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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물이 아니다

조현 2011. 06. 03
조회수 1153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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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티븐 호킹이 갈 사후세계는?'이란 글 이후 휴심정에서 전개되는 사후세게 존재 여부에 대해 청주의 독자 정태욱씨가 `사후세계가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보내온 글입니다.


 

“인간은 생물이 아니다”



1. 생물에서 죽음의 의미


지구상에 죽음이 없는 생물 개체군이 있다.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은 성장을 하면 이등분으로 나뉘어져 번식됨으로 개체의 소멸(죽음)이 없이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간다.

이 덕분(?)에 아메바는 수십억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오늘날 까지도 아메바로 남아있다. 반면에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 박테리아는 초기 지구 생물시대에 호흡을 하는 다른 박테리아와 - 이들 조상의 일부가 - 우연히 사이좋게 키메라가 되어 오늘날 수많은 식물의 원조를 이루었다. 오늘날 식물의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에는 시아노박테리아의 핵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그 속에 시아노 박테리아의 DNA, RNA, 리보솜 등이 일부 남아있어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식물이 낮에는 광합성을 하고 밤에는 호흡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들 두 박테리아의 사이좋은 키메라에 의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눈에 바라보이는 푸른 숲은 사실 이 시아노 박테리아의 무수한 군상들인 것이다. 만약 이들 박테리아가 자신을 다른 개체에 기꺼이 내어주어(개체의 소멸) 키메라가 안 되고 아메바처럼 이등분만 계속했다면 오늘날 인간은 물론 지구상의 생물권은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손톱 넓이의 메모리칩 속에 2500장의 신문을 저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식물의 씨앗이 개체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씨앗은 바로 그 식물 자체가 압축된 개체인 것이다. 가을날 파란 하늘 아래 붉고, 흰 코스모스 꽃은 추운 겨울을 넘기기 위해 개체는 소멸(죽음)되고 씨앗으로 변신한다. 때로는 이들 둘이 다정하게 합작하여 분홍색 코스모스도 만들어낸다. 노란 민들레꽃은 산토끼가 맛있게 먹고 남을 만큼 넓은 공간으로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이 얼마나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가!

이곳에서 개체의 소멸(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며,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연어가 산란을 하고 죽어가는 희열에 찬 모습을 기억하는가? 화려하고 우아한 공작의 유희 속에서 우리는 그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를 연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멸종의 완성이며 생물진화의 꽃이다.


지구상의 150여만 생물종 중에 유독 인간만이 개체의 소멸(죽음)이 - 모두가 사라지는 - 두려움으로 인식하고 있다. 왜일까? 이것은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은 생물과는 다른 생물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은 아메바나 코스모스만도 못한 존재인가?


2. 생명 현상


인류가 아는 범위 내에서 우주의 시작은 약 137억 년 전 “빅뱅”에 의해서이다. 빛에너지가 일정공간을 차지하면 질량을 갖는 물질이 된다. 반면에 물질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E=mc² (E:에너지 m:질량 c:속도)로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들 두 현상이 일정영역 안에서 작용하여 생명을 생성시킨다. 생물에는 생명체(물질)와 의식(에너지)과 생명이 나타나며, 이들은 각각 독립성이며 순차성(변환성)이며 동시성을 갖는다. 무생물 현상에서는 물질과 에너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상호 변환현상이 있지만 생물 내에서처럼 동시 발현하는 생명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생물을 일컬어 물리법칙에서 독립된 물질 - 생명물질 -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물은 물질이 아닌 것이다.


생물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살아가기(생존, 성장, 번식)위해 외부로부터 끈임 없는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획득)이 필연인 절대 외부 의존성 존재물이다.


생물은 일정 영역 안에 물질과 에너지의 결합체로서 한계성(피조물)이며, 그로인해 독립성(종의 특성)이며, 선택의 자유가 있다. 또한 번식을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가며, 당대에 획득된 변이는 다음 대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개체의 소멸(죽음)을 통해 개체의 풍요성과 종의 다양성(생물진화)을 만들어낸다.


약 45억 년 전 지구가 생성된 이래 약 10억 년이 흐른 전후로 지구상에 최초로 생물이 출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생명이 물질에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는 인류의 의식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인식한 때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까운 근래에는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그는 생명의 유래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불용설”에 의해 찰스 다윈보다 50년 앞서 생물진화를 언급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해 생물진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인류는 인간은 인간일 뿐 생물의 한 종으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것도 꼬리 없는 원숭이가 인류의 가장 가까운 조상이라는 진화설에 많은 사람들이 사고의 길 위에서 휘청거렸었다.  진정 인간은 생물인가?


3. 생물진화의 패러다임


235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식물학’에서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 고 했다. 18세기 근대 과학의 여명이 오기까지 이 말은 식물학에서 절대 진리였다.


