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잔스카르 순례기]근엄과 천진 사이, 환생한 네 살 아이 린포체

조현 2010. 09. 28
조회수 12712 추천수 0
<7>히말라야 최고 어른
시봉 받으며 법회장 높은 자리에 의젓하게
졸음 못 참고 자다 깨고 누나도 ‘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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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샴텐링 사원에서 열린 리종 린포체의 겔룩파(황모파) 법좌(종정) 착좌 환영 법회장에서 최고 귀빈은 어린 아이였다. 히말라야 최고 어른이 네살 어린 아이라니. 티베트불교권 밖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고 귀빈 방석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이는 바쿠라 린포체다. 2006년생으로 만 네 살이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무색케하는 누브라 계곡의 한마을에서 난 그는 태어나자마자 전생 바쿠라 린포체의 환생자로 인정됐다.
 
비행기편으로 라다크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누구나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게 바로 전생 바쿠라 린포체의 모습이다.  라다크의 통로인 레의 공항 입구엔 전생 바쿠라 린포체의 사진이 걸려있다. 공항이름이 바쿠라린포체공항인 것만 보아도 라다크에서 그의 비중을 알 수 있다.

 

 
 
붓다의 주요 제자 중 한 명으로 20대에 걸쳐 재탄생
 
전생 바쿠라 린포체는 지난 2005년 86세로 열반하기까지 라다크의 정신적 지주였다. 인도가 영국으로 독립하도록 독립운동에도 투신했던 그는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와 각별한 사이였다. 인도가 독립된 뒤 잠무·카슈미르주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라다크는 잠무·카슈미르주에 속한다.

 
바쿠라 린포체는 또 네루 수상에 의해 몽골대사로 임명돼 두 차례에 걸쳐 8년 동안 봉직했다. 라다크와 티베트, 몽골은 모두 티베트불교권이기 때문에 티베트불교 사원 고승인 그를 몽골 대사로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네루 수상은 또 델리의 요지인 보드 비하르의 대규모 땅을 바쿠라 린포체에게 불하해줘 그가 인도의 수도에서 히말라야불교를 펼치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인도 전체적으로 볼 때 라다크는 히말라야의 궁벽한 산골에 불과하다. 그 라다크 태생으로 네루 수상과 각별한 교분을 갖고 히말라야불교를 널리 펼친 바쿠라 린포체는 라다크인들의 자랑이다.
 
하지만 원래 바쿠라 린포체는 그런 외적인 활동이 아니라 그의 법계 때문에 라다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원래 ‘바쿠라’는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생존 당시 16나한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은 주요 제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히말라야 땅에 불교를 심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라다크에 태어난 것이 바쿠라 린포체의 시작이었다. 전생 바쿠라 린포체가 19대, 현생 바쿠라 린포체가 20대다. 현생이 20대밖에 안 된 것은 오래도록 태어나지 않은 적도 있기 때문이란다.
 

 
온종일 무게 잡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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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바쿠라 린포체가 열반에 들자 티베트불교 고승들은 그의 후신을 찾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전생 바쿠라 린포체가 쓰던 물건들을 골라내 환생자로 인정받았다. 달라이라마도 어린 아이가 바쿠라 린포체의 환생자임을 선포했다.

법회장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아이 옆에는 시봉하는 스님이 굳건히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 시봉자는 전생 린포체의 제자다. 스승을 모시던 제자가 다시 태어난 어린 스승을 곁에서 돌보고 있는 셈이다.

 
티베트불교의 의식은 지겨울 만큼 오래도록 지속된다. 온종일 계속돼 어른들도 다리가 저리는 법회장에서 어린 아이가 그렇게 앉아있는다는 것이 쉬울 리 만무하다.  아니나다를까. 바쿠라 린포체는 잠추세를 하더니 어느새 시봉 스님의 품에 안겨 잠을 잔다.

그런데 어느새 눈을 떴는가 싶더니 뒤에 있던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면서 근엄함과 장난끼 사이에서 갈등하는 난해한 표정을 짓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자아이는 바쿠라 린포체의 속가의 누나란다. 젖먹이 때부터 떨어져서 사원에서 살아가는 바쿠라 린포체지만 누나와 뛰놀고 싶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히말라야 최고 어른으로서 무게를 잡고 있기에 현생 바쿠라 린포체는 너무도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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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능력 믿되 교육과 수행으로 ‘독특한 영재 교육’
 
티베트불교의 린포체 제도는 독특하기 그지없다. 전생과 후생을 믿는 티베트불교에선 대부분의 중생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가운데 업력에 의해 후생이 결정되는데 반해 깨달음을 얻은 고승들은 자신의 원력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생 린포체가 다시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어린 아이를 찾아내 그를 린포체로 추대해 존경한다.

 
린포체로 선정됐다고 해서 전생의 능력만 믿고 어린 아이를 무조건 떠받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교육과 수행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불교만의 독특한 영재 교육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미리 싹수가 있어보이는 어린아이를 골라내 티베트불교 사원에서 철저히 교육 시켜서 불교의 고승으로 양성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티베트불교에서 린포체 제도의 문제점도 다각도로 나타나고 있다. 어려서부터 대우를 받는데 익숙해진 일부 린포체들이 교육과 수행은 뒷전으로 미루고, 개인의 치부와 사적인 평안만을 갈구해 승가 대중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달라이 라마도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탄생 이론은 ‘독단적 교리보다 도덕적 수단’

 
우리나라에 <티베트불교 입문>(청년사)이라는 책으로 번역된 <불교의 본질>의 저자인 탈렉 캅괸 린포체는 애초 불교에서 재탄생의 이론은 ‘독단적인 교리’로서가 아니라 ‘도덕적인 수단’으로 제시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힌두교는 이런 업의 이론을 이용해 상위계급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부유하거나 상류층에서 태어날 만큼 전생에 공덕을 쌓았으며, 천민들은 전생이 죄업을 쌓았기 때문이라며 계급을 고착화하는 논리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캅괸 린포체는 “불교는 운명론을 조장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만일 불만스러운 상황에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거나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업의 이론은 운명론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는 개념”이란다.

불교는 모든 행위에 따른 결과인 인과론을 중시한다. 따라서 좋고 나쁜 재탄생들은 보상이나 징벌이라기보다는 우리들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게 티베트불교 학자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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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이 어찌 되었건 미래세의 원인이 될 현생이 아름답기를

 
현생 바쿠라 린포체는 부유하고 후덕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뒤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생모가 앉아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후덕해 보인다. 바쿠라 린포체가 전생의 공덕으로 그런 집에서 태어났고, 다시 라다크의 최고 어른으로 대우를 받는지, 아니면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 없이 운 좋게도 바쿠라 린포체의 후신으로 선정돼 이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바쿠라 린포체의 후신으로 선정된 게 그의 개인적 삶에서 행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전생이 어찌됐건 이제부터가 중요할 뿐이다. 오직 그가 인생의 중후반부와 후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현재의 삶을 잘 살아가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과거생이 어찌 되었건 미래세의 원인이 될 현생이 아름답기를!!!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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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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