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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차와 새내기, 도시 농부 두 사람의 이야기

2012. 07. 17
조회수 5638 추천수 0
텃밭 박사 오병삼씨 "농사로 배운 그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청계산 옛골 600여 평의 텃밭.

마늘, 옥수수, 호박, 야콘, 고추, 들깨, 상추, 쑥갓, 치커리, 강낭콩, 감자, 고구마, 파……. 두 고랑, 세 고랑씩 심은 갖가지 작물들이 소담하게 크고 있었다. 밭 한 가운데는 들깻묵과 은행을 썩혀 두엄을 만드는 통이 자리잡고, 밭 한 켠의 울창한 느티나무와 새소리는 서울 도심에서 5분 남짓 벗어났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전원의 풍경을 그린다.
20120717_8.JPG » 청계산 옛골에 자리잡은 오병삼 씨 텃밭 ⓒ정현진 기자

서울대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회가 일곱 번째 졸업생을 낸 천주교 농부학교 3기(2008년) 수료자인 오병삼 씨가 지인 네 명과 함께 가꾸는 텃밭이다. 밭에 도착하자 마자 호박이며 고추를 따고, 이곳저곳을 살피는 그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농업 기사(현재의 농업 연구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농사에 익숙했고, 자연스레 농사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전원생활을 꿈꿨다. 내내 대도시에 살면서도 그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은퇴 아닌 은퇴를 하면서 오히려 기회를 찾았다.

7년여 전부터 귀촌을 준비하면서 청계산 인근에 텃밭 농사를 짓던 그는 우연히 주보를 통해 천주교 농부학교를 알게 됐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삽질이 서툴다며 가르쳐줄 정도로, 이런 저런 경험과 실패를 통해서 농사일을 배우던 그 때, 농부학교의 가르침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농부학교를 통해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노력도 대단했다. 농법을 배우기 위해 책 두 권이 낡도록 읽었고, 1년 두 번의 농사 계획 몇 년치가 노트에 빼곡했다.

20120717_9.JPG » 지난 몇 년간의 농사일지. 작물을 언제, 어떻게 심을지 배치도와 시기를 그려넣고, 수확물을 누구와 나눠먹을지도 적어뒀다. ⓒ정현진 기자

재미로 시작한 농사가 생각과 철학을 바꿔…
무엇보다 나눔의 재미,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 알게 돼

“농사를 지으면서 가족은 물론 이웃과 친지들 먹이는 재미도 대단합니다. 당뇨가 있는 처형을 위해서 얼마 전부터 야콘을 재배하지요. 친구들 만나서 농사 이야기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채소를 안 먹던 내가 이제는 식성도 바뀌고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 최대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요. 내가 적게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은 모든 일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힘든 일을 겪기도 했던 오병삼씨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고생스러웠지만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견뎠다. 은퇴하고 나서 나름대로 일을 찾은 것이 텃밭 농사였고, 지금은 농사가 삶의 기쁨이고 활력소다.

농부학교 강의 중에 들은 수녀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천여 평 농사를 지으면서 늘 작물과 대화한다는 수녀님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은 아직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돌보는 대로 잘 크는 채소를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며 웃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윤기가 나는 것이 꼭 웃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도 ‘아, 예쁘다’ 하면서 자연스레 웃음이 돌지요. 배추벌레가 배추 잎을 갉아 먹으면 제 몸도 같이 가렵고 아픈 것 같아요. 하나하나 잡아주고 말끔해진 모습을 보면 내 마음과 몸도 같이 시원해집니다.” 

오병삼씨는 재미와 운동 삼아 시작한 일이 자신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고백했다. 아직은 사정상 못하고 있지만 귀촌을 하게 되면 전기나 석유를 쓰는 대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호롱불을 켜며 살고 싶다고 했다. 닭도 풀어 키우고 싶은데, 직접 키운 닭을 어떻게 잡아먹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텃밭 농사는 삶의 대안일 뿐만 아니라 농촌 살리는 일

오병삼씨는 농촌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흉년이 들거나 얼마 전처럼 전기에 문제가 생겨도 직접 농사지은 먹을 것이 있고, 전기나 수도에 지장이 생겨도 농촌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삶의 철학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그는, 농부학교 후배들에게 “참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 지인들에게도 농사지을 것을 권하는 ‘농사 전도사’가 됐다.