19세기 들어서 식물학자들은 ‘식물은 뿌리에 입이 있어 흙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흙속에 있는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선택 흡수하며 살아간다.’고 의기양양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틀렸다고 천명하였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을 비료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비약적인 농업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과학이 발달해지면서 20세기 식물학자들은 그 N, P, K ,Ca, B 등 식물의 양분이 바로 지각을 이루는 흙의 한 요소임을 알게 되자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옳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과 오늘날 식물학자들이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는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말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 의식의 크기는 아주 많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 개개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명발달에도 의식의 증대에 따라 같은 현상이라도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인간의 의식증대란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것처럼 단순히 뇌의 기억증대인가? 아니면 인간진화의 한 현상인가? 


약 35억년 생물의 진화사에서 현생인류는 진화의 정점에 서있다. 이 뜻은 인간의 생명(체) 안에 모든 생물의 구조와 기능이 압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아니 더 나아가 약137억 년 전 ‘빅뱅’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주의 모든 현상과 질서가 -축적된 존재, 소우주, 인간에게- 입력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과학은 있으니까 믿지만, 신앙은 믿으니까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신앙의 말이 허황된 헛소리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물론 우리는 신앙과 현상의 괴리를 종종 경험하기도 하지만, 과학은 인간의 한계성으로 우주를 인식하는 순차적인 의식이지만, 신앙은 인간에게 축적된 우주질서의 동시적인 의식이다. 또한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은 소우주이지 우주 전체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생물에서 의식은 에너지의 생명형태 이다. 생물의 구조와 기능의 복잡성은 바로 의식의 증대이며, 의식의 증대는 또한 생물의 복잡성이다. 이는 인류에게 아메바에서부터 모든 생물의 구조와 기능이 압축되어 있다는 뜻이며 의식 또한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 뜻은 인간은 생물진화의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진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계에서 유독 인간에게만 선과 악의 현상이 나타며, 인간이 종종 짐승만도 못하는 행동을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세포 생물에서 인류까지 진화의 고리는 생명물질의 덧붙임이며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명 에너지(의식)의 덧붙임을 뜻한다. 그래서 진화사에서 생명초기 시대에서는 키메라 현상에 의해 -약30억 년간- , 중기 시대에서는 DNA 변이를 통해 -약7억 년간 - , 인류에게 와서는 생명의식의 총합 - 정신 -에 의해서 진화의 패러다임이 달라진다. - 약5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바 원인”과 “북경 원인”은 오늘날 고인류학에서는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고 있는데,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약18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중요한 조상 인류로, 나중에 아시아로 이주해서 25만 년 전까지 존속했었다. 이들은 그 유명한 아슐리안 석기문화를 이룩했으며, 동굴에서 집단으로 거주하고 약40만 년 전부터 불을 이용했으며, 노약자나 병든 사람들을 돌본 흔적이 있으며, 내세를 인식하고 장례문화가 이었다는 흔적이 도처에 나타난다.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은 이들의 어느 시점에서 인류에게 정신이 출현했으리라 보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가 구 인류(네안테르타 인)와 현생 인류(크로마뇽 인)로 진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4. 정신과 내세의 의미


생물에서 의식이란 시공간 내의 순차적 인식이지만, 인류의 정신은 순차적이며 동시적 의식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은 아메바 의식일 수도 있고, 빅뱅에서부터 우주현상 의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와 성현들의 말씀이 동시적 의식으로 우주를 인식하여 신앙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인류에게 정신이 출현한 가장 큰 이유는 추측하건데, 인간은 물질과 에너지에 의한 생물진화의 막다른 골목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정신 안에 물질과 에너지와 생명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이들 또한 독립성이며 순차성이며 동시성이다. 그래서 인류에게 있어서 진화의 패러다임은 정신의 덧붙임을 뜻하며, 우리는 보통 이 현상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정신진화의 패러다임에 의해 인간에게 선과 악이 발생한다.


봄꽃은 키가 큰 수풀 속에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겨울추위가 풀리자마자 빨리 싹트고 꽃피어 씨앗을 바람에 날린다. 그때서야 다른 수풀이 기지개를 펴고 자라기 시작한다.


누구든지 내세를 깨달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그냥 살아도 인간은 개체가 소멸(죽음)되면 정신의 씨앗으로 변신된다. 씨앗의 크기와 건전성에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은 또 다른 차원의 시공간의 인격이어서 생물인 자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이 식물의 씨앗과 정신의 씨앗의 차이점이며 인간이 생물이 아닌 생물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생물이 아닌 것이다. 내세란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다음 현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내세이다. 부활한 예수의 모습에서, 환생한 붓다의 모습에서, 인류는 미래의 우리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많은 성현들과 철학자들이 말씀하신 우주와 인간의 현상을 생물학 언어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휴심정 개똥소똥방(well.hani.co.kr/free)에서는 사후세계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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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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