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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바꾼 17살 신비체험

성해영 2012. 02. 11
조회수 26299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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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  사진 <한겨레> 자료

 

우물 밖 세상 이야기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우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개구리 얘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다. 개구리의 딜레마는 실상 내가 처한 상황이다. 고민은 여전하다. 우물 밖 체험을 얘기하지 않고선 <엑스터시 이야기>를 꾸리는 게 불가능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면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현상 세계 너머에  참된 실재(reality)가 있다는 주장은 우습게 들릴 것이다. 게다가 생계 문제를 비롯한 개인적 곤란과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이유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저 세상 얘기는 자칫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쉽다. 유물론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에게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뜬 구름 잡는 말이거나, ‘종교’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심약한 사람들의 위안거리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영혼, 윤회, 깨달음, 신, 천국과 지옥 같은 단어들이 요즈음 얼마나 그 힘을 잃었는가. 그렇다고 이 모든 단어들이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지녔던 과거가 좋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화된 종교는 초월적 세계, 즉 우물 밖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발전시켜왔다. 긴 시간을 거쳐 전통으로 자리 잡은 종교들은 서로 대화하기 힘들어 보일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우물 밖 모습을 설명해 낸다. 그리고 전통으로 확립된 종교는 우물 밖 세계를 새롭게 설명하는 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진 듯하다. 전통의 힘은 무서우리만큼 강한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말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확인과 검증이 어렵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차원에 대한 설명이 전통으로 확립된 후에는 좀처럼 변화하기 힘들다.

 

내가 했던 우물 밖 세상의 얘기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름 힘들게 꺼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요컨대 우물 밖 세상은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간혹 대화가 진전되더라도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관심을 보인 사람들도 거개가 특정한 종교적 교리에 입각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었고, 체험 자체 보다는 그들이 지닌 전통적인 해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체험을 다루는 게 아직도 흔쾌하지는 않다. 우호적이지 않은 반응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이런 이야기들로 누군가를 왜 불쾌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조차 아직 잘 정리가 안 되었다.

글방을 열면 어떤가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고민을 했지만, 지난 두어 달은 그 고민이 더욱 커졌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우물 밖 세상’ 체험이 있은 후 이십하고도 팔 년이 흘렀다. 그 동안 그 체험은 내 삶의 오랜 화두였고, 그것을 이해하고 내 삶에 통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아직 그 체험으로부터 제대로 거리를 둘만한 중심을 확보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예전보다 그 체험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듯하다. 이 말은 그 체험을 기억하고 얘기하는 게 나를 예전만큼은 압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체험에 대한 기억이 퇴색된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중심 잡힌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주변의 반응에 조금은 덜 예민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뜸을 많이 들인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길 부탁드린다. 왜 이제야 그 얘기를 여러 사람 앞에서 시작하려는지 그 이유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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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사진 <한겨레> 자료

 

 

 

왜 우물 밖 세상 이야기를 하는가?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밝히겠지만 열일곱 살적 나를 찾아왔던 체험은 소위 ‘신비적 합일(mystical union)’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불현듯 나를 찾아와 내가 알던 모든 세계를 일거에 뒤집어 놓고 사라져 버린 그 체험은 나에게 거대한 빛과 거대한 그림자를 함께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체험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체험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체험 후 십삼 년이 지나고서야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점에서 그 체험은 ‘나의’ 체험이 아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한 적도 없었고, 체험이 주어진 이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정체를 알지도 못했으니까. 나이 서른에 탐구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그 체험이 왜 하필 그 무렵 찾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 알 수 있을까 마저도 불확실하다. 그러기에 그 체험은 나에게 여전히 거대한 수수께끼다.

 

하지만 의미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탐구 방법으로 종교학을 선택한 이후에 나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가장 우선은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기록했던 종교인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그 체험들을 연구한 많은 사람들과 내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준 분들에게서도 도움을 받았다. 나를 찾아온 그 체험을 연구하기 위해 진로를 바꾸어 종교학을 시작했지만, 대학은 이런 식의 실존적 접근 방식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난 지금에는 현대 학문의 그러한 태도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개인적 열망에 경도된 당시 나로서는 쉽사리 수용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유학은 나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신비주의의 비교연구와 종교심리학을 통해 내 체험을 폭 넓게 공부할 수 있었고, 두 분의 지도교수는 참으로 많은 격려를 해 주었다. 그 분들 덕택에 체험 자체에 경도되지 않고, 보다 큰 틀에서 내 경험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엑스터시 체험을 얘기하려는 이유는 바로 (오강남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내가 받았던 도움 때문이다. 신비체험으로 인해 많이 혼란스러웠던 나는 자신들의 체험을 용기 있게 밝혔던 사람들과 그 체험들을 연구한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었다. 이제 그 도움을 되돌려주려고 한다.

