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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미끼를 던져봐

김인숙 수녀 2012. 08. 03
조회수 10072 추천수 0
 라우라상.JPG 

“위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겸손한 생활 태도가 다른 친구들의 감이 되기에 이달의 라우라로 임명합니다.”
센터의 혜수가 ‘7월의 라우라’로 뽑혔다. 친구들과 모든 스텝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거룩한 상장을 받은 것이다. 빈혈이 심해 철분을 복용하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력한 매력 포인트는 창백한 낯빛이라 믿기에 일상의 어지러움을  감내하고 사는 혜수의 얼굴에 모처럼 연분홍빛이 돌았다. 

상식적인 잣대로 잰다면 혜수는 상을 받을 만한 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센터의 '라우라 상'은 상식의 기준을 파격적으로 깬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변화를 미리 바라보면서 혜수가 뭔가 된 것처럼 미끼를 던지는 상이라 하겠다. 

이 상의 색다른 점은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라우라 상'을 받고 싶다는 신청을 담당 스텝에게 아이 쪽에서 먼저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스텝 측의 선정이 있기 전에 아이들의 자발적 원의가 있고, 그 다음 순서로 스텝이 그 중에서 한 명을 뽑는다. 즉 아무리 스텝이 상을 주고 싶어도 그 아이의 원의가 없으면 안 된다. 또 이 상은 일종의 선행실천 상인데, 상을 받기 전에 선행을 해서가 아니라 상을 수여받고 난 다음 날부터 선행실천이 시작된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의무적으로.          
  
상장을 수여 받은 혜수는 6월에 라우라로 뽑혔던 정희로부터 선행 노트를 인계받았다. 오늘부터 혜수는 하루에 한 개 이상의 선행을 실천하고 노트에 기록할 것이다. 정희의 선행 기록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한 개도 두 개도 세 개도 부족하여 무려 매일 다섯 개 이상, 어느 날은 열 개도 써 놓았다. 

 1. 밥솥 불이 켜져 있길래 껐다. 
 2. 뒤엉킨 책장의 책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3. 장정리가 서툰 소희를 도와줌. 
 4. 엉켜있는 식탁 위의 냅킨을 잘 풀어 꽂았다. 
 5. 함께 외출한 선생님과 점심을 먹을 때 물을 떠나 드림. 
 6. 정리가 안 되어 있는 피아노 위 물건 정리.             

그날 실천한 선행은 자기만이 아는 거짓 없는 행위다. 정희의 선행을 읽으며 혜수는 약간 걱정은 되지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우선 기쁘다. 한 달이 지나면 '라우라 상' 담당 스텝은 혜수의 선행 노트를 검사한 후 갸륵한 실천에 칭찬 보너스를 주는 데 정말 작은 콩고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라우라 상'은 스스로 자진하여 하루하루 선을 실천하는 숙제를 하겠다는 공적인 약속이며 의무가 따르는 결코 마음 가볍지 않는 상이다. 그럼에도 6월의 라우라 정희는 마지막 소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라우라를 하면서 뭔가 바라지 않고 선행하는 법을 알았어요. 한 번쯤은 라우라, 괜찮아요. 가끔은 선행이 귀찮기도 했으나 막상 끝날 날이 오니까 좀 아쉽고, 뿌듯하네요. 그래두 한 번 라우라는 영원한 라우라니까…….  나름 괜찮았고, 앞으로도 작은 선행 자주 할 게요. 다음 라우라는 누구? 파이팅 하세요."  

