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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90부터

황창연 신부 2016. 12. 12
조회수 8165 추천수 0
당신은 자아실현을 하고 있나요?

흔히 서른 살부터 예순 살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오롯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아실현이란 타고난 능력을 자신의 뜻대로 제대로 사용하는 걸 가리킵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일을 살아가는 동안 온전히 세상에 펼치는 일입니다.
park-289087_960_720.jpg » 사진 픽사베이.
사전에서 자아실현이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면,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내재되어 있던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궁극적 목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걸 좀 더 쉽게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의를 나가면 강단에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갈증이 나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그 물을 시원하게 마십니다. 그 물은 목을 적셔주며 제 목적에 따라 쓰였으니 제대로 자아실현을 한 물입니다. 그런데 강의에 정신이 팔려 물병에 손도 안 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물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물이 됩니다. 

제가 머무는 사제관에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전라도 목포 문수동성당 강의 갔을 때 얻었다 하여 ‘문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제가 사제관에 도착했다 하면 총알같이 달려 나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조그만 녀석이 저만 보면 가슴까지 뛰어오르며 반가워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다른 신부님들이 오면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는데, 제가 독신으로 사는 사제라는 걸 아는지 여자들만 오면 성질을 벌컥 내며 큰 소리로 짖어댑니다. 심지어 다리를 물기까지 하며 제게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문수 녀석은 정말이지 자신의 역할을 똑바로 해내며 자아실현을 하는 개입니다.

살면서 자아실현은커녕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린 채 근근이 연명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노인세대로 올라갈수록 심한데, 95세 된 어르신이 남긴 다음의 수기를 읽어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고 가슴을 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존경도 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65세 때 당당히 은퇴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는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내 인생 전반기에 해당하는 65년은 너무도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후반기 30년은 참으로 부끄럽고 비통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퇴직 후에 지금까지 참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그냥 보너스라 생각하자, 그저 무탈하게 조용히 살다 가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 후반생을 돌아보니 참으로 덧없는 삶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30년 세월을 보냈다. 30년이라면 내 인생 95년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철저히 준비했다면 이렇게 남루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04488948_P_0.JPG » 노인. 한겨레 자료 사진.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65세라는 나이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해서 앞으로 1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이라도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10년 후 105번째 생일을 맞아 10년 전 95세 때 왜 그때라도 무엇인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밥 세끼만 먹는 삶의 지겨움

제가 부모님들에게 자식 인생을 살지 말고 본인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면 이렇게들 항변합니다.
“신부님은 장가를 안 가서 우리 마음을 모릅니다. 아이 제대로 키우는 게 최고지, 무슨 자아실현입니까?”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 유일한 자아실현이고 자기 삶의 최고 목표라는 것입니다. 저의 최대 약점인 장가를 가지 않은 문제를 꼬집으면 그만 할 말이 없어지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이 인생 최대 목표이고, 자아실현의 전부라고 말한 분들이 60세가 되었을 때, 다 큰 자식들에게 듣게 될 말이 혹시 이런 말은 아닐까요?

“나는 이제 다 컸으니 더 이상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마세요. 제발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사세요.”

지난 세월 한 번도 자신만의 삶을 꿈꿔본 적 없는 엄마는 자식이 말하는 ‘엄마 인생’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만의 인생’이라는 의미를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고,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사는 게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그렇기에 요즘에는 95세가 아니라 60대 중반에 벌써 자신이 헛살았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샴푸를 다 쓰고 나면, 우리는 당연히 내다버립니다. 치약도 마지막까지 짜서 쓰고 나면 미련 없이 내다버립니다. 한 마디로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식을 키우는 목적이 다 끝나버린 60대 어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인생이라면 나머지 삶은 정말이지 무의미한 시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60세가 된 분들은 100세까지 살고, 50세가 된 분들은 110세까지 살게 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세계 최고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우리나라 형편에서, 현재 40세인 사람은 어쩌면 120세까지 장수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65세에 은퇴하는 분들이 남은 시간은 최소 50년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에 하는 일 없이 오로지 하루 세끼 밥만 축내고 산다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2020년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은 평균적으로 90세가 된다고 합니다. 2020년이라고 하면 먼발치에서 기다리는 숫자 같지만 불과 몇 년 뒤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 숫자도 얼마 안 있어 120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모두가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장수를 누리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노화는 얼굴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위와 장이 먼저 노쇠해진 다음에 얼굴의 피부가 처지기 시작합니다. 20대 때는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나오지 않습니다. 먹는 대로 소화가 잘되고 흡수도 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0대만 되면 위와 장이 노화되어 소화도 잘 안 되고 흡수도 원활치가 않습니다. 중년이 되면 예전에는 날씬하던 사람이 아이 하나 들어앉은 것처럼 배가 불룩 나오게 되는데,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뱃살이 잘 빠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세포기관의 하나로 ‘인체 세포발전소’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를 활용해 노화 방지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 약이 성공하여 너도나도 먹게 되면 70대에도 20대 청년 같은 위와 장을 유지시켜줘서 120세까지도 아무 탈 없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흔 살 먹은 할머니가 배꼽티를 입고 다니는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미래 세계에서 출산에 가장 적합한 나이를 70세로 예상합니다. 저는 이 말이 과학적으로 꽤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25세에 아이를 낳고 120세까지 산다면, 무려 95년의 여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행복한 처음 1년은 빼고, 2년째부터는 자식 때문에 94년을 속 썩으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식이 원수라는 말은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70세에 아이 낳고 30~40년 뒷바라지하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고령화 사회의 문제들이 발등의 불처럼 번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럽이나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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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
1992년 수원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생태마을 같은 친환경 농촌마을을 국내에 40군데, 지구촌에 40군데 건설하는 것이 꿈이다. 저서로 <사는 맛 사는 멋>,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등이 있으며, 최근 행복 공감 에세이 <삶 껴안기>를 출간했다.
이메일 : hcy25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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