 터인 솔뫼성지다. 소나무 우거진 동산 옆에 김대건이 10살 무렵까지 살았던 생가 터가 있다.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해미에서 순교), 작은할아버지 김종한(대구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서울 새남터에서 순교)과 김대건(새남터에서 순교) 신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집이다. 1906년 순교 60돌을 맞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생가 터를 확인한 뒤, 1946년 순교 100돌을 기념해 생가를 복원하고 성지로 조성했다. 경내의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선 김대건 신부 일대기와 천주교 박해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교황 방한 기념 ‘교황 특별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성당·기념관도 방문자의집도, 원형경기장을 본뜬 솔뫼아레나도, 화장실 건물도, 솔뫼성지 경내 대부분의 건물들 외관이 철판으로 장식돼 있다. 이영화 문화관광해설사는 “철판이 녹이 슬면서 자연스럽게 붉은색을 띠도록 했다”며 “철판의 붉은 녹은 순교자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신자들이 남의 눈을 피해 만나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며 신심을 다지던, 합덕읍내 버그내장터에선 지금도 닷새마다 합덕장(1, 6일장)이 열린다.
읍내에서 남쪽으로 합덕삼거리 지나면, 합덕의 지명이 유래한 합덕방죽 옆 언덕에 합덕성당이 나온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지은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예산에 있던 양촌성당이 옮겨온 뒤 한옥으로 지었던 것을 페랭(백문필) 신부가 1929년 새로 지은 것이다. 전면에 세워진 2개의 종탑이, 최근 지은 것처럼 깨끗하고 탄탄한 건물 외관을 돋보이게 한다.


천주교순례길5.jpg  

*신리성지의 ‘다블뤼주교관’.
 
조선 3대 방죽의 하나인 합덕방죽

합덕성당 뒤로 보이는 광활한 평야지대 들머리에 합덕의 지명 유래가 된 합덕방죽(합덕제)이 있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옆이다. 길이 약 1.7㎞에 이르는 제방으로 제방 양쪽 끝 일부와 수문 등은 석축으로 이뤄져 있다. 김제 벽골제, 황해도 연안 남대지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방죽으로 꼽히며 삽교천 하류 농경지에 물을 대던 저수지였다. 본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과의 전투에 대비해, 부근 성동산에 산성을 쌓고 병사와 군마를 주둔시킨 뒤 식수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못을 만들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수지에 연꽃이 많이 피어 연제·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60년대 중반 예산의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진 뒤 저수지로서의 구실을 잃어 제방만 남고 내부는 농경지로 개간됐다.


합덕방죽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요한 저수지였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뜻하는 ‘합덕방죽에 줄남생이 늘어앉듯 하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고, <조선왕조실록> 곳곳에서 보수와 중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폭 5~6m의 방죽길을 따라 가면 방죽 끝 대합덕리 농가의 밭둑에서 8개의 빗돌 무리를 볼 수 있다. 19세기 전후 합덕제의 보수와 중수를 기념해 세운 빗돌들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1800년과 1827년, 그리고 1911년에 세운 연제중수비와 1851년에 세운 암행어사 김유연 영세불망비 등이다.


‘버그내 순례길’ 팻말을 따라 한동안 마을길 산길을 지나면 성동리의 ‘원시장(1792년 순교)·원시보(1799년 순교) 우물’을 거쳐 무명 순교자의 묘에 이른다. 쌉사리방죽(백미제)이 내려다보이는, 무덤들 무수히 흩어진 야산이다. 1972년 주변에서 목이 없는 시신 32구가 무수한 묵주와 십자가들과 함께 발굴됐는데, 이를 여섯 봉분에 합장한 것이다. 그 위쪽엔 얼마 전, 옆 공동묘역에서 옮겨온 손자선 순교자 가족 묘 14기도 모아 놓았다. 여기서 2.4㎞ 떨어진 신리성지 성당의 수녀들은 매일 이곳을 찾아 무명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신리는 19세기 중반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하고 규모 큰 천주교 교우촌으로,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의 비밀교회)로 불린다. 신리성지의 핵심 유적은 내포 지역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의 생가이자, 이곳에 머물며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로 번역하던 다블뤼 주교의 유허지인 작은 초가다.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 땅에 첫발을 내디딘 뒤 1866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간 수많은 저술과 자료 수집을 통해 조선 천주교회사의 기초를 닦은 이다.


초가를 복원할 때 옛집에 쓰였던 주춧돌, 기둥 등의 일부를 그대로 사용해 옛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신리성지엔 최근 천주교 박해기를 그린 미술작품들을 전시하는 순교자기록화관을 짓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버그내 순례길을 탐방하려면, 물고기 그림 안에 ‘버그내순례길’을 뜻하는 ‘ㅂㄱㄴㅅㄹㄱ’을 써넣은 팻말을 따라가면 된다. 코스의 대부분이 드넓은 평야지대로 그늘이 없다. 여름철엔 말 그대로 고행의 길이 되겠다. 봄철 아침 시간을 이용해 걷는다면 천주교 박해사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 건축물, 농경수리 발달사를 두루 알아보는 실속 있는 탐방길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당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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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묵장
 
>>> 당진 합덕 여행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가다 송악나들목에서 나가 38번 국도를 탄다. 운정교차로에서 우회전한 뒤 신평 지나 거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합덕읍소재지(운산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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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곳 당진시 우강면 덕평로 솔뫼성지 부근의 향토음식점 길목의 꺼먹지정식(1인 1만5000원), 두렁콩밥상(1인 1만원), 쌈밥(7000원). 꺼먹지정식엔 ‘꺼먹지’(무청 동치미)와 들깨를 넣어 비지찌개처럼 끓인 ‘깨묵장’(사진)이 함께 나온다.
주변 볼거리 합덕방죽 들머리에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있다. 합덕방죽의 역사와 우리 농촌 수리민속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어 들러볼 만하다. 멀지 않은 곳에 소설가 심훈의 유허지인 송악면 부곡리의 필경사, 해군 상륙함·구축함 체험을 할 수 있는 삽교호 관광지의 함상공원도 있다.
여행 문의 당진시청 문화관광과 (041)350-3114, 솔뫼성지 (041)362-5021, 신리성지 (041)363-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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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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