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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54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無爲福勝分 第 十一

11-1.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語意云何? 是諸恒河沙寧爲多不?”

제11분 함이 없음의 복이여, 위대하여라.

11-1.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한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이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 無爲福勝이란 사구게를 도올처럼 해석한대도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로써의 여래인 연기의 실상임엔, 진리의 진실임엔, 선정지혜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는 진리의 진실로 한 말이지 진리의 진실을 해석한 해석이 아니다. 無爲福勝이란 이 제목의 한문을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말로 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복이라고 할 것이 없음으로 복으로 뛰어 일어난다’라고 풀어, 복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복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여래로써의 반야바라밀을 격의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이 제목이 저 노·장적 냄새가 풀풀 나긴 하지만, 도올처럼 이렇게 해석하는 건 완전 노·장류다. 한데, 노·장류라 한 대도, 無爲를 ‘함이 없음’이라고 딱 자른 말로 해석해서야 노·장류의 아우라가 있을 것인가?

이 금강경 各分의 제목으로 단 모든 사구게는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담긴 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로써의 여래라는 말을 격의한 말들이다. 이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며 선정지혜 따위,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설명한 관용구들과 같은 의미의 다른 말들이다.

구체적으로 분류한다면, 無爲는 보리살타를, 福勝은 반야바라밀을 격의한 말로써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삼천대천세계가 관념적 부동태로서의 복이며, 실제 시·공간적 작동성으로써의 무위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는 대승적 문자로써의 분류고 좀 더 작은대승의 소승적 분류를 한다면, 이 無爲는 살타며 진리며 연기며 지혜를, 福勝은 보리며 진실이며 실상이며 선정을 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대·소승이라는 관념적 부동태로써의 생각일 뿐이지, 그 대·소승의 실제는 순간의 형상이랄 것도 없는 전광석화보다도 빠른 시·공간적 대·소승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일 뿐이다.

지구는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인연·인과의 대승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반야인 것이며, 동시에 태양계로써의 구성체인 소승으로 작동하는 지혜·반야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인 것이다.

이 분절은 이 뜻을 강물과 강물속의 모래에 비견하여 보리살타의 여래인 반야바라밀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앞 분절에선 수미산이라는 大의 큼으로 이 보리살타의 여래는 이 큼으로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크는 이 작동의 지혜인 장엄의 정토임을 설명한 것이고, 이 분절은 많음은 많음으로 작동하는 무위의 복승으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

11-2.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尙多無數, 何況其沙?”

11-2. 수보리가 사뢰였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갠지스강만이라도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11-3. “須菩提! 我今實言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多不?”

11-3. “수보리야! 내 지금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여기 있어, 칠보로써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강해] “我今實言告汝”는 여태까지 없었던 표현인데, 산스크리트 원문에 “내가 너에게 이른다. 수보리야! 너 잘 듣거라(너는 가슴에 꼭 銘記하거라. 티베트本)”로 되어 있는 것을 축약한 것이다. ·····. 그러니까 “實言”이라는 말속에는 “잘 명심하라”는 간곡한 권면이 숨어있는 것이다.

--- 이 분절의 산스크리트 원문이 도올의 해석과 일치한다면, 난 단연코 그 원문이 오기라고 말하겠다. 왜냐면 이 분절은 사람이 보시공덕을 많이 하면 그 한만큼, 뭔 댓가의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사람이 지혜의 반야바라밀로써 남녀의 사람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임과 같이 항하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이 삼천대천세계의 반야인 지혜 역시 이 삼천대천세계性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의 여래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석가여래는 지금 수보리에게 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1-3. ‘수보리야, 나는 지금 진리에 의해 익은 진실(實)인 여래의 말로 너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반야의 지혜로 작동하고 있는 보리살타의 남·여는, 이 남녀가 性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반야가 겹겹이 쌓이는 칠보작동으로써, 이 칠보작동으로 가득한 이곳, 항하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이 겹겹의 쌓임인 삼천대천세계는, 이 삼천대천세계性으로 작동하는 보시작동성의 보리살타에 의해 얻어지는 수많은 복으로써의 여래이다. 이 여래의 복이 많지 않은 것이냐?

