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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19

도올은 말한다.(p164~169)

‘[강해](3-2) ·····. “所有一切衆生”은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뜻이다. 그런데 “衆生”이란 무엇인가?

여기 “衆生”이란 “sattva”의 번역인데, 玄奘은 “有情”으로 번역했던 바로 그 말이다. 그런데 이 “sattva”가 계속 문제되는 이유는 바로 보살의 “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흔히 좁은 의미의 衆生은 인간만을 가르킨다. 그러나 윤회의 범위를 생각할 때, 衆生은 인간에게만 국한 될 수는 없고, 정확하게 “살아있는 모든 것”이며, 요새 말로는 “生物”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生物중에서도 식물은 제외되는 것 같으며 動物만을 지칭하는 것 같다.(우리말의 “짐승”이 “衆生”에서 轉化된 것이다.)’고 말한다.

- 중생을 생물로써 “살아있는 모든 것”이라고만 안대도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밝힌 말치곤 ‘정확한’ 이해의 말이 아닌데 항차 동물만을 지칭한 것 같다고 상상하는 건 참말 이 ‘정확함’에서 아득하기 짝이 없는 오해의 말이다. 중생은 연기의 실상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인 세계로써의 이 성품의 삶을 망라한 말이다. 이 중생이란 말을 설령 인간으로만, 또는 동물로만 지칭하는 것으로 표현한 경율론이 있단다면 이는 대승으로써의 중생은 소승으로써의 동물이며 인간 등의 삶으로써 그 총체적 작동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임을 증명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석가여래의 정신은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삼세는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생·중도·여래·열반의 대·소승적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라고 아는 이 깨달음이다.

중생의 ‘중’은 명사로써 중도의 ‘중’, 여래의 ‘여’, 대·소승의 ‘대·소’, 보리살타의 ‘보리’, ‘실상, 진실’에 당하는 말로써 정확히 저 ‘삼세의 시·공간’을 표상한 말이다. 또 중생의 ‘생’은 동사로써 중도의 ‘도’, 여래의 ‘래’, 대·소승의 ‘승’, 보리살타의 ‘살타’, ‘연기, 진리’에 당하는 말로써 정확히 저 ‘총체적 작동’을 표상한 말이다. 석가여래 이후 그의 정신을 정확하게 계승한 사람들의 말은 다 이를 밝혀 증명한 이야기의 말이다.

현장이 보리사트바(보리살타)의 사트바를 다들 중생으로 번역하는데 “有情”으로 번역했다면 이는 사트바의 중생을 유정이라는 다른 말로 같은 의미를 표상한 것일 뿐이다. 유정의 ‘유’는 중생의 ‘중’이며 ‘정’은 ‘생’의 작동이다. 이렇단다면, 보리살타가 중생이란다면 그럼, 보리와 살타는 같은 의미란 말인가? 그렇다. 보리는 살타며 살타는 보리인 것이다. 연기는 실상인 것이며 실상은 연기인 것이다. 진리의 진실도, 衆의 生도, 如의 來도, 中의 道도 이와 같다. 왜냐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重重無盡인 때문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모든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삼세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하나의 성품이므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서의 성품은 인연이며 동시에 결과가 한없이 중첩하는 중중무진의 대·소승적 보리살타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보리살타가 실재의 실체라고 알지는 마시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보리살타라서 보리살타가 아니라 다만 내가 보리살타라고 인식할 뿐이다. 이 인식작동의 보리살타인 내가 의지(오온의 행)하는 대로 따르는 보리살타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다. 세계는 오직, 내 이 의지의 隨照며 이를 따르는 返照의 빛으로 빛나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 연기의 실상이다.

그리고 우리말의 짐승이란 말은 ‘중생’에서 전화된 말이 아니라 소승·대승을 흉내 내 만든 말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온통 대·소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乘이므로 사람도 승이며 동물의 가축도 승이다.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짐이며 일을 실어 나르는 가축으로써의 승, 짐승인 것이지 싶다. “짐승만도 못한 놈”이란다면, 無知(智)하여 시키는 일만 할 줄 알지 머릴 써 윤리 따위를 스스로 세워 사는 슬기로움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도올이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임을 모르고 언어문자의 의미며 뜻에만 사로잡혀 보살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열반의 죽음으로 멸도하겠단다고 외치는 것이라며 불교는 비극이라고 말하는 도올은 이 사유의 이 말을 하는 보살이다. -

도올은 말한다.

