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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티와 막내

일반 조회수 7560 추천수 0 2009.07.01 20:40:42
초록별grimnara
푸티와 막내
 (2009.1.1)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신년 1월부터 동물사랑실천협회 CARE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된 초록별 한민섭이라고 합니다. 1월 1일 새해 기도를 드리며 써두었던 글을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바빴다는 핑계로 이제야 새해 인사도 드리며, 이 푸티와 제 막내 동생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재작년인 2007년 여름, 저는 중국 청도에서 일하던 직장을 갑작스레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까닭은, 장애인인 제 막내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어머니에게만 막내를 맡길 수 없어 부랴부랴 귀국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루라도 놀 수는 없는 처지라 지인(知人)의 소개로 녹색당을 한국에서 만들고자 하는 초록정치연대에서 일하기로 하였습니다.
 
제 막내는, 막내가 중학생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고 오랫동안 입원과 수술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결국 뇌는 완치가 되었는데 오랜 병원 생활로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다가 자폐증상까지 보이며 오랫동안 집밖에 나오지 않고 생활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 그렇게 마음으로 막내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는 살가운 사람이 못되어,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사별하신 뒤 홀로 십여 년 동안 막내 똥오줌을 치우고 지린 빨래하시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아픈 아이가 밥도 잘 먹지 않고 바지에 오줌 똥 싸고 방구석에서만 누워있어서, 제가 그 아픈 아이를 욕하고 윽박지르고 때리며 밖에 나가자고 질질 끌고 나갔었던 일들도 생각납니다.
 
며칠 전 출근하여 송아지만한 잘 생긴 강아지가 사무실 문 앞 복도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에게 버려져 차도로 마구 뛰어드는 것을 박소연 CARE 대표님께서 신호위반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온 아이라고 합니다. 털이 반쯤 듬성듬성 빠진 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 눈동자를 보며, 저는 이십년도 더된 지난 일들이 하나둘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막둥이는 우리 삼형제 중 형, 누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늦둥이인데, 평소 집안에서 함부로 동물을 사서 기르지 못하시게 하던 아버지께서 어쩐 일로 허락하셔서, 막내는 어릴 적에 강아지를 얻어 기른 적이 있습니다. 막내는 그 아이가 작고 귀여워 ‘푸티’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나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시는 바람에 엄마젖도 못 먹고 자란 막내는, 형과 누나가 학교가 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어둑어둑해져야 돌아올 때까지 그 강아지와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2년쯤 지났을까요,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게 어머니께서는 심부름으로 푸티를 할아버지 댁에 가져다 드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내에게는 어머니께서 말씀하겠다고 하셔서, 저는 할아버지 댁에서 집 지킬 개가 필요한가보다, 뭐 그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눈발이 날리는 한 겨울이었습니다. 택시가 서고 푸티를 안고 내렸는데, 이상하게도 푸티는 땅에서 한걸음도 떼지를 않더군요. 발이 땅바닥에 꼭 붙은 것 마냥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뭔가에 놀라 겁에 질린 것처럼. 아무튼 억지로 푸티를 끌고선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여 저녁 먹고 자고 내일 아침에 가려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습니다. 푸티가 꼭 늑대처럼 목을 길게 빼며 ‘어우우우오우’하고 서글피 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밤새 그렇게 울었습니다, 밤새 눈 내리던 그날에.
 
집에 돌아온 뒤, 며칠이 지나고 막내가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댁에 푸티를 보러 가겠다고 조르자, 어머니께서는 할아버지 댁에서 푸티를 딴 곳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오래간만에 먹은 그 고깃국이, 아버지 몸이 안 좋으셔서 푸티로 할머니께서 만들어 보내신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서 먹은 것을 모두 다 토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막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는데도 막내는 그런 사실을 푸티가 그랬던 것처럼 느꼈는지 그렇게 며칠을 겨울이파리처럼 울었습니다.   

 
부랴부랴 귀국하고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막내는 제 결혼식 삼일 전에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막내가 세상을 떠나고 몇 개월 뒤에, 저는 나이 사십이 되어 '꼬마천사'인 첫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안네 프랑크를 사랑하고 지미 핸드릭스를 동경하며 전자기타를 배우던 나이 스물 셋인 막내를 화장터에서 가루로 보내며 “내 나이 사십, 사람 하나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죽게 한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뇌까리던 저를 지금 위로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것은, 예수님께 드리는 짧은 기도들과 제 앞에서 벙싯벙싯 미소 짓는 곧 9개월이 되는 이 '꼬마 천사' 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생명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이 꼬마 천사는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울음으로 때로는 똥오줌에 벌겋게 짓무른 바알간 엉덩이로 가르쳐 주나 봅니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 하나둘쯤은 혹처럼 달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슬픈 일 앞에서 눈물은 마르고 이제는 가슴만 미어지는 나이가 되어, 이제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될 수 있다면, 그동안 살면서 여러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생명의 친구들에게 빚지고 사는 이 마음도 조금은 스스로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고속도로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 개를 구하기 위해 총알처럼 달리는 차들 사이로 가서 친구개의 시체를 물고 도로를 빠져 나온 개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저는 동물사랑 실천이라는 이 초록빛 에너지 버스를 타고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쌀쌀한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 살림살이 가운데도 남의 말은 눈곱만치라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말싸움 잔치만 명분싸움만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국회의원이네 지도자입네 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작고 여린 생명들에게 소박하지만 훈훈한 사랑을 배우는 부끄러운 우리라도 서로 격려하고 서로 함께 나누는 초록빛 씨앗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봅니다. 올해는 조금 더 서로서로의 살림살이에 관심과 나눔이 있는 한해라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일단 푸근해 질것 같습니다. [초록별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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