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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6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能淨業障分 第十六

16-1. “復次須菩提! 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則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貓三菩提.

제16분 더러운 업을 항상 깨끗이

16-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대에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경시당하고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전생에 지은,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죄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지근 세상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경시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곧 전생의 죄업이 소멸할 것이요, 그래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강해] 흔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좋은 일하면 손해본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하면, 손해본다”에서 좋은 일하는 행위는 손해보는 것의 조건이 되며, 따라서 “좋은 일 함”이 원인이 되고 “손해 봄”이 결과가 되는 것이 우리의 분석의 상식적 구조이다. 그래서 이 인과관계가 억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윤회연기를 도입하면 이러한 우리의 추론은 단연코 깨어지고 만다. 여기에서의 인과관계의 설정이 너무 협애한 현재적 시점에만 국한되어 그 연기적 실상의 전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행위는 미래 어느 시점에선가 반드시 善果를 거둘 것이며, 현재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惡果는 과거의 나의 惡業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인과관계를 기나긴 윤회의 과정속에서 넓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일하면 손해본다”는 우리의 현실적 판단은 옳은 듯하지만,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미신적인 전생이나 후생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이 곧 나의 현재적 행위의 결과라는 생각을 지양하는데 보다 포괄적인 인식의 지평을 제공하는 훌륭한 논리 구조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좋은 일해서 손해 보기 때문에 좋은 일을 안할 것이 아니라, 손해보든 말든 반드시 善業을 계속 쌓아가는 행위야말로 나의 삶의 정언명령이라는 것이다.

이 절은 바로 선남자 선여인이 금강경의 실천으로 인해 현시적으로 핍박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과거 악업의 결과일 뿐, 오히려 그러한 핍박으로 인해 나의 전생의 죄업이 다 씻기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하는 희망에 찬 찬란한 멧세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 能淨業障은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업이 업으로 작동하는 하는 걸 가로막는 걸 제거하여, 업이 업으로 청정하게 작동하게 하는 힘이라는 뜻의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이다. 이 分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업으로 작동하는데 있어 어떤 장애랄 것이 없는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설명하는 분이다.

도올은 이를 ‘더러운 업을 항상 깨끗이’라고 이해하여 이 分 역시 인간의 윤리를 말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강해하고 있다.

도올은 사람들이 내 좋은 일로써의 행복이 ‘너무 협애한 현재적 시점에만 국한되어 그 연기적 실상의 전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이 분절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행복의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니, 지금 손해 보는 삶을 달리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만 하는 선업이나 계속 쌓으라는 것이다. 암만 가난하고 허약한 몸뚱이라도 나눠줄 것은 있는 것이니, 나를 없애는 보시를 줄기차게 하라는 사람의 윤리를 말한 것이란 것이다. 이건 아니다. 거듭거듭 작동하는 지혜의 말로 거듭 말하건데, 이 금강경의 금강은 이 사람의 도덕적 윤리가 아니라, 저 임마누엘 칸트의 정교한 도덕철학의 논리란 대도, 이런 모든 윤리며 논리를 한 꿰미에 꿴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이다. 석가여랜 오직 이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을 생각해 이를 말로 설명한 이다.

석가여랜 말하는 것이다.

16-1 “거듭하여 말하지만 수보리야, 보리살타의 남녀로 받아 지녀진 이 금강 반야지의 법을 남녀의 사람이 읽고 노래해도, 다른 사람이 경천하는 것은, 이 경천 받거나 주는 사람이 선세죄업에 응하여 악도에 떨어진 것이다. 금세사람으로써, 금세사람을 경천하는 까닭은 선세의 죄업때문이라는 인과법칙이므로, 이 인과법칙은 노상 인과의 업장이 소멸하는, 당연한 이 업장소멸의 能淨법칙으로 얻어진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이다.

이 분절은 석가여래가 깨달은 뜻을 담은 보리살타며 여래며 부처라는 이 법은 남녀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에 온통 부촉·수지되어 있는 것으로써, 이 법조차 이 법에 의한 깨달음으로써의 무상정등각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을 모르고, 이 법을 읽고 노래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사람의 삶을 경천하는 악한 죄업은 선세에 지은 악한 죄로써의 업장때문으로써, 이 업장의 과거가 오늘에 소멸하여 없어져 맑게 되는, 이 업장소멸의 能淨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라는 법을 아는 깨달음은 무상정등각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과거나 현재로 실재하는 실체랄 것이 없는, 다만 이 상대적 인식으로써 총체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란 것이다.

도올은 이 분절이 진리의 진실임을 생각하여 말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윤리로만 알아보고 말하는 건, 이 금강경의 금강인 보리살타의 여래법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한 오해의 소치다. 설령 “좋은 일하면 손해본다”라는 말의 뜻으로 이 분절을 비유하여 설명한대도, 이것이 진리의 진실임을 말해야지, 사람의 삶은 도덕적 선업을 쌓아야 언젠가는 좋은 이익이 온다는 게 칸트의 정언명령이며, 이 금강경의 금강이니, 이런 도덕적 삶을 사람은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것이 칸트의 정언명령인지는 몰라도 결코 이 금강경의 금강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의 말을 하는 도올은 어김없이 이런 오해의 말을 하는 보살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6-2. 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祇劫, 於然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無空過者.

