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매체
휴심정과 제휴를 맺은 자매매체의 뉴스를 전하는 마당입니다

회개 불러오는 것은 사랑뿐

2012. 12. 24
조회수 9488 추천수 0


18대 대선이 끝나고 이틀 뒤, 서울역에서 대전교도소를 향하던 길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도 황량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듯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고 빈자리 하나 없는 새벽 기차에는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대전 서부 외곽 지역에 있는 교도소에 도착하자 강창원 신부(대전교구 교정사목부)가 기자를 맞이했다. 강 신부와 함께 가방과 소지품을 맡기고 7개의 문을 통과해 들어간 곳에 그들이 있었다. 작은 방에서는 그간 전례부, 성가대, 안내 등으로 봉사를 해왔던 이들의 작은 송년회가 열리고 있었다. 두 명의 수녀와 봉사자 한 명, 그리고 20대에서 40대로 보이는 푸른 수의의 대정공소 신자 20여명. 이들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 분명한 낯선 이의 방문을 밝디 밝은 얼굴로 맞아 주었다. “OO이, 나갈 날이 얼마나 남았지?” “1년 6개월 남았습니다.” “남는 건 방에 들어가서 나눠먹자.” “이거 엄청 달아요.” “난 담백한 게 좋은데.”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 중 살인죄가 없는 사람은 4명 뿐,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교도소 손잡기-.jpg

▲ 21일 대전교도소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는 수감자들 ⓒ문양효숙 기자

강 신부는 “처음부터 저렇게 밝은 얼굴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처음 교도소에 들어오면 말기 암 환자들이 겪는 비슷한 심리상태를 겪는다. 절망, 포기, 그리고 분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1분만 빨랐어도 안 잡히는 건데’ 이렇게 생각한다. 10명 중 8명에서 9명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창원 신부, "원래의 영혼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교정 사목의 역할"


그러나 강 신부는 “예비자 교리와 상담을 통해 꾸준히 만나며 오랜 시간 신뢰를 갖고 기다리면 이들은 ‘원래의 맑은 영혼’으로 회복되어 간다”고 말했다. 학교나 사회생활의 경험이 적은 신자들은 교도소 안에서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돕고 기도해주며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이 주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기도 한다. 처음 대정 공소 신자들의 프로필을 보고 과거의 모습이 기도하는 지금의 모습과 연결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는 강 신부는 “교정사목에는 ‘따뜻한 가슴’과 ‘냉정한 이성’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수감자들이 다른 이의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 그들의 외롭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성탄 미사가 시작되자 미결수와 기결수 300여명이 교도관의 통제 아래에 줄을 맞춰 강당으로 들어온다. 오전부터 준비한 성가대의 성가가 울려 퍼지고 신자들은 제대 앞으로 나와 아기 예수님께 머리를 숙인다. 신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라며 가슴을 두드리고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교도소 장애인-.jpg




교도수 미사-.jpg

문양효숙 기자


이날 성탄미사에는 오랜 시간 이들과 함께 한 봉사자들도 있었다. 13년간 대전교도소를 방문하며 소공동체 모임과 간식 준비를 돕고 있는 법동성당 김인숙 씨는 자신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무서운 살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피해자 생각은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럴 때마다 김 씨는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카인도 지켜주셨다”고 답한다. 김 씨는 “변해가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는 기쁨에 교도소를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며 잊히지 않는 편지의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 한 수감자가 김 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나는 너무 가난했고 배고팠으며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면서 내가 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가슴이 아파서 울었다’고 적혀 있었다고. 김 씨는 “그 순간을 회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수감자 대부분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  죄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강창원 신부는 “수감자들은 고아였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그런 환경에 있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가능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사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그렇게 살았을까”라며 그들의 저지른 잘못의 근원을 되묻는다.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죄가 깊은 곳에 은총이 깊다고 했던가. 한 줌 자유가 없는 높은 담벼락 안의 깊은 은총을 담벼락 밖의 사람이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두렵지만 대정 공소에서의 ‘용서’와 ‘은총’은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다른 무게와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께서는 아무 희망도 없이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 빛을 알아본 이들은 오로지 들판의 목자들, 별을 보던 점성술사들뿐이었다. 절망의 시대에 구원의 빛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올 것이다. 그것은 보고 싶지도 않고 볼 수도 없었던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 실려, 존재함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미세하지만 위대한 힘에 실려, 그렇게 올 것이다. 대정 공소 신자들의 ‘희망’을 묻자 강 신부는 대답했다. “이들에게 희망은 너무 먼 일이다. 20대에 들어와서 40대에 나가는 이들 아닌가. 대신 이들은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이 안에서 자기의 존재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말이다.”


문양효숙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예수살이로, 소유에서 자유로예수살이로, 소유에서 자유로

    휴심정 | 2018. 03. 04

    예수살이 운동은 인간을 복원하는 운동

  • 가만히 들여다보세요가만히 들여다보세요

    휴심정 | 2018. 02. 01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 교회는 친제국 자본, 반사회공산주의인가교회는 친제국 자본, 반사회공산주의인가

    휴심정 | 2016. 12. 06

    19세기 말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에 가톨릭교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 비참하게 죽지않는 사람들비참하게 죽지않는 사람들

    휴심정 | 2016. 11. 15

    죽음에 관해 갈수록 더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분위기다.

  • 집을 사랑하는 남자집을 사랑하는 남자

    휴심정 | 2015. 09. 29

    집을 사랑하는 남자[생활의 발견] 광릉 송민석 씨 인터뷰<가톨릭뉴스 지금여기/뜻밖의 소식> 이희연 기자 2015.09.23   "조금씩 베란다를 물들이며 다가온 설핏한 붉은 노을을 벗 삼아 빨래를 걷는다. 운동을 좋아해 언제나 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