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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가슴이 조여올때

이승연 2017. 02. 17
조회수 6228 추천수 0


두려움이 두려울 때

마주하고 말을 하게


작년 말, 체르노빌의 원전은 3만6천톤의 콘크리트와 철강으로 된 덮개로 씌워졌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종종, 2차 대전 중에 낙하됐지만 폭발하지 않고 묻혀있던 폭탄이 발견되어 주민들이 비상대피해야 합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문득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처치했다는 히드라가 생각났습니다. 히드라의 뿌리는 헤라클레스가 땅 속에 묻어버렸지만, 적당한 조건이 형성되면 다시 몇 백개의 뱀머리를 만들며 튀어나올 겁니다. 망가진 원전은 콘크리트 덮개로 씌워지긴 했지만 몇 천 년간 계속 방사물질을 유출할거고, 폭발하지 않은 폭탄은 하시라도 건드려지길 꿈꾸고 있었을테지요.

두려움을 대하는 우리 모습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몸은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필요한 호르몬들을 분비하면서 비상상태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두려움은 사실 생존에 필수적인 경보장치인 셈입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오는 실제적인 위험없이 우리 마음 안에서 만들어지는 두려움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봐, 상사에게서 비난을 받을까봐,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까봐, 무시당할까봐, 겁쟁이란 딱지를 받을까봐….두려움은 우리 안에서 낮은 소리로, 혹은 엄한 소리로 경고를 하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하는데, 두려움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우린 여러가지 방법으로 무시하고 눌러버립니다. 억압된 두려움은 히드라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지요.


두려움의 진짜 얼굴을 알아내는 길이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마주 하는 것입니다.


이스연.jpg


저의 내담자 중 30대 말인 한 남자는, 심장과 뇌신경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데도 가슴이 늘 조여드는 느낌이었고, 눈의 근육이 제멋대로 욱실거리고, 숨쉬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두렵고 불안하니까 잠을 잘 못자고, 그래서 피곤하니까 불안감은 더 늘어만 갔답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게 되었지요. 그 정체가 무엇일까? 조여드는 가슴에 무엇이 들어앉아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 보라 권유했습니다. 고슴도치같이 생긴 놈이 그가 늘 타고 다니는 자전거에 올라앉아 자기를 빤히 쳐다본다고요. 왜 나를 이렇게 따라다니느냐고 묻자 눈빛은 그새 슬픔으로 변하면서, 쉬고 싶다고 한답니다.

“아무것도 하지말고 나랑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

시작한 사업이 실패할까봐 그는 몸도 마음도 쉬어서는 않된다는 압박감을 '가슴'에 쥐고 있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더욱 일에 몰두했던 겁니다. 그 두려움을 느끼면 무너질 것 같아서지요. '고슴도치'가 원하는 대로 잠시잠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어루만져 주기 시작하자 가슴의 통증은 점차 사라졌고, 사업계획에서 있었던 오류도 찾아낼 수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은 아주 솔직합니다. 몸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두려움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조용한 자리를 내주면, 거기서 오히려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림 이승연(독일 심리치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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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어머니는 압록강가에서, 아버지는 동해바닷가 흥남에서, 이승연은 한강가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공업디자인과 도예를 전공하고 북독일 엘베강 하구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30여년 간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부터 심리치유사로 일한다. 독일인과 혼인해 성년이 된 딸이 하나 있다.
이메일 : myojilee@t-onlin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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