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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28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4-7. 須菩提! 菩薩但應如所敎住.”

4-7.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

[강해 ] “但”을 “오직”으로 한 것은 세조본의 우리말을 따랐다. 여기서 “가르친 바 대로”라는 것은 本分에서 말한 내용을 가르킨다. 보살은 부처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통석] 老子 제 제2장에 “功成而弗居”란 말이 있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루어진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老子의 “弗居”는 여기서 말하는 “不住於相”과 크게 차이가 없다. 중국인들은 오히려 불교의 “不住”의 논리를 老子的인 弗居로서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중국인들에게서는 老子가 분명 선행되었던 지혜의 경전이다. 이 선행하는 의미의 틀에 따라 外來的 사상을 이해하는 것을 “格義”라고 부른다. 사실 중국의 불교는 漢譯이 되면 곧 “格義”불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격의를 너무 협애하게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격의불교라는 의미를 너무 비하해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격의이건 비격의이건 그것은 모드 인류의 지혜의 소산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老莊의 지혜와 大乘佛學의 지혜는 그 맛이 다르지만 우리삶에서 의미하는 것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아가페적 사랑”을 말한다. 나는 이 아가페적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서 말하는 不住相布施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라져야 한다. 나의 아가페적 사랑은 “나”가 사라져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테레사수녀가 그러하고 문둥이를 껴안고 그 문둥이의 모습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성프란시스가 그러하다.

- 도올은 계속 나로써의 我를 없애는 無我의 도덕을 말하고 있다. 누차 말하지만 無我란 말은 인간의 도덕적 윤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유형무형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라는 이 모든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는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이므로 실재의 실체로써의 我랄 것이 없는 無我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이다. 우리 인간의 일상적 삶으로써의 이 육근작동 뿐만 아니라, 이 육근작동을 벗어난 다만 암흑의 모를 뿐인 관념의 시·공간일지라도 오직 이 보리살타로써의 無我인 것이다.

석가여래는 오직 이를 깨달아 이를 말했을 뿐이다. 이 이가 붓다를 말했단 대도, 따타가타의 여래를 말했단 대도, 니르바나를, 보디사트바를, 해탈을, 연기를, 실상을, 진리를, 진실을, 보시를, 자유를, 평화를 사랑을, 그 어떤 말을 했단 대도 다만 이 총체적 작동으로써 이 하나의 삶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런 인간을 떠난 큰 논리는 석가여래의 정신엔 없는 거라고, 후대 사람들의 인식체계라고, 과거 역사적 사실의 증거를 열거하며 주장하는 건, 그건 주장하는 사람의 자유다. 석가여랜 이런 인간의 자유를 구속한 이가 아니다. 오직 그런 주장이, 주장하는 이가 진리의 진실임을 말했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브라만의 온갖 귀신들이 다 나와 석가여래 앞에서 대자유를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는가.

본절 4-7을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라고 해석하여, 부처가 덜된 보살된 자는 본분에서 부처님이 가르친 대로 살아야 부처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아는 건 오해다. 석가여랜 사람들에게 자신으로써의 我를 없애는 보살이 되라거나, 완전히 없앤 부처가 되라고 가르친 이가 아니다. 오직 너·나뿐만이 아니라 유형무형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라는 이 모든 성품의 삶이 보살로써 부처임을 가르친 이다. 사람만이,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아는 동물들만이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4대며 5행뿐만 아니라 한 생각의 관념조차도, 한마디 말조차도, 한 문자조차도, 현대과학의 모든 利器들뿐만이 아니라 그에 의해 알려지는 우주의 저 아득한 소식들조차도 오직 그들만의 삶으로 작동하는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적 삶인 동시에 통합적 전체세계로써의 대승적 삶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가르친 이다. 즉 우리의 이 一相으로서의 소승적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無相(실재의 실체로써의 일상이랄 것이 없음)으로써의 대승적 삶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임을 석가여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내가 가르침으로 응하는 이 應如의 지혜작동인 보리살타로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해야 석가여래가 깨달은 보리살타란 말의 실제며, 그 말의 개념을 진술한 말이 된다.

보살은 부처님이 가르친 대로 살란 것이 아니라, 보살의 실제란, 보살이란 말의 개념이란 내가 너의 물음에 응하여 이렇게 혹은 저렇게 가르치는 이 작동의 지혜임을, 이 지혜작동으로 있는 住임을 이른 말이다. 이 해석이 문법적으로 맞는지는 난 모르겠다. 단지 격의불교라 하니 그 문의의 뜻을 취했을 뿐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격의불교라고 해서 문법적 틀을 벗어난 게 아니란다면 문법에 대한 이론을 모르는 필자는 할 말은 없다. 그래서 문법을 다 아는 도올의 해석이 옳단다면, 그래도 필자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보살은 “須菩提! 菩薩但應如所敎住.”라는 한문문장을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라고 해석하여 말하는 이 지혜작동의 도올이다.’라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 돌아’라고 말할밖에 없다.