實言은 보리살타의 연기며 진리로써의 지혜작동에 의해 익은 열매·果인 부처며 실상이며 이 實의 진실로써 여래, 곧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담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을 격의한 말이다. 이 여래의 진실로써의 말이란 뜻으로써, 석가여래는 자기가 지금 말하는 이 말도, 또 말의 내용도, 또 이 내용의 말을 말하고 듣는 너도, 그들도 온통 이 여래·부처로써의 지혜·반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서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若有善男子善女人의 若(有)善은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인 여래를 격의한 말로써, 곧 이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여래로써의 남·녀를 말한 것이다.

뒷부분 ‘以七寶滿·····’은 이를 모른 수보리에게 11-1에서 설명한 걸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1-1의 설명을 들은 수보리가 석가여래 자신이 가르친 대로 바르게 알아듣지 못하고 대책없이 항상 흐르는 강물이며 그 강의 모래가 많다고만 말하니, 자기가 말한 뜻은 그 강물이며 모래 따위의 많음을 말한 게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인 중중무진의 시·공간으로써의 이 삼세가 온통 인연·인과의 보시작동으로 뛰어 일어선 如來로써의 福勝이라고 다시 가르쳐 설명하는 것이다.

七寶라니 이런 보물은 사람의 복으로나 칠 수 있는 거라고? 어림없는 소리 마시라. 그 정도로는 이 금강경의 금강의 겉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이 七寶는 남·여로써의 모든 성품의 삶을 표상한 것이다. 七을 바르게 보시라. 六에 하나가 더해진 것이다. 六은 육근이다. 남녀의 사람 삶인 이 육근작동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삼천대천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그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작동성으로써, 이 작동성에 의한 작동태 하나하나가 더해지고 소멸하는 이 작동의 쌓임이 거듭하는 苦集滅道의 여래, 곧 저 하염없이 흐르는 항하·갠지스강으로써의 보물인 여래를 표상한 말이 이 七寶이다. 이 칠보는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인 여래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義)을 격의한 말이다. 이 ‘以七寶·····.’는 여래로써 앞의 若有善男子善女人을 받은 말이다.

도올이 이를 말하지 않고 이 분절을 뭔 착한 윤리적 남녀의 보시행의 댓가나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건, 석가여래의 깨달음(義)을 한문으로 格義한 법을 모르고 있는 건 물론, 구마라십이 원문에도 없는 ‘實言’이란 말을 넣은 깊은 속조차 전혀 모른 완전 오해다. ---

11-4. 須菩提言:“甚多. 世尊!”

11-4. 수보리가 사뢰였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11-5.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勝前福德”

11-5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등을 받아지니게 되어, 그것을 딴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 칠보의 복덕보다 더 크리라.

[강해] 인도인들의 과장법의 표현과 그 진실한 내용이 잘 조화되어 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돈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은 칠보의 공덕을 결코 천시하거나 낮잡아보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것도 “甚多”한 것이다 인간의 경제적 삶은 인간존재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가치는 그것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 집에 금은보화를 채워놓는 것이 중요한가? 진리의 말씀 한 구절이라도 참으로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깊게 생각하고 또 깊게 생각할지니.