소녀와 수녀.jpg

‘라우라’라는 명칭은 스페인 소녀 ‘라우라 비꾸냐’의 이름이다. 가톨릭교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다간 이 소녀를 성인(가톨릭교회에서 일정한 의식에 의하여 성덕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포한 사람) 품에 올려 모든 청소년들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라우라의 삶을 “안녕, 마인”이라는 소책자에 담아 아이들의 인성과 바른생활의 역할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책 속의 주인공 라우라는 편지 형식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친근하게 전해 준다. 센터에 입소한 아이들은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이 책을 모두 읽고 ‘라우라’에게 자신도 편지을 쓴다. 아이들은 답장을 쓸 때 ‘라우라’를 언니라고 부른다. 짧은 글 속에서 만난 ‘라우라’를 다정하게 부르며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슬픔을, 꼭 꼭 숨겨놓던 비밀까지 모두 들려준다. 
 “언니는 내 마음, 다 알고 있지?”하면서. 그 까닭은 언니의 삶이 너무나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나에게 미끼를 던져라

청소년은 굴러가는 나뭇잎이 재미있어 깔깔 웃다가도, 금방 나뭇잎이 외로워 보여 눈물을 떨구는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나이다. 또 이 시기는 선에 맛을 들이면 점점 선하게 되나, 악의 늪에 빠지면 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다. 벗어나자니 외롭고, 혼자라는 것이 무서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약처럼 뿌리치지 못한다. 
과거의 검은 훈장들을 달고 센터에 온 아이들에게 스텝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 '라우라 상' 또한 이런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상을 받았다는 영광, 선행을 하면서 맛보는 희열, 나도 뭔가 될성부른 인물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밖에 나가더라도 악의 거미줄에 걸려들게 할 때, 꽉 잡아줄 내공이 될 추억을 심어주고자 하는 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텝들의 은근한 권유가 필요하다. 
 “너 요즘 참 많이 변했어. '라우라 상', 신청해도 되겠는데?”
 “전 못해요.”
 “관심 없어요.”
반응은 다양하지만 상을 권하는 것이 자기를 인정해 주는 표시임을 아이들이 모를 리 없다. 혜수가 '라우라 상'을 받고 첫날 쓴 선행 기록을 살펴보자. 

 1. 민실 언니가 아파서 대신 설거지를 해 주었다. 
 2. 설거지 할 때 깜깜한 데서 하길래 불을 켜 주었다. 
 3. 세미나 시간에 엄청 어질러져 있는 신발을 정리했다. 
 4. 씨앗반 청소 때 의자를 모두 올려 주었다. 
 5. 내 청소 담당이 아닌 모임방을 전부 쓸었다.  

정말 놀라울 일이다. 한 때 자기 몸도 모자라 남을 때리고 부수고 던지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혜수의 마음 안에 이런 곱고 맑은 물이 담긴 호수가 있다는 것. 그 어떤 청소년에게서도 선한 마음을 캘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미리 믿는 것이다.   
  
선행노트.JPG

‘상’이란 공적인 인정이다. 상을 받은 혜수는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하루를 보낸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으며 혜수는 당황도 할 것이다. 라우라로 뽑히면 아이들은 은근이 시샘이 나서 슬쩍 건든다. 그러면서 그들의 선행이 진짜인가 나름, 확인 테스트를 한다. 계단을 올라가던 희재가 뒤를 돌아보며 혜수를 비꼰다.   
 “라우라 혜수-, 여기 종이 떨어졌네. 주워봐.”   
라우라였던 정희가 자신의 경험담을 토해 낸다. 
 “있잖아요. 제가 어느 날 막 화를 내고 있는데요. 은진이가 가까이 오더니 제 어깨에 손을 척 얹으면서 ‘언니, 라우라 맞아요? 그러니까 화내면 안 되잖아요.’ 하는 거예요. 정말 순간 열 받았는데 참았어요. 그리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상을 받은 아이는 그 위기에 빠지지 않고 잘 견딘다. 종잇장에 불과한 상의 위력은 대단하다. 테스트를 당하면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라우라’ 라는 작은 단체의 회원이 된 그들은 자연스럽게 센터의 숨은 리더가 되어 살아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변의 아이들도 ‘어, 나도 라우라 한 번 되어 봐?’하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혜수의 축하겸 모처럼 다섯 명의 라우라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 같이 손을 잡고 힘차게 ‘한 번 라우라은 영원한 라우라다’를 합창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1. 혜수에게 축하의 말 한 마디씩 짧게 돌아가면서 해 주세요. 

