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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어본 지 오래 되었어요

서영남 2013. 01. 22
조회수 7768 추천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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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다섯 할아버지가 아침 일찍 국수집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혼자라고 합니다.  여인숙에 며칠 지내시고 계신답니다.  1991년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답니다.  오래 전에 이혼했고 자식이 하나 있지만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국수집 근처에 셋방이라도 얻으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을지 물어봅니다.  아마 가능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밥 구경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밥을 먹어본 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연거푸 두 번을 가득 밥을 담아 드십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이야기입니다.
 
우리 VIP 손님들의 처지도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밍밍하고 처량한 처지입니다.  이미 한 조각 희망마저 잃어버린 처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무엇이 빠졌길래 이렇게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살다가 잃어버린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제는 베로니카와 함께 인천의료원 72병동에 있는 이슬왕자를 면회하고 왔습니다.  72병동은 폐쇄병동입니다.  며칠 전에 정근 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걱정스런 말을 합니다.  이곳은 진짜 가족만 면회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우리가 진짜 가족이 아닌가요?  이슬왕자가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못합니다.  우리는 정근 씨와 진짜 가족이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토요일 오후에 면회 갈께요.  그랬습니다.
 
72병동의 초인종을 눌렀더니 수간호사께서 나오셨습니다.  정근씨 면회를 왔다고 하니까 가족만이 면회가 된다고 하다가 제 얼굴을 보곤 민들레국수집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면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의료원 72병동은 입원한 분들이 담배를 피울 수 없답니다.  그리고 당뇨식을 하기 떄문에 병원에서 주어지는 음식 외에는 먹지를 못합니다.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밥을 아주 조금만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당 수치가 아주 좋아졌다고 자랑을 합니다.
 
치료가 끝나고 퇴원하면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병훈 씨와 함께 살도록 준비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아주 마음 편안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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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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