그는 더 많은 이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가 농업을 버렸지만, 이제는 오히려 농업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기후변화 등 여러 이유로 더 이상 농산물을 사먹을 수 없을 때가 반드시 올 거예요. 도시에서도 함께 농사를 지어야 농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나만 봐도 노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까? 은퇴하고 집에만 있다 보면 미움을 받기 마련인데, 요즘은 수확물을 들고 집에 갈 때마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들어요. (웃음) 가정의 평화는 물론,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120717_10.JPG » 상추, 고추, 호박 등을 살피는 오병삼 씨의 손길은 어느 농부보다도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정현진 기자

상자 텃밭 1년차, 새내기 농부 박지영 씨 "상자 텃밭에서 제 마음도 자라요" 

자연을 참으로 좋아한다는 박지영 씨는 “가까운 미래에 도시를 떠나 자연 가까이에 살고자 하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귀농이라는 거창한 계획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으면 자연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천주교 농부학교를 알게 됐고, 여기서의 배움을 통해 막연했던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

“처음과는 달리 ‘귀농’에도 다가갈 수 있다는 용기도 생겼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다양한 측면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 지금 당장 농촌의 삶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삶에서 보다 환경을 생각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20120717_11.JPG » 상추와 토마토가 자라고 있는 상자 텃밭 ⓒ박지영

상자에 심은 작물들로 인해 접하는 새로운 세상 

박지영 씨는 그 출발점으로 상자 텃밭을 선택했다. 화초 키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도시 안에서 먹을거리를 키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농부학교를 통해 배운 것도 있고, 직접 먹을거리를 키운다는 보람도 느끼고 싶어 시작했다.

밭을 임대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접고, 두 부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상자를 구해 상추와 깻잎,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심었다. 처음에는 마음처럼 자라주지 않아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가문 날씨에 매일 물을 줘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신기했고 수확을 할 때의 기쁨도 컸다. 물론 사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직접 상자 텃밭을 시작하고 나니 이곳저곳 옥상에 채소를 기르고, 동네 자투리 땅에 작물을 심어놓은 이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웃의 작물과 비교도 하고, 좀 덜 큰다 싶으면 어른들에게 물어 비료나 거름을 주기도 하면서 정성을 들였다. 

시들었다가도 되살아나는 상추 잎에서 농부의 마음 깨달아
동네 공터에서 이웃과 더불어 텃밭 가꾸는 꿈 … 나눔과 공유 필요해

“처음이기도 하고, 많은 양을 키우는 것도 아니지만, 채소를 직접 가꾸면서 생각의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작은 상추 한 뿌리, 깻잎 하나에 마음이 가고, 시들었다가도 금새 살아나고 커가는 것을 보면서 새삼 농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박지영 씨는 “그동안 슈퍼에서 사먹으면 끝이었는데, 직접 길러보니 하나하나 정성들여 키웠을 농부들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더라”면서 “이 시대에 중요시되지 않는, 어쩌면 하찮게 보기까지 하는 농부들의 삶에 관해 우리가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작물마다 크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오이가 꽃피는 단계에서 벌레가 생기고 곧 죽어버렸는데,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며, 마치 각기 다른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울고 웃는 어머니처럼 말했다.

 20120717_12.JPG » 박지영 씨 부부가 처음 수확한 농산물 ⓒ박지영

박지영 씨는 텃밭을 가꾸는 데 있어서 ‘공유’의 중요성에 관해 말했다. 일단 시작하더라도 아는 것이 없다보니 시들거나 죽어가는 작물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는데, 주변의 경험을 가진 어른들은 금방 답을 주셨다면서 “텃밭에 대해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요즘 아파트 단지 안이나 옥상처럼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을 활용해, 이웃과 함께 텃밭을 가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런 생각이 모이면 농업을 살리자는 마음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농업이 살아야 온전한 먹을거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업학교를 통해 농촌, 농부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나와 상관없다고 여겼던 일이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 우리의 환경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며 "귀농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텃밭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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