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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34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6-1. 須菩提白佛言: “世尊! 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6-1.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퍽으나 많은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 도올은 저 한문문장에서 우리말의 이 한글문장을 이끌어 낸 이 작동의 주체인 보리살타의 부처로써 진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는 이 한글문장을 생각해 만든 도올뿐만 아니라 도올에 의해 만들어진 이 문장이며 이 문장내의 모든 문자들조차도 온통의 이 문장이며 문자의 지혜로 작동한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다. 이 해석이 한문문법에 맞는 해석이란 대도, 원저자의 의도를 간파한 해석이란 대도, 또 전혀 한문문법에 맞지 않는 엉뚱한 해석이란 대도, 원저자의 생각엔 십만팔천리나 먼 해석자 멋대로의 해석이란 대도, 이는 오직 보리살타로써의 연기에 의한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인 보리살타이다. 다만 이 문장이 진리의 진실을 묻는 물음인가, 진리의 진실로 묻는 물음인가의 차이다.

모든 질문과 대답으로써의 언설장구는 진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 금강경의 질문과 대답은 금강인 진리의 진실을 묻는 질문이며 대답이다. 필자가 모든 불교경전을 다 읽을 만한 언어해독력이 없어 못 읽었으므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경이란 경은 이 진리의 진실을 진술한 진리의 진실이지, 일반 문학작품이나 법조문 등과 같은 진리의 진실로 쓴 진리의 진실은 아닌 것이다.

이 6-1 문장 중의 ‘파유중생’이란 말을 四相 중 특정집단으로써의 존재로 푼 대도, 사상으로써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아우른 의미의 말로 푼대도, 또 ‘如是’를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이라고 본 대도, 이게 아니고 단지 이 앞에서 ‘석가여래가 한 말’만 가르킨 말이라고 안대도, 이 6-1 문장의 뜻은 ‘중생이란 이들이 이와 같이 진리의 진실을 말하는 말을 듣고 이 말의 언어장구가 가르키는 진리인식이라는 열매를 낳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이다. 대체 이게 도올의 해석과 뭐가 다를 게 있단 말인가?

‘파유중생’을 ‘퍽으나 많은 중생’이라고 그럴듯하게 푼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냐, 없겠냐?’라니, 뭔 믿음인가?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6-2.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

6-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 하지 말라. 여래가 멸한 뒤 후오백세에도 계율을 지키며 복을 닦는 사람이 있어, 이 글귀에 잘 믿는 마음을 낼 것이며, 이를 진실한 것으로 삼으리라.

[강해] 수보리의 비관론에 대하여 불타의 낙관론이 설파되고 있다. 여기의 핵심되는 구절은 “後五百歲”인데, 사실 이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梵文원본에도 한역본에도 완벽하게 명료하지는 않다. 梵本에는 “後의 五百年代에”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三時사상중에서 가운데 시대인 “像法”의 시대를 가르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三時란 불타의 멸적후의 시대를 正法·像法·末法의 三期로 나누는 시대구분을 말하는데, 이 正·像·末의 시대의 길이를 잡는 방식은 문헌에 따라 다양하다. 그런데 보통 500년씩 잡아 1,500년으로 보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만, 이런 계산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는 제멋대로 늘리기 마련이다. ·····.

나는 “後五百年”이란 말이 어떤 정확한 三時의 시점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추상적으로 佛法이 쇠퇴한 먼 훗날의 시대로 생각함이 옳을 듯하다. 대승운동이 興한 시기를 像法의 시대로 꼭 끼어맞출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불타는 수보리에게 이른다: “그렇게 비관적인 소리 하지 말아라! 아무리 말세가 와도 계율을 지키고 복을 닦는 자는 반드시 있을 것이며, 이 금강경의 설법에 독실한 믿음을 내고, 이것 이야말로 진실한 구원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의 가르침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 말세가 될수록 진실한 사람은 더 많게 마련이다. 비관하지 말자.

- 대체 금강경의 설법이 뭐라고 독실한 믿음을 낼 것이라고 하는가? 석가여래가 뭔 사람이 지킬 계율을 세운 게 있다고 자신이 죽은 뒤 암만 먼먼 훗날에도 남아있을 이 계율을 닦아 받을 福이랄 것이 있을 것이며, 이 금강경의 언설장구는, 설령 세계문화유산으로 잘 보호되어 있을 것이니, 그렇더라도 여기서 뭔 믿음이, 뭔 구원의 방편이랄 것이 있어 이를 생각해 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먼먼 미래를 똑뿌러지게 점치시는가? 모든 사람들 다도 아니고, 얼마든지란 대도 이 얼마든지의 사람들이나 받을 수 있는 이런 미래의 추상적 福이나 점치는 허접한 책을 ‘금강’의 핵심이 담긴 經이랍시고 떠받들고 있는 것인가?

