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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32

도올은 말한다.

원불교는 법당에 모신 法身佛이 참으로 法身이라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等身佛일 필요가 하나도 없다하여 아예 그것을 圓(동그라미)의 모습으로 추상화시켰다. 과감하고 혁신적인 발상이다. 원불교도 처음에는 이러한 혁신불교로써 출발한 콤뮤니티운동이었다. 그러나 원불교의 과제상황은 바로 이러한 혁신적인 발상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관성있게 유지시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데 있다.

- 도올은 앞에서 석가여래나 자기를 봄에 있어 역사적 실제인 육체의 色身相을 보지말고 자기들이 말한 정신을 기억하는 추상으로써의 法身을 보아야한다며, 이런 그들은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존재성인 법신(p169)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바가 있다. 그리고 應身 化身 따위는 色身을 가르킨 것이며 報身은 이 색신과 법신개념의 중간자적 통합이라고 말하여, 이 말들이 전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을 밝힌 말임을 말하지 않았다. 비록 이런 사유의 말이란 대도 진리의 진실이 아닌 건 아니지만, 이 말들은 그가 말한 대로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존재성’이므로, 이 말들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진리의 진실이며 연기의 실상인 ‘존재성’으로써의 보리살타임을 표상한 相으로서의 이 몸, 身에 대한 불교적, 이 금강경적 인식이 없는 이해의 말이다.

身相이란 말의 身은 이미 형상으로 드러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인 이 형상이 상대적 인식임을 말한 것이다. 이 하나의 존재와 현상으로 드러난 형상의 몸은 인간의 육근에 비쳐지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과의 상대적 인식으로써의 형상인 색·성·향·미·촉·法身相인 것이다. 색신은 곧 법신이며 법신은 곧 색신인 것이다. 보·응·화신은 이 상대적 인식으로써의 六身이 과거의 보신이며, 현재의 응신이며, 미래의 화신으로써, 이 삼세의 신상이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연기·진리를 설명한 실상·진실의 말들이다. 곧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형상·몸은 이 육신의 보·응·화신으로 작동하는 지혜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한 말들인 것이다. 구태여 法身임을 따진단다면, 이 구태여 불교가, 금강경이 서있는 까닭의 이 법의 몸이 있으니 이를 바르게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분절뿐만이 아니라 어느 경전에서든 석가여래나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 인칭이나 인칭된 자의 기관을 들어 말하는 건, 자신이나 사람만에 국한된 진리의 진실인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이며, 이 모든 성품의 삶으로 드러난 형상·몸을 표상한 것이다. 이를 바르게 보지 못하고 과거 역사적 사실로써의 석가여래의 육체나 그의 말이며 말뜻의 형상만을 보려는 시각으로만 치달리는 건, 과거 현재 미래를 통관하는 통역사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사유하여 말한 석가여래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허접이다. 저 300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사람이라 무식할 것이라고 추상하지 마시라. 지구가 원형이 아니라 방형이라고 안단 대도, 지구가 방형인 이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는 이 앎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드러난 진리의 진실이라고 아는 이 진리인식의 한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여 아는 건, 이거야말로 참말 바른 무식이다. 우짰든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서있는 까닭은 이 통역사, 곧 삼세가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이라고 알라는 이 깨달음의 기도로 서있는 것이다.

일원상은 이것을 표상한 추상화이다. 온통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을 이 일원으로 추상하여 공유하자고 원불교의 소태산이 이를 전도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일원상은 그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추상된 진리의 진실은 이미 삼천년 전 석가여래가 사유하여 전한 것이므로 이를 구태여 ‘혁신적 발상’의 ‘혁신불교’랄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원불교는 법당에 모신 법신불이 참으로 법신이라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等身佛일 필요가 하나도 없다하여 아예 그것을 圓(동그라미)의 모습으로 추상화시켰다.’라고 칭찬의 말을 하면서도 ‘참으로 법신이라면’이라는 가정화법을 써서 법신으로써의 뭔 참과 거짓일 것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건, 이 법신이, 이 법신이라는 말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서있는 까닭의 이 부처며 금강임을 밝힌 말임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연기의 실상으로써 일원의 법신임을 전혀 모른 말이라고 할밖에 없다.

이런 시시콜콜의 트집은 필자가 도올이 말하는 커다란 ‘진리의 구현체’를 보지 못하고 공연히 시샘하여 헐뜯을 것이나 찾으려는 하이에나 같은 짓이라고 나무라지 마시라.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진실은 어디 따로 커다랗게 있는 무엇이 아니라, 이런 미세한 먼지 한 알갱이에서도 격발하는 작동의 지혜인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라는 이 法身인 것이다. 이 분절에서 석가여래가 身相의 相을 말했다고 자신의 몸만을 말한 것으로 알아보지 마시라. 그러나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이 작은 석가여래의 몸이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보기만 한다면 거대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라는 이 큰 몸이 연기의 실상임을 깨달은 것이니, 필자의 이 작은 트집을 함부로 나무라지 마시라. -

도올은 말한다.

石頭希遷의 門下의 선승, 丹霞天然(739~824)이 慧林寺에 머물 때, 매우 추운 겨울 날씨에 법당에서 좌선을 하다가 궁둥이가 시려우니까 법당에 있는 목불상을 도끼로 뻐개 불지피우고 궁둥이를 쬐이는 장면이 있다. 내 책 [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 68~69쪽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諸相非相”의 의미를 한번 이와 관련시켜 다시 새겨 볼만 하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68~69쪽에는 이 분절의 의미를 새겨 볼만한 내용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相만 보았지 뜻를 못 본 것인가? 우짰든지 이 책 p73~76의 내용이 하도 해괴하여 잠깐 소개한다.