우리는 노자님도 공자님도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게 있음이 분명치 싶다. 서쪽의 동쪽 중국땅에서 진리인식의 깨달음이 격발한 이들이 단순히 인간의 윤리만을 말한 것이라고 보는 건, 혹 서양의 저들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양이 아니라 노·공의 진정한 정신을 우리가 몰랐던 건 아닐까? 석가여래의 땅에서 석가여래의 정신을 몰라 엉뚱한 석가여래의 정신이 우뚝 섰듯이, 노·공이 삼라만상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를 한 꿰미에 꿴 진리의 진실을 사유하여 말한 이들이 아니라 단지 그저 사람의 윤리나 말한 이들로 우리가 천년이 넘도록 그릇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의 윤리선생님 정도로 알고 있는 공자님조차도 이미 인·의·예·지로써의 인간이 이미 있는 인·의·예·지로써의 삶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삶임을 말한 것이지, 이것이 아니거나 없는 인간이므로 이것이 온전하게 갖춰진 완전한 인간상을 목적으로 한 이 윤리를 가르친 이는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윤리선생님으로 알고 있는 공자님은 분명 불교나 노장교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권력의 역사에 이용당한 것이지 싶다. 그러나 중국의 권력은 석가여래의 땅인 인도북부의 권력보다는 맘씨가 훨 좋은 권력이지 싶다. 저들은 석가여래의 정신을 힌두교로 이용하고는 아예 그 흔적을 없애버리는 그악스러움을 떨지 않았는가? 헐!

도올도 분명히 권력화된 개념으로 전도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노자 말씀이라는 “공성이불거”라는 말이 분명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에 머무르지 않는” 군자의 겸양미덕의 실천을 말한 거라고 보는 것은 권력의 도구로 쓰인 공자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안정된 사회질서를 외치는 권력자의 폭력어에 지나지 않는 이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속성은 이와 별반 다를 건 없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어떤 유형의 권력이든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치고 자기 권력에 도전하는 논리를 디리대는 자를 향하여 박수치는 권력은 없다.

저 먼 옛날 진시황의 분서갱유며, 좀 덜 옛날의 모택동의 문화혁명 따위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종교적 또는 문화적 논리에 대한 파괴이다. 자신들은 이 종교적·문화적 논리의 작동 덕택으로 권력을 장악했음에도 오히려 이를 파괴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각설하고, 이 노자님의 말씀을 도올처럼 이해하여, 이는 아무런 권력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만 한 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한 보편적 가치로써의 윤리를 말한 것이라고, 설령 이거란 대도, 이 말이 정말 인간의 민주를 실천하는 윤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설령 이 공이 홍익인간으로써의 공이란다고 해도 공을 이룬 사람들 누구도 이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에구, 좋을 사람 따로 있네. 노·공의 시절도, 지금도 중중무진의 시·공간에 걸쳐 여전히 권력은 엄연히 존재하는 데. 이런 공을 노자가 사유하여 말한 거란다면, 이건 넘 거시기한 이해다.

이 말이 진정 不住於相,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相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我는 실재의 실체로써의 住랄 것이 없는’ 無我로써의 ‘보살’과 ‘크게 차이가 없는’ 말이란다면 이 이해의 해석은 노자의 정신에 크게 맞지 않는 말이다.

“功成而弗居”는 ‘이루어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공은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새가 없이 재빠르게 또 다른 존재와 현상의 공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아는 無爲自然이란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이다. 마치 선불교에서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담은 보리살타란 말이 物格化되어 이 보리살타란 말을 쏙 빼고 석가여래의 깨달음이라는 그 뜻만을 살린 공안과 같은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이런 선행한 지혜의 인식작동이 없었다면 格義는 불가능했지 싶다. 이 격의의 불교이므로 오히려 다른 불교와 같이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석가여래의 정신이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근대에 이르러 뜻이란다고 語意나 文意의 관념에 치우쳐 실제의 共産에 아작나긴 했지만. 헐! 저 앙코르왓트를 보시라. 연기라 하니 노상 교접이란다고 교접상을 대놓고 선전하질 않나, 또 어디선 윤회란다고 聖人으로 오신 얼라를 찾아 삼계의 대도사로 추앙을 하지 않나 하는 신앙형식은 석가여래의 정신과는 아득한 진리의 진실이다.

도올이 말하는 대승불학의 지혜와 노장의 지혜가 우리의 삶인 사람의 윤리만을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 건, 저 분서갱유나 문화혁명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인간이외의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에 대한 폭력이다. 설령 석가여래며 노자·공자가 사람의 삶밖엔 볼 줄 모르는 이 무식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무식이므로 그들은 그 시대의 무식범위를 떠날 수 없어 이렇게 작은 윤리적 사유밖에 할 수 없기는 하지만, 이 작은 사유체계가 오늘의 우주론적 존재론적 큰 세계윤리를 낳는 역사라고, 이 역사로써의 시간에 사로잡힌 사유의 말을 하는 도올은 이런 사유의 말을 하는 보리살타다.

본절 菩薩但應如所敎住란 말은 앞 절의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작동한 이 생각의 맘은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써의 보리살타라는 생각의 맘으로 응한 이 작동으로 있는 住의 보리살타며, 이 住의 보리살타는 이 보리살타로 항복한 이 생각의 맘작동이란 것이다.

석가여래의 말은 자신이 이렇게 사유하여 말하는 이 자신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 사유며 말의 지혜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이니 이 보리살타를 바르게 알아보라는 것이다. 보리살타가 된 자로써의 윤리가 아니라 윤리란다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윤리임을 깨닫는 이 진리인식의 격발을 기도하는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말글이 아니라 필자도 헷갈린다. 그러나 이는 별 말이 아니다.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이나 보리살타라는 말의 실제며 그 의미의 개념을 석가여래나 역대 진리인식자들의 말에서 바르게 알아본다면 별것일 것이 없다.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은 오직 이 앎의 진리인식이다. 오직 이 사유의 이 말이 나로써의 하나로 이루어지는 이 지혜작동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저 중중무진의 시·공간으로부터 如來하는 진리의 진실임을 바르게 보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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