이 금강경은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 한 획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획된 진리의 진실을 말하는 진리의 진실이다. 물론 이 분절에서 나온 도올과 같이 이해한 말도, 이는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 아닌 건 아니지만, 이런 의미의 계율이나 복을 말하는 건 진리의 진실을 진술한 진리의 진실은 아닌 것이다.

지금 석가여랜 자기가 진리의 진실을 말한 이런 언설장구에서 진리의 진실을 아는 진리인식, 정법안장열반묘심이라는 깨달음의 열매가 중생들에게서 생길 수 있다고 믿느냐는 수보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진실인 如來·보리살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莫作是說이란 말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듯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수보리의 말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해도 분명 진리의 진실이다. 어떤 것에 대한 부정의 말이라고 해서 진리의 진실이 아닌 건 아니다. 그러나 석가여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진리의 진실임을 알아 이를 진리의 진실이라고 긍정하여 말한 이다. 수보리가 석가여래 자신의 말에서 진리인식의 깨달음이 있건 없건, 의심하건 믿건, 이런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을 가리지 않고 오직 이것이 진리의 진실임을 말한 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莫作是說이란 말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해석하는 건 석가여래의 성질에 맞지 않는 이해의 말이다. 그러나 문법이 그렇단다면 문법맹인 필자는 사실 할 말이 없다. 다만 莫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니(옥편보다 더 나을 것 같은 저 설문해자라는 책에 나와 있는지는, 또 어떻게 설해져 있는지는 형편이 없어 못 찾아 봤음) ‘定, 大’자와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뜻으로 쓰인 과거 역사적 용례를 찾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이 금강경이 대승불교의 소의경전이란다면, 이 莫자를 대책없이 부정사로만 쓰는 건 옳지 않지 싶다. 이는 若자를 노상 ‘만약’이라고만 해석해서 이 若자가 들어가 있는 문장자체가, 또 이 若자가 지칭한 것이 반야바라밀·지혜작동으로써의 보리살타를 표상한 것임을 바르게 보지 못해 진리인식의 깨달음과는 아득한 말이 되는 것과 같다. 또 苦를 노상 인간의 삶의 고통으로만 이해하여 苦海란다면 이 세상이 온통 고통의 바다라고만 알아 이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게 불교라고만 알거나, 또 苦集滅道란다면 인간이 인간의 고통을 끊고 뭔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는 따위의 이해에 사로잡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들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작동이 쌓인 苦로써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임을,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인 줄은 까마득하게 몰라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과는 아득한 이해를 낳는 것과 같다.

불교경전들이 한역되면서 경전의 핵심언어인 이 보리살타란 말은 수많은 개념의 한어로 격의되어 번역된 것임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각설하고 禪門에서 定과 大는 흔히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로 쓰인다. 보리살타란 말은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고 깨달은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담아 이를 표상한 말이 보리살타란 말이다.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은 이 보리살타인 진리의 진실을 부처며 선으로 定해 세워 이렇게 더없이 가장 큰 걸 아는 깨달음, 곧 無上正等覺의 기도로 선 것이다. 이렇게 莫이라는 문자의 뜻인 定·大는 부처며 선인 보리살타를 격의한 문자이므로 이 莫이란 문자 역시 이것이다. 또 作은 육바라밀, 그 중에서도 지혜작동, 곧 이 금강경의 금강인 보리살타의 定·大에 의한 반야바라밀·지혜작동을 표상한 문자이다. 이렇게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으로 바르게 보면 莫作은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진리의 진실에 의한 지혜작동)이란 범어를 격의한 말이다.

그러므로 莫作是說이란 석가여래의 말은 ‘방금 니가 묻는 이 말이 바로 지혜작동으로써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다.’란 뜻으로 단순히 수보리의 물음만 지칭한 대답으로 볼 수도 있으나, 좀 더 그 말속을 볼 줄 아는 머리를 굴려 이 생각의 앎을 희망하는 이는, 이런 석가여래 자신의 말뿐만이 아니라 이런 모든 언설장구가 온통 다 이 언설장구로 작동한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금방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구태여 선불교의 공안이 선 까닭은 이런 석가여래의 말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공안엔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의 해답이 없다. 공안을 이룬 말의 뜻이 아니라 공안 이것이 해답이라면 해답이다. 긴 이야기든 짧은 이야기든 공안은 이 공안을 이루는 한 글자든, 한 단어든, 전체 문장이든 온통 이 대·소승적 지혜작동으로써의 보리살타임을 보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들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는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증명하는 공안의 선으로 서있는 것이다.

모든 언설장구의 이 是說은 莫作임을 석가여랜 설명하는 것이다. 이 莫作是說 뒤에 오는 설명의 말이 어떤 내용의 말이든, 단지 내가 알기에 수보리의 물음의 뜻에 맞는 내용의 말이든, 전혀 엉뚱한 내용의 말이든 가릴 것 없이 어떤 내용의 말이든, 이는 이 말이며 이 내용으로 작동한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라고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으로 바르게(正) 알아(信) 보기를 희망해야만 正信할 수 있는 것이다.