양무제가 ‘聖諦第一義,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물었다. 달마가 ‘廓然無聖, 온통 다 이 성제제일의라 성제제일의랄 게 따로 없음’이라고 대답한 걸 두고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과연 어느 게 확연무성이냐? 聖이 있는 것이 無聖이냐? 聖이 없는 것이 無聖이냐? 不識! 생각이 미천한 자들이 공안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양무제와 달마의 만남을 역사적 사실로 착각한다.”

도올은 여기, 格意의 선불교를 말함에 있어서도 석가여래의 손가락질인 意를 외면하고 여축없이 달마와 양무제의 ‘역사적 사실’에만 주목한다. 이런 도올이랄지라도 분명 도올은 보살이다.

不識!이란 말은 도올이 양무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동시에 달마의 대답을 질문으로 한 대답이기도 한 것이다. 불식이란 한문은 우리말로 ‘모른다’는 뜻이다. 도올은 모른다는 것이다. 성제제일의도, 확연무성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이란다. 맞다. 모른다. 이 질문이며 대답이 이 질문과 대답으로 온 모든 인연들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이므로 다 헤아릴 수 없어 모른단다면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혹 성제제일의며 확연무성이 뭔 말인지 그 뜻을 모르거나, 또는 양무제가 묻는 중국말을 달마가 잘 못 알아들어 그냥 ‘몰라’나 ‘없어’라고 대답한 말을, 이 까닭을 모르고 약삭빠르게 이를 따라서 한 말이란다면, 이는 대단한 오해의 허접이다. 근데, 도올이 달마의 확연무성을 질문으로 한 대답의 不識을 설명하며 무성이 ‘성이 있는 무성이냐 성이 없는 무성이냐?’라고 물은 걸 바르게 보면 아닌 것 같다. 비록 이렇게 달마의 대답을 질문으로 바꿔 도리어 달마에게 호기롭게 디리댄 것 까지는 좋았으나, 에구, 빗나갔네. 그냥 설명없이 ‘불식’했으면 이를 본 아는 자는, 모른 자야 뭐 아무래도 또 不識이겠지만, 아는 자는, 어떻게라도 이렇게 저렇게 뒷손질하여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으로 꿰맞출 수 있는 데, 저 설명의 사족이 붙어있으니 빼도박도 못하고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엔 빗나가 아득한 진리의 진실일 밖에 없다.

‘성이 있는 무성이냐, 성이 없는 무성이냐?’라는 물음과 같이 이 금강경의 이 분절내용인 諸相非相의 상을 ‘상이 있는 비상이냐, 상이 아닌 비상이냐?’라는 방향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는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보는 바른 시각과는 아득한 방향이다. 달마는 양무제가 물은 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 게 아니다. 성이랄 게 따로 특별하게 없는 성이라고,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분명하게 말해 보인 것이다. 廓然, 육근에 비치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온통 전부 다 이 성제제일의인 거여서, 이것 외에 다른 뭘로 꼭 찝어 드러낼 건 없다는 것이다. 양무제 당신의 불사공덕이나, 이를 말하는 지금 이 말이며 티끌 한 알갱이조차도 온통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총체적으로 작동한 공덕의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인 성제제일의란 것이다. 엥! 그럼 달마는 중국말을 엄청 잘 아는 거네. ‘확연무성’이라는 고급 말을 다 구사할 수 있다니. 아닌가? 후인이 꾸민 역사가 아닌 허구인가?

이 금강경은 물론 모든 경전이며 이를 안 사람들의 언어문자는 온통 성제제일의를 밝혀 증명한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본분절의 若見諸相非相이란 언어문자도 이를 밝혀 증명한 진리의 진실이다. 이 문장의 若을 그냥 우리가 흔히 쓰듯 萬若, 萬一로 쓴대도 이에 맞다. 그러나 이 습관적 알음일이로만 새기면 이 습관적 뜻에만 사로잡혀 이 말이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함의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짐작하기가 꾀까다롭다. 이 萬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표상한 말이며, 若·一은 이 萬 中에서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인 이 하나며 이 하나로 작동한 지혜(若)를 표상한 말이라고 보아야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이 보인다. 또 諸相非相은 ‘모든 상은 상이 아니다’가 아니라 ‘모든 상과 비상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라고 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는 언어문자는 “모든 相과 非相 따위를 이 相이며 非相이라고 하는 이 지혜작동의 虛妄으로 본(若見) 즉(則) 이 제상비상으로써의 모든 존재와 현상인 세계가 총체적 작동의 如來로서 보리살타임을 본 깨달음”이라거나, 또는 “모든 상이 실재의 실체랄 상이 아니라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으로 보는 지혜가 작동한다면 이 여래를 본 깨달음”이라고 이해한 말을 해야 이 말이 진리의 진실을 말한 진리의 진실임을 바르게 본 것이다. 凡所有相皆是虛妄이란다고 허망이 실재의 실체란다면, 이는 말의 뜻에 사로잡혀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임을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으로 바르게 보지 못한 허망이다. 若見云云은 이 허망이 허망인 까닭을 설명한 말이다.

석가여래의 생각이며 말이든, 이를 자기들의 사유체계로 格意한 중국인의 말이든, 이를 우리말로 푼 생각이든, 이 생각의 안(內)이며 이 생각의 밖(外)인 이 말은 안팎으로 온통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지혜작동으로써, 오직 이 생각이며 이 말로, 이 생각이 이 말로 사로잡힌 연기의 실상이다. 즉 이 分의 제목인 如理實見, 진리의 진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여기 도올처럼 아무리 세밀한 이런저런 뜻을 엮어 풀어내는 작동의 지혜가 있단 대도, 이것이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인 보리살타의 부처며 선임을 바르게 알아본 진술이 아니라면, 이는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은 바르게 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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