‘“有情”의 “情”은 곧 “마음의 작용”이며 “감정”내지 “의식작용”을 가르킨다. 넓은 의미에서는 “지각”(sensation)을 가르킬 수도 있다. 衆生은 원래 [莊子 德充符]의 “幸能正生以正衆生”이라는 말에서 왔는데, 보통 이를 “뭇사람”으로 번역하지만, 莊子사상의 근본 취지로 볼 때 “衆生”이 꼭 인간이나 동물에만 국한된다고만 해석할 수도 없다. 하여튼 “衆生”은 佛性을 지니는 것이며 佛性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리고 그것은 無情(=非情)과 구분되는 有情이다. ·····.’고 말한다.

- 안타깝다. 도올이 有情을 두고 ‘작용 작용’하면서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총체적 작동의 연기·진리로써 이 성품의 삶인 실상·진실임을 눈치 채지 못하는 건 참말 안타깝다. 莊子를 꿰뚫는 해박한 지식의 지혜작동을 한 대도 ‘중생’이 곧 불성으로 작동하는 부처로써의 진리의 진실임을,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임을 아는 바른 앎,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인 진리인식에 이르지 못한다면 도올은 바른 것을 보고 헛것을 생각하여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중생은 ‘無情(=非情)과 구분되는 有情이’라니 ·····. -

도올은 말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인도에서는 이 衆生 즉 “사뜨바”를 9종류로 분류하여 말한다. ·····.

뭇 보살 마하살들은 이 모든 아홉 종류의 중생들이, 그들의 무명으로 인하여 윤회의 바퀴를 돌고 있는 불쌍한 현실을 공감하여, 이들을 모두 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滅度”의 “滅”은 “불울 끈다”는 의미요, “度”는 “건네다”(渡), 제도한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고해의 강물을 건넌다, 즉 구원한다는 뜻이다. 滅 이란 “끔”이다. 무엇을 끄는가? 그것은 불을 끄는 것이다. 불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존재는 불로 훨훨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욕망·갈애의 불이요, 곧 연기의 불이요 윤회의 불이다.’라고 말한다.

- 지금 석가여래가 보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보리살탄데, 이 보리살타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뭇 보살 마하살들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들이 아홉 종류의 중생들이 무명으로 인하여 윤회하는 걸 불쌍히 여겨 이들을 모두 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케 하는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아니다.

所有의 一切衆生은 독립적 개체로 작동하는 제보살의 소승적 작동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로 작동하는 마하살의 대승적 작동으로써 총체적 인연의 소멸이며 결과의 度(法)로 탄생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연기의 실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滅度의 度는 ‘정해진 법’, 곧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을 이른 말이다. 이 성품의 삶은 소멸작동에 의해 이 성품의 삶으로 태어나는 度로써의 삶으로써 보리살타임을 표상한 말이다. 사성제의 滅道이다. 열반은 苦集으로써 쌓여 모이는 것이다.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증명하는 苦는 고통 따위만을 표상하는 말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세계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세계로 쌓이는 有餘的, 곧 ‘+’보살임을 표상한 말이다. 滅道는 쌓인 이 有餘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이 또 다른 유여의 쌓임을 탄생하기 위하여 소멸하는 無餘的, ‘-’ 보살임을 말하는 것이다. 멸도는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생사유전의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고집이며 멸도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드러나는 선정의 지혜작동인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말한 것이다. 석가여래는 지금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갈애 따위가 윤회며 연기의 불길이란다면 이것이 진리의 진실임을 말한 것이지 인간의 욕망이며 갈애 따위가 윤회며 연기의 불길이니 나쁜 거라고, 비윤리적인 거라고 이런 거나 끄러 다닌 보살이 아니다. 오직,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전도한 보살이다. -

도올은 말한다.

‘그 불을 끈 상태를 우리는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열반”(涅槃)은 곧 “nirvana”의 음역인데 “泥洹”이라고 음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꺼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반은 바로 “불의 꺼짐”이다.

그런데 이 “꺼진 상태”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유여열반이요, 그 하나는 무여열반이다. 유여열반(有餘涅槃)이란 문자 그대로 남음(餘)이 있는(有) 열반(꺼짐)이다. 무엇이 남았는가? 열반에 들긴 했는데, 윤회를 계속하게 만드는 五蘊의 집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몸”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몸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有情이요, 생명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 남김이 없는 열반(꺼짐) 즉 무여열반(the nirvana without substratum)이라고 하는 것이다. 五蘊이 사라지고 열반만 남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사실 “죽음”이다. 존재에 있어서 완전한 열반은 “죽음”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入滅, 死去, 寂滅, 滅度, 圓寂, 入寂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럼 불교는 죽음의 예찬의 종교인가? 그렇다! ·····.