16-2. 수보리야! 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과거의 헤아릴 수도 없는 아승기의 겁의 기나긴 시간동안에, 연등부처님을 뵈옵기 전에도 이미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수의 많은 부처님을 뵈올 수 있었고, 또 이 분들을 공양하고 섬김에 조금도 헛된 세월이 없었어라.

--- 석가여래의 이 말은 석가여래 자신의 뭔 과거를 회상하는 말이 아니다. 나로써의 사람인 우리가 생각하는 시·공간에 대한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는 과거라는 시·공간 속으로 작동하는 헤아릴 수 없는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나, 즉 我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총체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말한 것이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 금강경 속에 등장하는 我는 대부분 四相으로써의 我인 독립적 개체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를 일컫는 我이다.

16-2. 수보리야, 나의 생각인 과거는 무량아승지겁의 지난 세월인 보리살타의 然燈佛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유타의 모든 부처들에 이르기까지, 온통 전부 다 베풀어지고 길러지는, ‘이어지는 일이랄 것이 없이 텅 비어 지나가는’ 承事無空過로써의 보리살타로 얻어진 과거이니,

이 분절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지나간 시·공간의 과거가 承事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無空의 공양작동성으로써, 이 과거라는 시·공간이 온통 보리살타의 바라밀다인 연기의 실상임을 말한 것이다.

承事無空過란 말은 보리살타의 작동태를 표상한 말로써 이를 격의한 말이다.

이는 과거로서의 모든 업장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즉 ‘이어지는 일이랄 것이 없이 텅 비어 지나가는’ 承事無空過인 보리살타의 바라밀다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말한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6-3.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不及一,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16-3.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어, 오는 말세에 이 경을 잘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공덕을 쌓는다면, 그 공덕에는 내가 과거세에서 그 많은 부처님들을 공양했던 그런 공덕이 그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그에 미치지 못하리라.

[강해] 이것은 부처님의 겸손의 말이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떠한 종교적 행위의 축적도 단 한순간의 깨달음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이 래디칼한 금강경의 멧세지야말로 모든 관습의 루틴에 빠진 종교인들에게 벼락을 내려치고 있는 일갈일 것이다.

--- 도올이 ‘어떠한 종교적 행위의 축적도 단 한순간의 깨달음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맞다. 헌데 도올이 말하는 ‘한순간의 깨달음’이란 어떤 깨달음인가? 석가여랜 이미 무량아승지겁의 과거가 온통 承事無空過로써의 보리살타인 부처로써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도올의 이 ‘한순간의 깨달음’은 어떤 깨달음인가? 진리인식의 깨달음인가? 아니면 보리살타에 의해 드러난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이 깨달음인가? 이를 분명히 밝혀 증명하는 것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말하는 것이다. 무턱대도 ‘한순간의 깨달음’이란다면 대체 뭔 깨달음이란 말인가?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란다고, 금강의 깨달음인지만 알면 된다는 것인가? 또 대체 이 금강경이나 외워 읽는 일이 뭔 공덕일 것이 있단 말인가? 맨날 염불이나 하란 말인가? 석가여래가 자기가 말한 설법이나 계속 읽고 외워대라고 말했단 말인가?

어떤 깨달음이란 대도, 이 금강경을 읽고 외우는 일뿐만 아니라 숨 한번 내쉬는 일조차도 온통 깨달음이다. 이 숨 한번 내쉬기란다면, 이 숨 한번 내쉬기 전의 모든 시·공간으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 과거가 총체적 작동성으로 작동한 결과로써의 깨달음이, 이 한번 내쉬는 숨이다. 그러므로 이 숨 한번의 공덕은 이 숨 한번의 공덕 이전의 어떤 시·공간적 공덕이 미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완전한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의 지혜공덕으로써의 독립적 개체인 것이다.

이 분절은 이 지혜의 공덕이 거듭하여 쌓이는 보리살타의 바라밀다임을 말한 것이다. 이 수많은 모든 존재와 현상 중의 어떤 사람이, 이 중에서 보리살타의 법을 아는 진리인식의 깨달음이 격발한다면, 이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미칠 수 없는 무상정등각임을 말한 것이다.

16-3. 지혜의 거듭인 若復이다. 어떤 사람이 이 금강의 법이 희미해진 後末의 세상으로도 능히 받아 지녀진 이 법을 읽고 노래하는 것에서, 이 법의 공덕으로 이 법의 공덕인 보리살타라는 앎을 얻은 이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은, 내가 무량아승지겁의 모든 부처로 베풀어져 길러낸 삶으로써의 공덕이,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뿐 아니라 어떤 계산의 수로 비유한 대도 미칠 수 없는 공덕의 깨달음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6-4.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聞, 心則狂亂狐疑不信. 須菩提! 當知是經義不可思議, 果報亦不可思議.”

