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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여기’, 말을 통해서 말을 넘어서

2016. 05. 16
조회수 6801 추천수 0
붓다 제자들은 쉬운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예수 제자들은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 쉽게

05419442_P_0.jpg » 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피고인 8명이 사형을 선고받은 대법원 법정.

김형태/ <공동선> 발행인·<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인혁당사건 사형수 8인이 사형당한 지 42주기 되는 날 추모행사에서 6·15합창단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장엄하게 불렀습니다. 30여년 전 집회 때면 늘 부르곤 했던, 그러나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이 노래가 새삼 가슴을 쳤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운동 출신 목사님은 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감동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내맡겨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돈이나 권력의 억압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꿈.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바람과 먼지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결코 이루기 어려운 순진하고 고결한 꿈. 돈이나 권력은 물론 사랑과 명예마저도 내 몫으로 남기지 않겠다는 그 열렬한 헌신.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제 젊음과 미래와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지금은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저 순진했던 시절의 꿈, 그래도 이 꿈은 우리가 꾸어야 할 영원한 꿈입니다.
 
 우리가 꾸어야 할 영원한 꿈
 남에서는 연인원 수십만명의 한미 연합 군인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북에서는 미사일실험이 한창인 때에, 남북 화해와 상생의 6·15공동선언을 기리는 6·15합창단은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를 목표로 내걸었던 사회주의는 사람의 본성인 이기주의 때문에 현실에서 또 다른 억압이 되어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동네에도 철저한 이타주의의 대의 앞에 자신의 이기를 내던졌던 순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자신도 비전향 장기수였던 신현칠은 동료의 영전에 이런 시를 바쳤습니다.
 “젊어서 논밭에 땀 뿌릴 때나/시골 우편집배원일 때나/작은 마을 세포책일 때나/지상과 지하에서 면당 군당책일 때나/산골짜기 산등성이/총 들고 죽음 맞선 대원일 때나/30년 독감방에서/까만 눈만 깜빡이고 앉아 있을 때나/더 잘난 때도 없고/더 못난 때도 없고/저가 있을 자리를 단단히/꼿꼿이 지킨 벗”
 30년 세월을 독방에 갇혀서도 ‘저가 있을 자리’, ‘당과 인민을 위한’ 이타가 어찌 가능할까.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을 썼습니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은 그 안에 있는 유전자들이 유전자 자신을 가장 잘 증식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생명체들의 행동을 이끌어간다는 겁니다. 유전자가 무슨 이기적 목적을 가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책 많이 팔리게 하려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라는 비유적 제목을 단 듯합니다. 유전자가 이기적 의도를 가진다기보다는 이기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을 가진 개체가 이 현실에 더 적응을 잘해서 더 많이 살아남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선택의 결과를 ‘이기적’ 유전자라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신을 희생하면서 경쟁자를 도와주는 “훌륭한 유전자”들은 결국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겉보기에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사실은 더 큰 범위에서 그런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 개체로 하여금 그런 이타적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겁니다.

05461212_P_0.jpg » 청량산 괘불탱 불화 부처님 손에 들린 모란꽃.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헛똑이
 이 현실은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30년 독감방에서 까만 눈만 반짝이고 있”거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에 묻힙니다. 명예도, 심지어는 제 유전자를 물려 줄 자식도 없이. 그래도 이런 꿈같은 일들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될 겁니다.
 도킨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헛똑똑이입니다. 어떤 존재를 단순히 그걸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성질로만 설명하는 태도를 환원주의라 부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그런데 우리가 숨 쉬는 산소 분자 두 개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소 분자 하나가 모이면 산소, 수소와는 너무도 다른 성질을 지닌 물이 됩니다. 물을 산소와 수소의 성질로 유추해 낼 수는 없습니다.
 ‘창발’(創發). ‘창조’라 해도 좋겠습니다. ‘초월’이라는 철학 용어도 그럴 듯합니다. 창조, 초월은 그 토대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비약, 뛰어넘음입니다. 
 겨우내 언 땅에 묻혀있던 유전자 다발인 모란 뿌리에 물과 바람과 햇빛이 힘을 합쳐 저 붉디붉은 모란꽃을 피워내는 건 창발이요, 초월이요, 창조입니다. 언 땅, 뿌리, 물, 바람, 햇빛을 아무리 모아내도 어디서 저 붉은색 모란꽃이 생겨난답디까. 
 불가의 표현을 빌자면 모란 저 붉은 꽃은 어디 뿌리를 아무리 찢어 보아도, 흙, 물, 바람, 햇빛 속을 뒤져 보아도 없으니, 이런 인연들이 모여(緣起되어) 비로소 피고 또 지는 것이라. 이런 불가의 연기 개념에 ‘창발’, 철학의 ‘초월’, 기독교식으로 ‘창조’의 개념이 덧대어져야 비로소 그 뜻을 깨우치기 쉬워지지 싶습니다.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나
 나는 도킨스 말대로 내 조상들로부터 유래한 이기적 유전자들의 복제물입니다. 나의 뇌도 한 처음 그저 햇빛이나 물에 단순 반응하는 원시적 신경세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억년 세월 이기적 유전자들이 생존경쟁에서 선택되는 진화를 통해 이제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마침내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나’를 의식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나. 이건 이기적 유전자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마치 뿌리와 흙과 물과 바람과 햇빛이 서로 만나 저 아름다운 모란꽃을 피워내듯이, 창조해 내듯이, 이기적  유전자들의 결과물인 나는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나로 ‘비약하고’ ‘초월하고’ ‘창조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나는 더 이상 그 토대가 되는 이기적 유전자의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현칠과 그의 동지는 “산골짜기, 산등성이 총 들고 죽음 맞서기도 하고, 30년 독감방에서 까만 눈만 반짝이면서도 저가 있을 자리를 단단히, 꼿꼿이 지켰습니다.”  
 스님들 사이에 깨달음 논쟁이 한참입니다. 깨달음의 대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가. 이 연기와 창조의 세계는 본시 한계 지우는 걸 그 본성으로 하는 ‘말’과는 친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를 자꾸 분류하고 추상화하는 ‘말’은 그 속성상 ‘실체’를 지향하니, 언 땅에서 꽃이 피어나고, 단백질 덩어리 뇌에서 마음이 나오고, 이율배반적으로 자기가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이타가 나오는 그 신비로운 초월의 과정을 어찌 ‘말’ 가지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저 옛날 선사들은 제자를 몽둥이로 때리고 스승 뺨을 때렸나 봅니다. 이건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연기와 창조의 실상을 깨우치게 하려는 하나의 방편이었겠지 싶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말은 분명 깨우침의 시작일 겁니다. 말 자체가 바로 이 연기적, 창조적 세계의 산물이니 그렇습니다. 말, 개념을 내어놓고 무엇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는 시작으로 삼을 겁니까. 연기적 실상에 대한 말을 듣고 그게 어떤 걸까 하는 의심이 든 사람에게야 비로소 몽둥이가 약일 터. 생판 아무 개념도 없는 사람을 다짜고짜 몽둥이로 패면 돌아오는 건 곱절의 몽둥이찜질이겠지요.
 