 

내가 처했던 상황이 기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종교가 없는 상태에서 체험이 있었고, 그 후로도 한참동안 그 의미를 전혀 몰랐던 탓에 나는 체험 그 자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달리 보면 나는 기존 종교의 해석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제도화된 종교는 한편으로 체험자에게 확고한 해석 체계를 제공하지만, 반면 체험 그 자체에 덜 충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불교는 신비적 합일 체험을 전통적 교리에 따라 깨달음이나 공(空)과 같은 개념으로, 기독교와 같은 유신론적 전통은 신(神)과의 결합으로 해석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체험자로 하여금 체험 자체의 의미를 꼼꼼하게 되짚게 하기 보다는 기존의 설명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또 해석의 다름 때문에 체험에 내포된 동질성을 간과할 위험마저도 있다. 그 점에서 특정한 해석 체계가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지내왔고, 나중에는 비교종교학이라는 비교의 태도를 선택한 나는 체험 자체에 보다 충실했다고 믿는다.

 

또한 그 체험은 내 삶을 이루는 모자이크의 중요한 조각이었다. 체험의 갑작스러움이나 그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특히 유일무이한 다종교 사회인 데다 동서양의 여러 종교 전통들이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만나는 우리나라에서, 종교들이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르고 같은지를 밝히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게다가 종교의 다름과 같음에 주목하는 것은 비교종교학의 핵심이 아니던가. 그 점에서 <엑스터시 이야기>는 신비주의를 전공한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여라 믿게 되었다. 원컨대 적은 수의 사람이나마 내 글을 통해 내가 받았던 같은 종류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덧붙여 조현 기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체험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해 온 오랜 세월동안 내 마음 속에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얘기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얘기의 성격상 먼저 꺼내 놓기가 쉽지 많았다. 그런 나에게 조기자는 멍석을 깔아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만큼은 앞으로 하게 될 내 이야기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리라고 감히 믿는다(^^).


 

 

두 세계를 살아가는 개구리

다시 개구리 얘기로 되돌아가 보자. 개구리 이야기는 일종의 상징이므로 매끈할 수만은 없다. 개구리가 본 우물 밖 세상이 진정 궁극적인 차원일까. 우물 밖의 세계가 또 다른 큰 우물 속에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물 밖 하늘은 개구리와 끝내 분리된 대상으로 존재할까. 또 우물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우물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징으로서 개구리 이야기는 이런 모든 질문에 깔끔하게 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부탁한다. 이런 질문들 역시 적절한 시점에 다루려 한다.

 

여하튼 양서류(兩棲類, amphibian)인 개구리는 <엑스터시 이야기>에 안성맞춤인 상징이다. 말 그대로 두 세계에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개구리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올챙이 적을 잊어버릴 정도로 모양을 완벽하게 바꾼다. 그 점에서 장자의 나비(胡蝶)보다도 훨씬 더 인간 존재를 잘 표현한다. 요컨대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조차 ‘물’과 ‘뭍’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을 변화(transformation)시키는 존재이다. 더구나 우물 밖 세상으로 탈출하는 지점에 이르러선 개구리는 인간의 궁극적인 변화 가능성도 포착하지 않는가 말이다.   

 

뜸을 많이 들여 죄송스럽다.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엑스터시나 신비주의는 오해를 많이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다. 그래서 논의를 위해서는 딛고 설 디딤돌을 충분히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리라 믿는다. 물론 처음 듣거나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너그럽게’ 읽어 주실 것과 안전벨트를 꽉 매 주시기를 새삼 부탁드린다.

자 개구리 여러분! 준비가 되었으면 우물 밖을 슬몃 엿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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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문화관광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고교 때 체험한 신비체험을 규명하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를 공부한 뒤’로 서울대 HK(인문한국) 교수로 있다. 종교체험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 탐구중이다. 저서로 오강남 교수와 함께 나눈 얘기 모음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가 있다.
이메일 : lohe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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