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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도 비도 똑같이

휴심정 2016. 07. 14
조회수 5089 추천수 0
04524875_P_0.JPG » 양고기를 숯불에 굽고 있다. 양꼬치에 주로 사용하는 양고기는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어린양 램이다. 양고기에 입히는 소스는 가게마다 다르지만 양고기 특유의 잡냄새를 없애주는 향신료 쯔란(커민)은 꼭 들어간다. 김명진 기자

엊그제 아는 이 개업식에 갔더랬습니다. 그는 수십년 세월동안 딱 부러지게 이거다 하고 내놓을 만한 직업 없이 이리공저리공 지내왔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처자식 먹여 살리고 아이들 대학까지 마쳐주었으니 신통방통도 합니다. 이제 처음 제 이름으로 어엿한 고기집을 대로변에 차려놓고, 앞치마 두르고 부지런히 양고기를 나릅니다. 나는 그에게 덕담을 건넵니다.
“이 양고기는 냄새도 안 나고 너무 부드러운 게 쇠고기 저리 가라네.”
“아 이게 ‘램 lamb’ 이라고 1년이 안된 어린 양이래서 그래요.”
“돈 많이 벌겠네, 너무 맛있다.”
우리 일행은 초여름 밤 공기를 즐기며 노천에 앉아 ‘부드러운’ 램 고기와 술을 실컷 먹고 마셨습니다.
다음날 집 저녁상에 장어구이가 올라왔습니다. 내가 어제 먹은 1년도 안된 양고기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이야기를 꺼내자 처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 ‘1년도 안된 양’ 얘기 좀 하지 말라고, 그냥 밥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눈치도 없이 한 술 더 떴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무섭게 생겨 먹은 걸까요”
 
아들 녀석의 말마따나...
석가세존 가르침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명제, 흔히 삼법인이라 합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연기(緣起)되어진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일체행고(一體行苦) 모든, 연기되어진 것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존재들은 실체가 없다.
어미에게서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된 어린 양 ‘램 lamb’이 고기의 부드러움 때문에 죽임을 당해 우리 술상에 오르는, 이 연기되어진 ‘행 行’. 참 고통스러운 세상,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아들 녀석 말마따나 이 세상의 실상은 식물이 되었건 동물이 되었건 서로 남의 목숨을 먹고 살아가야 하니 만족스럽지 않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며 사건들(行)이 서로서로 조건이 되어 일어나고 사라지니(緣起), 세존께서는 덧없고 고통스런 이 세상 존재들이나 사건들에 집착하거나 화를 내거나 어리석게 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 하십니다.
그래, 남의 목숨 먹어야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고기의 부드러움을 탐해서 어린 양이 죽게는 하지 말자.

05551572_P_0.JPG » 북한 해외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7일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명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은 통일부가 언론에 제공한 것인데, 이 장면이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통일부도 모른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지난 국회의원 선거 직전 중국 조선식당에서 일하던 북쪽 처자 13명이 집단으로 남쪽에 들어왔습니다. 국정원은 자진탈북이라 주장하고 이에 맞서 북의 부모들은 딸들 의사를 확인해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습니다. 
우리 법원은 이들을 불러 직접 그 의사를 확인하려 했지만 국정원은 이들을 법정에 출석시키지 않았습니다. 헌법상 기본권보장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마저 무시되면 이 처자들의 운명은 어찌되는 건가.
만약 그중 단 한 명이라도 본의 아니게 남쪽으로 끌려온 것이라면 이 일을 꾸민 사람의 악행은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제일 무서운 권력자 자리에 앉아서 국민의 운명을 마음대로 하는 이 세상, 정말 일체행고(一體行苦)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이 무서운 세상의 실상에 낙심하고 앉아 있다가 매일 미사에 나오는 성서 구절에서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 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그렇습니다. 이 연기된 세상 자체가 고통이라 하신 세존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악인과 불의한 이, 어리석은 이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 아니 바로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만들어 내는 이 무서운 세상을 바로 보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걸까 낙담하여 주저 물러앉지 않고, 또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하겠다며 악인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 않고, 한 걸음 더 성큼 나아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그분’을 닮으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 <공동선> 2016.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comng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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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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