16-4.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법이 쇠퇴한 먼 옛날에도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지니, 그 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공덕을 내가 만약 자세히 다 말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마음이 미쳐 흐트러지거나, 반신반의하여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라!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하며 그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강해]금강경의 지혜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모든 지혜의 신비는 주관과 객관, 주부와 술부의 대립이 해소되는 자리에 서있다. 어떠한 언어도 그 자리에 진입할 수 없다. 그것은 진입될 수 없는 전체인 것이다. 그것은 不可分割이요, 그래서 불가사의인 것이다. 금강경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금강경의 지혜는 우리의 상식으로 영원히 미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세계에 서있는 것이다. 위대하도다! 금강경의 신비여!

--- 처음의 이야기를 거듭하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는 이 보리살타의 법이 작동하여 거듭 쌓이는 작동중의 중도·여래·열반의 바라밀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리살타의 불법이 생긴지 아무리 오래되어 그 바른 뜻이 흐릿한 말세라고 해도, 이 세상은 꼭 같은 보리살타의 법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법이 수지·부촉되어 있음은 변함이 없어, 그때의 남녀 사람이 이 법전을 읽고 노래하는 것에서도 여전히 이 법을 아는 깨달음의 공덕은 바르게 얻어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6-4. 수보리야, 반야의 바라밀다인 남녀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後末의 세상도 이 법이 받아 지녀져 있어, 남녀의 사람이 이 법을 읽고 노래하여 이 공덕의 법을 얻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인 지혜는 이미 갖추어진 말을 말하는 것인데, 혹 어떤 사람이 이 보리살타의 법칙을 말하는 말을 듣고, 이 보리살타의 여래법으로 맘이 어지럽고 의심하여 이 보리살타의 여래법을 생각하여 믿지 못한다면, 수보리야, 마땅한 이 보리살타의 여래법의 바른 뜻을 아는 건 불가사의이며, 그 과보를 아는 것 역시 불가사의 이다.

善은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이다. 보리살타의 남·여라는 이 사람성품으로써의 나의 삶으로 갖춰진 도구 중 하나가 말하는 것으로서, 我若具說者라는 것인데, 이는 곧 사람과 말은 보리살타의 바라밀다로써 연기의 실상이므로 이 사람과 말은 제각각으로 작동하는 소승이며 동시에 둘이 통합된 하나로써의 대승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여래인 것이다. 이를 아는 깨달음은 생각으로 따지는 것으론 불가하며, 생각이라면 모든 常識으로서의 이 생각의 識이 곧 이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법임을 석가여래가 안 뜻의 義로 바르게 알아차려야 하는 생각의 識인 앎이므로, 이는 思議의 생각으로 따지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이 생각을 하는 이 작동력이랄 보리살타를 바르게 알아보는 미묘한 깨달음이란 것이다.

도올이 말하듯 이 ‘금강경의 지혜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모든 지혜의 신비는 주관과 객관, 주부와 술부의 대립이 해소되는 자리에 서있’는 건 맞다. 그러나 ‘어떠한 언어도 그 자리에 진입할 수 없다. 그것은 진입될 수 없는 전체인 것이다. 그것은 不可分割이요, 그래서 불가사의인 것’이라는 말은 진리의 진실을 말한 말로 용납할 수 없다. 단지 도올이 이렇게 생각하여 말한 이 모든 것이 진리의 진실임은 인정하겠다.

이 금강경의 지혜인 금강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여래의 법이므로, 이 법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에 보편하는 금강의 지혜인 법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어떤 분할된 한마디의 언어라도, 온 천지의 전체를 다 말한 不可分割의 언어라도, 이 법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법이 진입할 수 있는 신비한 상식이다. 즉 모든 언어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므로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어디에도 진입·퇴가 자유로운 보리살타로써 여래의 법인 연기의 실상이다. 모든 언어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상식의 법이다.

이 ‘금강경의 지혜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영원히 미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세계에 서있는 것’이라 위대하고 신비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라고 안 이 앎이 위대하고 신비한 것이며, 이 법으로써의 내가 신비하고 위대한 것이다.

도올은 지식이 많은 게 아니라 자기가 소장한 지식의 책을 잘 활용할 줄만 안다고 한다. 책을 잘 활용한다 하니 엄청 똑똑한 智慧人(? 이 지혜란 말도 지식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거라고 도올이 말한 것 같은데)인데, 구마라집이 금강으로 이 금강경의 금강을 설명해도, 도올이 이를 믿는 건 고사하고, 이를 바르게 생각하여 말하지도 못하니, 이 금강법의 바른 뜻은 참으로 미묘하며, 이 금강법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로써의 도올의 이 삶 역시 미묘하여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能淨業障의 보리살타이다.

보리살타의 여래법은 설령 보리살타의 여래법이라고 생각하여 말한 대도, 이 생각의 말이 곧 보리살타의 여래법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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