나는 불교를 생각할 때, 비극을 생각한다. 나는 불타를 생각할 때 비극적 삶에 대한 연민을 생각한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 바로 그것이 비극이련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이야기이련만, 그토록 그토록 울부짖으며 우리는 매달려야 하는가?

보살은 말한다; “난생이건, 태생이건, 습생이건, 화생이건, 유색이건 무색이건, 유상이건 무상이건, 비유상비무상이건, 이들 존재하는 생명체 모두를 내가 무여열반에 들게함으로써 멸도하리라.” 그러면 보살은 살인자인가? 그럼 불타는 살생자인가? 살아있는 모든 자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자이기라도 하단 말이냐?

사실, 문맥으로 보면, 이 나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할 수 있는 불교학자는 없다. 그들의 답변은 이렇게 궁색해질 것이다. ·····. 그것은 분명 죽음이다. ·····. 소승적 修道僧들은 분명, 滅絶의 철저성을 겅조했고, 그 강조는 분명 “번뇌의 온상인 육체의 멸절”에 까지 이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진정한 해탈은 죽음에서 비로소 完成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도 결국 그의 죽음에서 완성되었을 뿐이다. 이제 그는 침묵할 뿐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 다만 이 사유의 이 말이 오직, 이 사유의 이 말로 빛나는 隨照返照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선정으로 지혜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보시라.

니르바나, 열반의 뜻이 ‘불이 꺼진 상태’여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다 죽어야 진정한 해탈로 완성되는 것이란다고, 이를 석가여래가 선전한 거란다면 석가여래의 땅에서 석가여래가 사라진 건 참말 다행스런 일이다.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이겠다는 작자를 누가 應供은커녕 눈길이나 제대로 한번 쳐다보려고나 하겠는가? 이제 이를 안 도올이 나타났으니 이 땅에서도 승가는 사라질 것이다. 헐! 다들 살려고, 세상살이가 공평하지가 않네, 직장이 없네, 남북통일을 해야 하네 따위로 난리들인데 싹 다 죽이겠단다면, 죽어야 한단다면, 이게 진리의 진실로써 열반이란다면, 사람 사는 이 땅뿐이겠나? 사람 사는 이 지구가, 아니 사람 사는 이 태양계가, 아니 온 우주가 싹 다 죽어 없어져 그 살려고 발버둥치는 불길을 꺼버려 적멸의 열반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은 완성된 것이다. 참말로 희유한 생각이다. 핵폭탄 하나면 간단해, 예수나 석가여래는 무슨 얼어 죽을. 김정은이 성인이야!

도올이 이렇게 얼척없이 알아 말한 대도 이 사유의 이 말은 진리의 진실인 열반이다. 그래도 이 삶을 살겠단다면 이는 오직 그대의 의지로써의 삶인 이 열반이다. 그렇다고 타인한테까지 이를 강요하지 마시라. 히틀러보다도 무서운 십자군 전쟁이, 종교전쟁이, 에구 지금도 여전하다. 빨리 죽자구 덜 난리니. 도올, 조심하시요!

조금 전에도 나는 어떤 스님과 성철에 대해서 왈가와부하는 보살의 일을 했으니 성철은 이 어떤 스님과 내가 왈가왈부하게 하는 보살이다. 이런 성철스님이 죽어 침묵하고 있단 대도, 다만 이 사유의 이 말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한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바르게 보시라. 구태여 불교가, 선이,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은 내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이 진리의 진실로써 열반임을 아는 이 진리인식의 한 깨달음일 뿐이니.

대체 도올은 북한정권에게 핵폭탄을 만들라고 부추긴 건가? 헐! 이 말이 사실이래도 거짓이래도 이 말은 이 말의 선정으로 지혜작동한 보리살타의 중도·여래·열반인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다. -

이를 말하지 않으니 계속 도올의 말을 쫓아다니며 도올의 말이 이 말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이들은 지겨울 것이다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 하니. 그러나 할 수 없다. 누가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말함에 있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털어 아무리 재미나고 신나게 말한단 대도 이 한생각의 말을 말하지 않는단다면 계속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인 진리인식의 깨달음은 오직, 이 사유의 이 말로써의 깨달음일 뿐이며, 이 깨달음의 말인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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