도올은 이를 알아채는 작동의 지혜를 희망하는 지혜작동이 없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과는 아득한 사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如來란 말은 계속 말하지만 석가여래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 如來란 말 역시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을 격의한 말이다. 아니, 그럼 맨 이 보리살타란 말밖에 뭐가 있냐고? 맞다. 말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육근이며 오온으로 작동하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온통 이 금강인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일 뿐이다. 석가여랜 오직 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6-2 분절의 석가여래의 말은 “방금 니가 묻는 이 말이 바로 지혜작동으로써의 莫인 여래·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다. 如來는 소멸하고 소멸하는 소멸의 지혜작동으로써 五蘊(行)의 시·공간이 온통 이 총체적 소멸의 지혜로 작동하는 空의 보리살타·진리·연기의 이 持戒로 닦여 얻어진 福, 진실·실상인 여래이다. 이 여래의 보리살타는 이 어떤 언설장구에서도 능히 생겨 안 맘이므로, 이 맘을 석가여래, 내 자신이 한 말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漢字 하나하나를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으로 일일이 푸느라고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해괴한 해석이 되었지만, 한문학자도 아닌 필자가 한문법에 똑 떨어지는 해석은 도무지 할 수가 없다. 그럼, 능력도 없으면서 뭘하러 이런 해괴한 짓을 하느냐고? 까놓고 말하면 한문학자라고, 불교학자라고, 승여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하는 이들이 불교를, 선을 말하는 게 하도 불교와 선과는 아득한 말을 해서 한문에, 중국어에 손방이지만, 이 무식을 드러내서라도 구태여 불교가, 선이,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을 바르게 증명하고 싶은 바른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한문에 유식한 이들도 다 이것인데 뭘, 구태여 무식을 떨 것까지야 있는가? 헐!

그래도 아는 건 하나 있다. 도올이 如來滅後後五百歲란 말의 뜻이 아직까지도 명료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충 ‘추상적으로 불법이 쇠퇴한 먼 훗날의 시대’ 쯤으로 생각하는 게 옳을듯하다고 말하며 석가여래가 생각해 말한 진리인식이란 법이 뭔 사람 사는 계율의 법이랄 것이라고, 이 계율을 지켜내면 뭔 복이랄 걸 받을 수 있는 거여서 ‘먼 훗날까지’ 이 복을 닦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분명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과는 딴 소리다. 또 일체 삼라만상이 진리의 진실로써 이미 구원임을 말한 이 금강경의 글귀가 무슨 구원의 방편일 것이란다고, 이 구원을 믿는 맘을 내는 이들은 석가여래가 죽은 지 ‘먼 훗날’의 말셀 수록 더 많은 거라고, 진짜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과는 너무도 멀어 비관스럽고 해괴한 말의 삶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가 도올이란 건 알 수 있겠다. 이렇게 도올이 해괴한 사유로 딴 소리를 함에도 불구하고 도올이 이렇게 사유하여 말하는 이 삶의 오온인 맘과 몸,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은 안팎으로 온통 소멸의 지혜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삶이다.

如來滅後後五百歲란 말은 이 말의 형상인 언어문자와 그 뜻의 안팎이 온통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임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인 이 여래·보리살타를 설명한 말인 지는 얼른 바르게 알아보기가 어렵다.

여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은 소멸을 따라 소멸하는 소멸에 의해 드러나는 총체적 지혜작동으로써의 空임을, 이는 인간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인 오온이며 시·공간으로서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총체적 지혜작동으로써 空임을 말하는 것이다.

오백세란 500세로써 숫자로 五蘊(이를 五行으로도 볼 수 있다.)이며 시·공간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여래의 보리살타인 空(0)을 표상한 말이다.

우리의 민요 중에 ‘한 오백년’이란 노래가 있다. 이는 대충 추상적 먼 훗날을 가르키는 숫자가 아니라 바로 오온의 시·공간이 공(0)임을, 여래의 보리살타임을 노래한 것이다. 원불교의 圓(ㅇ)도 이것이다. 옛날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안 선승들은, 아마 문자를 모르는 까막눈인 이들이 분명하겠지만, 이런 노래를 민중들과 소리쳐 불러대며, 이 맘의 문화로 더불었던 몸의 소멸을 설워하는 이 한 오백년의 삶을 노래로 기도했지 싶다.

심한 牽强附會라고 함부로 내치지 마시라. 설령 그렇더라도 이 사유의 이 말이 곧 저 중중무진으로부터 如來한 연기의 실상임이니.

분명한 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은 추상이란 대도 까닭없는 상상의 추상이 아니라 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와 눈꼽만큼의 틈도 없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正信의 希有인 이 기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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