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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33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正信希有分 第 六

제6분 바른 믿음은 드물다

[강해] “正信”은 “바른 마음”이다. 文中의 “實心”과 상통한다. 先秦文獻에서는 “信”이란 글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믿음”(faith)이라는 用例로 쓰인 적이 없다. 그것은 “실증한다”라는 “verification”의 의미에 가까운 내포를 지녔을 뿐이다. 이미 羅什의 시대에는 信이라는 글자가 종교적 “믿음”의 함의를 지니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希有”는 “드물게 있다”라는 뜻이다. 人間世에서는 언제고 “바른 믿음”은 希有한 것이다. 우리의 시대를 살펴보면 잘 이해가 갈 것이다.

이 分은 전체적으로 말세론적 색체를 깔고 있다. 佛法이 날이 갈수록, 즉 인간의 역사가 진행 될수록 쇠퇴하리라는 것은 초기불교 승가의 믿음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불교의 말세론은 거대한 순환속에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단절과는 근원적으로 문제의식이 다르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모든 순간이 종말론적인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이러한 말세론적 시대에 처하여 말세적 감각을 이용하여 인간을 현혹시키고 天堂에 가는 티켓구입료를 높이려는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말세적 분위기에 근원적 희망을 주려는 사상이다. ·····, 역사의 진행은 정당한 역사가 들어설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서 우리 삶의 질을 근원적으로 저하시키고 생명의 場들을 모두 파괴해나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종말의 기로에 서있는 것일까?

여기 이 절에서 수보리는 인류가 과연 이러한 말세론적 분위기속에서 금강경의 지혜와 같은 심오한 사유를 삶의 가치로써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 正信希有分이 ‘말세론적 색체를 깔고 있다’고 말하는 도올은 분명 이 금강경이 대체 뭐하자는 경인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正信’이 ‘바른 마음’이란 대도, “實心”이란 대도, ‘바른 믿음’이란 대도 대체 무엇이 ‘바르다’는 것이며, 그 ‘바른 마음’이며 ‘바른 믿음’은 대체 뭔 ‘마음’이며 ‘믿음’이란 것인가? 선진시대엔 ‘信’이란 글자가 ‘실증한다’는 의미였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고, ‘羅什의 시대에는 信이라는 글자가 종교적 “믿음”의 함의를 지니고 있었’으니 ‘正信’을 ‘믿음’이라고 알아야 한다는 거여 뭐여? 그러나 도올은 이런 말에 대한 매듭은 안 짓고 금방 뒤따라 온 ‘희유’란 말과 엮어서, 이 ‘正信’의 인간 역사를 누가 연구하여 그 드뭄을 알아내어 걱정했다고, ‘바른 믿음은 드물다’라는 뜻이라고 엉뚱한 사유의 말을 하는가? 대책없이 이렇게 막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들을 붙이는 이 연기의 실상으로 연기의 실상을 거듭하기만 하면, 이 금강경의 부처를 해설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온통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부처로써의 연기의 실상이므로, 생각 하나 말 한마디조차도 이 연기의 실상인 부처가 아닌 건 없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에서조차도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의 正·부처·금강은 ‘실증’할 수 있는 것이며, 正·부처·금강에의 ‘믿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며, 正·부처·금강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혹, 부처가 깨달은 이란다고, 뭘 깨달은 이라야만 부처라고 안단다면, 우선 이 부처라는 바른 개념부터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부처’라는 말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성품의 삶을 표상한 말이며, ‘보리살타’라는 말은 이 삼세로써의 모든 성품의 삶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하나의 삶임을 표상한 말이다. 저 육바라밀다는 이 보리살타의 부처를 표상한 格意의 말이다. 육바라밀다는 보리살타의 작동성인 불성의 여섯가지 作動例로써의 여섯부처다. 이는 다만 예증일 뿐이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총체적 작동인 보리살타를 여섯가지 예증으로 함축해 풀어 낸 것이다. 이 보리살타를 격의한 연기를 12가지 예로 풀어 말하듯이. 구태여 이런 특정의 숫자를 쓰임새로 세운 까닭에 대하여는 따로 연구가 필요하다.