  대상도, 방법도, 주체도 다 연기
 그렇습니다. 말을 통해 말을 넘어서. 깨달음의 수단이자 대상인 ‘마음’ 역시 연기의 소산입니다. 붓다와 임제 선사와 나의 공통 조상인, 최초의 단세포 생물에게는 마음이란 게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수억년 마음의 진화 역사에서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로 넘어오면서 언제부터 ‘초보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현재까지의 고고학 지식으로는 5,6천만년 전, 다람쥐같이 생긴 영장류를 마음의 시작으로 봅니다. 자신을 자각하는 능력은 길어야 수백만년이고, 현생인류의 역사는 10만년 안팎입니다. 그 옛날에는 깨달음의 수단인 마음이나, 많은 이들이 깨달음의 대상으로 여기는 나를 주시하는 ‘나’, ‘이 뭣꼬’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주관과 객관이 미분화된 상태.
 뇌신경학에 따르면, 마음은 단백질 덩어리 뇌 속 천억개의 뉴런세포들이 외부 세계의 자극에 반응해서 전기, 화학적 신호를 통해 지각하고, 기억하고, 학습하고, 행동을 지시하는 ‘상호연결 과정’입니다. 마음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실체가 없고 뉴런들의 상호연결회로들만이 그때그때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마음 역시 철저한 연기의 소산입니다. 
 깨달음은, 어찌어찌하여 조상들의 유전자가 잘 조합을 이룬 결과인, 외부의 자극을 철저히 통제하여 주객일체의 삼매에 들 수 있는 뛰어난 집중력과 실상이나 이치를 잘 통찰할 줄 아는 직관력 등의 주관적 조건, 그리고 문화전통과 좋은 스승, 환경 등의 객관적 조건 같은 여러 조건, 인연들이 잠시 모여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근기가 약한 중생들 역시 그저 그런 조건, 그런 인연들의 연기적 결과일 뿐입니다. 위대한 선사나 우둔한 근기의 필부필부들이나 다 그저 연기적 존재들이니, 깨달았다고 우쭐댈 일도, 어리석다고 낙담할 일도 없습니다.
 깨달음의 대상도, 방법도, 깨달음의 주체도 다 연기의 소산입니다. 어디 홀로 독립하여 쭉 존재하는 뛰어난 이가 있어, 어느 생에서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여, 마침내 초인이 된다는 설명은 연기의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집니다.
 
 힌두교나 기독교에도 일맥상통
 붓다의 깨달음은 감각세계를 초월한 저 머나먼 별천지 우주가 아니라, ‘그저 없지 않고 있기도 한’, 이 고통스런 감각세상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깨달음의 내용도 이 감각세상의 고통에 대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뒤에도 이 감각세상에서 함께하셨습니다. 약육강식의 이기적 유전자가 번성하는 이 세상.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제자들은 단순한 인연, 조건으로서의 연기를 넘어서서, 연기되어 있는 온갖 세계와 중생은 다 비로자나부처님의 현현이며, 하나와 전체가 서로 비추고 비추인다는 법계연기의 화엄사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건 힌두교나 기독교에 일맥상통합니다.
 사람들이 ‘말’ 때문에 넌 나하고 다르네, 같네, 하고 다투지만 말을 넘어서면 다 같은 뜻이란 생각입니다. 
 붓다는 우리의 고통의 실상을 꿰뚫어 가르치셨고, 예수는 우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셨습니다. 붓다의 제자들은 ‘이 쉬운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하고 있고, 예수의 제자들은 ‘이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고 있어서, 나 같은 멍청이들은 너무 헷갈립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남의 고통을 나누어지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려 애쓰는 순진하고 고결한 이들이 끊임없이 있어 왔으니,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 <공동선> 2016.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comng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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