--- 문맥으로 보면 본분절은 11-3에서 끝이어야 한다. 이 분절을 도올의 해석으로 보면 석가여래가 자신이 만든 이 금강경이라는 경전을 자랑하는 것쯤의 말이 된다. 석가여래라고해서 자기의 말이나 책을 선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음으로 도올과 같이 해석한다고 뭐라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여 이렇게 강해하니, 이를 이렇게만 알아듣는 이들 중에 그래도 눈치 빠른 이가 있어 이런 분절은 석가여래의 親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다행일 수 있다. 그래도 이 경 내용에 홀딱 반한 도올같은 이들은 석가여래의 이 경이 전부 석가여래의 親言이 아니라, 석가여래의 말 몇 마디에 따라붙은 문화적 현상의 책이라고 바르게 알아보기는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을 모든 존재와 현상에 보편하는 대승문화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라는 단순한 소승적 문화로만 알아보는 건 참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석가여랜 남녀의 인간이 이 인간이라는 性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반야바라밀로써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것과 같이, 이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이 모든 강들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삼천대천세계로써의 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이 삼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통하는 역사로서의 문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 導語인 佛告須菩提를 ‘석가여래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했다’로 풀어야 하는가? 도올의 해석대로라면 본절의 내용은 석가여래가 자기 책을 남에게 잘 말해주면 그 댓가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하는 착한 남자와 여자의 복보다도 큰 복을 받을 거라는 내용이므로, 이는 석가여래를 자기나 내세워 자기 자랑이나 하는 이로 알게끔 이 분절을 푸는 건, 암만해도 아닌 것 같다. 아니, 대체 석가여래 당시에 뭔 출판사라도 있었을 것이라고 이미 이 금강경전을 출판해서는, 이를 자기 스스로가 선전하고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미 출판된 책속에 자기가 들어가서? 헐! 이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이런 분절이 도올이나 다른 해석가들이 해석하는 대로 해석하여 이해하는 게 맞는 거란다면, 이 해석이 비록 진리의 진실인 것이긴 하지만, 이는 분명 석가여래의 양심상 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도무지 그 인과관계가 맞지 않으므로, 이 말은 말이 안 된다. 이는 석가여래의 말을 구전하던 이들이 석가여래의 말에 감동하여 그의 말을 구전하는 중간에 그를 칭송했던 말을 여과하지 않고 기록한 것임이 분명하다. 헐!

이 분절이 석가여래의 말이 되려면, 11-4의 ‘世尊’이 내려와 ‘世尊佛告須菩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존이 복의 부처를 수보리에게 가르쳤다’로 풀어야 한다. 이 분절의 내용은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다의 여래인 부처로써의 남녀, 곧 ‘若善男子善女人’으로써의 이 삼천대천세계가 ‘많음’이라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음을 말하는 분절이다.

於此經中의 ‘경’은 법이다. 곧 ‘이 若善男子善女人으로써의 여래법으로 작동중이므로’이다.

乃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의 ‘사구’는 四句分別로서의 남자 여자며 남·여가 아님 따위, 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반야바라밀다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표상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하는 이런 노래들로 수지되어 있는 것이니’의 뜻이다.

而此福德勝前福德은 ‘이 칠보작동으로서의 여래의 복덕은 앞의 복덕을 인연·인과로 하여 거듭거듭 일어서 쌓이는 복덕이다.’라는 말이다.

이 분절에 등장하는 ‘福德’의 ‘복’이란 말은 뭔 사람의 길흉화복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보편인 반야바라밀의 지혜를 표상하여 격의한 말이다. 즉 ‘복’은 지혜의 반야바라밀인 부처를, ‘덕’은 반야의 지혜로 작동하는 불성으로써의 보리살타를 각각 격의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 ‘복덕’이란 말은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인 여래를, 연기의 실상을, 진리의 진실을, 선정지혜를 표상하여 설명한 말이다.

11-5. 世尊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勝前福德”

세존이 수보리에게 부처를 말했다. “여래의 남녀는 이 若善男子善女人으로써의 여래법으로 작동중이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하는 이런 노래들로 수지되어 있는 것이니, 이 여래의 복덕은 앞의 복덕을 인연·인과로 하여 일어서는 복덕으로써 불성의 부처이다.”

이 무위복승分 역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서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지혜·반야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며 무위의 복승인 부처임을 설명하는 分이다.

석가여랜 자신의 깨달음을 기존의 언어인 부처며 보리살타며 여래(따따가따)며 반야바라밀 등의 말에 실어 이 말의 법을 수많은 이 법의 말로 이를 설명하여 전법한 이이다. 소위 중국불교라고 하는 공안은 이를 뻰치마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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