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흙수저조차도 챙겨 나오지 못한 청춘들

서영남 2016. 09. 23
조회수 7219 추천수 0
민들레.jpg

88년생 청년과 84년생 청년 둘을 데리고 건강보험공단에 갔습니다. 
 84년생 청년은 24살 때부터 노숙을 시작했습니다. 일거리가 있을 때는 겨우 살다가 돈 떨어지면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차례나 어린 청년이 노숙하는 것이 안쓰러워 도와주곤 했습니다. 민들레 식구로 받아들여 취직도 하게 했습니다. 돈만 손에 쥐면 사라지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다가 초라한 몰골로 나타나면 식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쯤 거제도에 취직이 되었다며 떠났습니다. 얼마 전에 또 민들레국수집에 나타났습니다. 옷은 몇 달을 갈아입지도 못한 듯합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한다고 합니다. 몸이 가려워 죽겠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씻고, 민들레 옷가게에서 전부 갈아 입혔습니다. 입었던 옷은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식사하게 한 후에 이발시키고, 찜질방에서 잘 수 있게 표를 줬습니다.
 거의 십여 년을 살아보려 발버둥쳤지만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조차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청년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동안 믿을 수 없게 행동했던 과거도 있어서 이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찜질방에서 잘 수 있게 하고 식사는 삼시세끼 민들레국수집에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몇 달 더 지켜보고 잘 견디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알레르기 때문인지 얼굴을 무척 가려워 합니다. 약을 발라봐도 차도가 없어 병원엘 데려가야겠는데, 주민등록도 말소가 되어 있고 건강보험도 오랜 연체로 안 됩니다. 방을 마련해서 주소를 옮기고 건강보험공단에 밀린 보험료를 24개월 분할 납부하기로 했습니다.
 88년생 청년도 부모 이혼 후 할머니 품에서 살다가 17살에 혼자가 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공원에서 잠을 자게 되고 다행스럽게 베로니카의 도움으로 찜질방에서 자면서 민들레국수집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주민등록 말소는 되지 않았고요. 건강보험료는 70만원 정도가 밀려서 분할 납부 신청을 했고, 전 주소가 월세를 내던 쪽방이어서 84년생 청년과 함께 지낼 주소로 이전했습니다. 주민등록 재발급을 받기 위해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습니다. 증명사진 찍을 돈이 없어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보험공단에 가는 길에 찜질방에서 자는 것이 힘들지 않는지 물어봤더니 공원에서 잘 때를 비하면 천국이라고 합니다. 노숙할 때는 선잠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죽지 못해 살았답니다.
 흙수저라도 하나 챙겨 나오지도 못한 젊은 청춘들입니다.
 
 ※ ‘민들레국수집’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서영남 | 2017. 03. 13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모든 것이요.  어떤 사도가 이 무상성을 산다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많이 있지만 두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복음 선포는 가난의 길로 가야만 합니다.  이 가난을 증언하는 거예요.  ...

  • 수감자 노숙자의 따뜻한 국물 한술수감자 노숙자의 따뜻한 국물 한술

    서영남 | 2017. 02. 19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 노숙하는 이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환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어제는 청송을 다녀왔습니다. 청송의 형제들이 베베모가 다시는 청송에 오지...

  • 설날에 더 슬픈 사람들설날에 더 슬픈 사람들

    서영남 | 2017. 01. 30

    우리 손님들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 가난밖엔 가진 것 없는 그들이 ‘하느님 대사’가난밖엔 가진 것 없는 그들이 ‘하느님...

    서영남 | 2016. 02. 15

    시기와 질투. 공지영 작가의 글에서 얻어왔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그 근본 개념이 조금은 다른데, 시기는 쉽게 말해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미움이고, 질투는 쉽게 말해 나보다 잘난 저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 필리핀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꿈의 기적필리핀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꿈의 ...

    서영남 | 2016. 01. 29

    2014년 6월에 시작해서 2015년 6월까지 우리 아이들이 사는 집 45곳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었습니다. 이제 지붕이 없는 우리 민들레 아이들 집은 없습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4년 9월부터 시작한, 우리 민들레 아이들 가족들이 식사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