 은선: 겉모습만이 아닌 속모습까지 축하해. 혜수야! 
 혜지: 네가 라우라가 된 게 솔직히 의외였지만 열심히 잘 하자. 
 은주: 더 열심히 살겠다고 뽑힌 거니까, 예전 모습 버리고 더 잘 살았으면 좋겠어. 
 정희: 라우라로 잘 살면 지위도 오를거야. 축하해.       

2. 한 달 동안 라우라로 살면서 느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은선: 처음에는 선행노트가 의무감 같았어요. 그런데 한두 개 하니까 자연스러워졌고 지금은 라우라가 끝났어도 선행이 아주 자연스러워요.   

 혜지: 저는 올리바 수녀님의 권유로 라우라를 했어요. 그러나 어렵다 어렵다 해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은선이가 너무 자랑스럽고 부러워서 한거예요. 마칠 땐 끝이 좋지 않아서 라우라 언니껜 좀 미안했지만, 선행노트를 다 쓰니까 뿌듯하고 라우라 언니에게 고마웠어요.     

 은주: 저는 사실 처음엔 라우라를 불순하게 시작했어요. 내 자신에 대해 인정받고 싶고 선행도 의무감 반인 인정의 대가로 시작했어요. 처음 선행을 시작하면서 정말 작은 선행도 이렇게 힘든데 라우라 언니는 어떻게 하였을까? 어떻게 엄마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나? 나는 아닌데…. 많이 배웠어요. 무언가  바라고 하는 것 보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아요.    
 
 정희: 제가 솔직히 석 달 동안 계속 용기를 내어 라우라가 되겠다고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라우라가 되어서 처음에는 선행을 10가지도 넘게 했어요. 그런데 밤에 노트에 적으려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그러니까 그냥 한 거예요. 그래서 작은 일은 아예 쓰지 않고 인상 깊고 기억에 남은 것만 적었어요. 라우라가 되니까 점점 관심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혜수: 앞에 정희가 선행을 열 개나 써서 부담이 되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작은 선행을 다섯 개나 했고, 느낌은 성격을 고쳐서 생각과 말 하나 하나 모두를 바꿔야겠어요.  

7월의 라우라 혜수의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후 나는 라우라 회원들에게 5년 후, 몇 월 며칠 몇 시에 모두 다시 만나자는 타임머신을 땅에 묻자고 제안을 했더니 아이들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우리는 5년 후의 자기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내일 아침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의 타인머신 제안은 최대한 아이들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미끼이며, 아이들 편에서는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공적인 약속인 셈이다. 

 별이 되세요.jpg 
나는 요즘 다음 달, 8월의 라우라를 생각하며 날이 갈수록 살만 찌고 있는 미경이에게 미끼를 던진다. 
 “미경아, '라우라 상'에 도전해 봐.”
 “저요?”
 “그래, 한 번 해 봐, 상 한 번 타고 퇴소해야지. 넌 센터의 정의파잖아.”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는 한 마디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성공이다!

돈보스코 예방교육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청소년들 개인을, 책임 있는 인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단체 안에서 일할 기회를 주어 또래의 리더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는 청소년 양성에 있어 단체 활동이 꼭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돈보스코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 리더 그룹을 만들어 참된 지도자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애썼습니다. 희생과 봉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청소년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청소년 영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3S영성’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Study: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하라.
     *Smile: 항상 기쁘게 지내라.
     *Service: 이웃에게 봉사하라. 

센터의 '라우라 상' 담당 스텝에 의하면 현재 상을 받겠다고 신청한 아이들이 꽤 많아져서 이제는 누구를 줄 것인가가 최대의 고민이랍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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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 수녀이며 작가입니다. 지난 5월에 또 한 권의 책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를 냈습니다. 먼저 방황해본 10대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멘토링 책입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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