우짰든지 이 ‘正信’이란 말은 어떤 뜻으로 풀어내든 이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이지 대책없는 무슨 ‘바른 믿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 正은 석가여래가 바르게 깨달은 무상정등각,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맘을 발한 맘, 즉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삼세의 총체적 작동이치를 한 꿰미에 꿴 진리인식이라는 한 생각의 무상정등각을 격발한 맘을 표상한 말이 이 正이란 말이다. 이것에 대한 믿음이, 맘이, 실증이 希有, 드물다고? 아니다. 이 믿음은, 맘은, 실증은 드믄 것이 아니라 ‘희망해야만 있는 것’이란 말이다. 굳이 ‘希’자를 쓰지 ‘稀’자를 쓰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니까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진리인식의 한 생각은 이 앎의 한 생각을 희망하는 이에게서만 격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이 성품의 삶을 사는 작동의 지혜인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것으로 알고자 희망하지 않으면 어림없는 깨달음의 앎이란 것이다. 누가 믿으랬나? 알라고 했지.

正信希有, 진리의 진실을 아는 진리인식인 正의 실증 믿음 맘의 信은 이를 바래야만 있다.

헌데, 여기서 도올은 뜬금없이 말세론을 상상해 낸다. 현재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론의 개념이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신 개념의 말세론인가? 이 말은 원래 예수님이 안 했고 다른 이의 말이란 대도, 물로 징치한 말세를 맛보게 했으니 이번엔 불로 말세를 살게 하겠다는, 이런 뭔 해괴한 론을 실천하는 하나님이 있나? 분명 이 비기독적 논리는 기독인이 만든 개념이 아니라, 도올의 말마따나 천당장사꾼이 만든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긴 하다.

어느 이념의 실천운동이든 이 이념의 전면에 나서서 이를 권력화 집단화하려는 이들은 사기꾼들이기 십상이다. 일반적인 이념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로써의 이념집단인 기독교든 불교든 유교든 뭔 종교든 종교집단의 소위 지도자며 지도자를 꿈꾸는 자들 치고 이 사기성이 작동하지 않는 이는 매우매우 드물다. 애초의 종교를 전도한 이들의 생각, 종교인 진리의 진실과는 아득한 연기의 실상이다.

애초의 저 이들은 자기들의 이념을 사람들이 살아야 한다고 지도한 이들이 아니라 진리인식의 깨달음을 기도한 이들이다. 인간의 삶에 비윤리적인 부정성이라고 해서 이것이 진리의 진실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훈육한 이들이 아니다. 비록 그런 것일지라도, 이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오직 보리살타의 지혜로 베풀어지는 연기의 실상이라고, 오직 인·의·예·지의 진실로 작동하는 진리라고 안 이 깨달음을 인간성품으로써의 자신의 일상적 삶으로 기도한 이들이다. 인간이라는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적 삶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로써의 대승적 삶인 지·수·화·풍의 삶으로, 지구의, 태양계의, 은하계의, 우주의, 중중무진의, 이 대·소승적 삶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아는 이 깨달음을 기도한 이들이다. 결코 사람 삶으로써의 윤리를, 옳고 바르고 따위,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선정으로 작동하는 지혜로써 노상 말세적 작동인 이 우리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삶을 훈육한 이들이 아니라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이 모든 성품의 삶으로 작동하는 진짜이치를 알아 말한 들이다.

도올이 여기 수보리를 인간세는 노상 말세라는 회의론자로 알아보는 건, 도올 자신의 역사관이지 싶다. 이는 아마도 역사를 과거의 시간에만 사로잡혀 있어 일어나는 역사에 대한 오해이지 싶다.

이 절의 이야기는 이런 과거역사에 대한 회의를 불식시키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대승사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직 삼세의 온통역사가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알아 깨닫는 기도의 이야기다.

금강경은 이 반야·지혜 작동으로써의 佛性인 보리살타를 말하는 부처이다. 이를 여러 가지 실증으로 밝혀 말하는 것이다. 첨엔 석가여래의 구잡스런 일상을 말하여 이를 밝히는 실증인 것이었고, 다음부터는 이런저런 말로 이 보리살타를 격의한 근사한 말을 제목으로 달아 이 제목에 부합하는 이야기로 풀어낸 연기의 실상인 금강이다.

도올이 연기의 실상으로 연기의 실상인 이 금강경을 사유하여 말하고 있긴 하나 연기의 실상을 말한 이 금강경을 바르게 사유하여 말하진 않고 있다. 즉 연기의 실상을 말해야 석가여래를 흉내 내는 연기의 실상인 도올이지, 연기의 실상으로 말하는 건 수보리를 흉내 내는 이 진리의 진실로써의 도올인 것이다. 물론 석가여래도, 수보리도 진리의 진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누구를 쫓아야 금강을 말한 것인가? 이 계속되는 그릇됨을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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