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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호연지기

이남곡 2013.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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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훈 사진-봄-.jpg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지만, 봄을 이기진 못한다.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18일)를 앞두고, 16일 오후 강원도 동해시 한 야산에서 복수초가

얼음을 뚫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동해/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4절기 가운데, 나는 동지와 입춘이 제일 반갑다. 특히 산골에 살다보니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 그리고 봄 소식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입춘(立春)이 제일 좋다. 산업화된 도시문화 속에서는 실감이 안 가겠지만,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대문(大門) 마다 정성껏 써붙이고 봄을 맞으려한 농경사회 선조들의 심정이 농촌에 살다보면 느껴져 온다.


자연은 어김없이 생명의 기운을 온 대지 위에 불어넣는다.  호연지기(浩然之氣)다! 동물과 식물은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이 호연지기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무엇이 우리를 웅크리게 하고, 힘들게 하고, 좀스럽게 할까?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식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의식을 비약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성인들이 도달한 세계며, 현대과학이 증명해가는 세계며, 인간의 사회적 진보가 뒷받침하는 세계며, 또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우주자연과 감응하는 진정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닐까!

나는 이번 입춘을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The Power of Now'를 읽으면서 맞이하고 있다.


“마음에 지배되지 말고, 마음을 사용하라!”


여기서 마음은 ‘에고’다. 이 마음은 과거와 미래로만 연결되어 있다. 무수한 집착으로... 에고는 현재를 살지 못한다.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마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관찰하는 자가 되면 마음은 힘이 약화됩니다. 마음에서 물러난 에너지는 ‘현존’으로 변화합니다. 


‘지금’ 속으로 들어갑니다. 현실에 집중할 때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사용하는 능력이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향상됩니다. 마음에 지배되지 않고, 마음을 사용할 수 있을 때 더 날카롭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논어의 다음 구절을 생각게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마침내 밝혀 보리라.”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子罕 第九)>


여기서 무지(無知)가 톨레가 말하는 마음, 즉 에고가 아닐까? 에고인 마음은 사실과는 별개이며, 사실을 알 수도 접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자는 모르는데서 주저하지 않고 진실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그 출발점이 텅빈 곳(空空)이다. 이 텅빈 곳이 톨레가 말하는 ‘시간 없음’의 차원, 즉 ‘지금’이 아닐까!


공자는 그 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자의 특성이다. 톨레는 예수와 석가의 말을 빌려 그 다음 세계, 순수의식, 현시되지 않은 세계를 이야기한다. 공자는 추상적으로 비추이는 말을 절제한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공자를 네가지를 끊은 사람(毋意, 毋必, 毋固, 毋我)으로 묘사하는 걸로 미루어 보면 그는 에고를 넘어 진실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이지 않을까? 물론 알 수 없지만...


톨레가 ‘지금’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강조하는 것은 ‘받아들임(순응)’과 ‘내맡김’이다.


만일 ‘지금 여기’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모든 내부 저항을 떨쳐버리고 ‘지금 여기’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불행과 원망과 자기연민을 사랑하는 거짓 자아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내맡김’이라고 합니다. ‘내맡김’이란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저항은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당신 자신, 그리고 주변의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차단시킵니다. 그래서 에고가 의존하고 있는 분리감을 강화합니다.


반면 ‘내맡김’의 상태 속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의 동일시가 깨어지고, 어느 정도 ‘투명’해 지면서 현시되지 않은 세계가 당신에게 빛을 비추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부작용, 갈등, 고통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과거를 녹여 버릴 만큼, 빛이 어듬을 몰아낼 만큼 여러분이 충분히 현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완전히 있지 못합니다. 틀에 박힌 마음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되어 있다.”

증자가 말했다. 

“예, 그러합니다.”

공자가 나가시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니라.”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 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里仁 第四)>


공자의 서(恕)와 대천명(待天命)이 톨레의 ‘받아들임’과 ‘내맡김’과 통한다고 생각된다.

서(恕)는 충(忠)과 짝을 이루고, 대천명(待天命)은 진인사(盡人事)와 짝을 이룬다.

톨레가 말한 내맡김의 위대한 힘도 이것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14세기의 신학자 에크하르트가 거룩함을 ‘자발성, 전념, 기쁨’으로 정의 한 것이 충(忠)의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1세기의 에크하르트도 같은 말을 하는구나!


공포와 분노와 증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공자와 톨레의 만남이 호연지기로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왕 나온 김에 맹자와 원효의 호연지기를 함께 맛보고 싶다.


“천하의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간다.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그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고 빈천도 그 지조를 바꾸지 못하며 위무도 그 뜻을 꺾지 못한다.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 不能淫 貧賤 不能移 威武 不能屈 此之謂大丈夫) <맹자 등문공 장구 하(滕文公 章句 下)>


"펼침과 합함이 자재하고(開合自在) 주장하고 반대함이 걸림이 없으며(立破無碍), 펼쳐도 번잡하지 아니하고 합하여도 좁지 아니하며 주장하여도 걸림이 없고 반대하여도 잃음이 없는 것이 일심(一心)이다."

(以開合自在 立破無碍 開以不繁 合以不狹 立以無碍 破以無失)


7세기의 원효의 사상이 21세기에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 때는 마음의 선각자들이 자각하는 세계였는데, 이제는 세계 그 자체가 진화해야할 목표로 보이는데 까지왔다. 두 문(門), 종교와 과학, 주체적 자각과 사회적 실천, 마음과 현상이 서로 어울려 개합자재(開合自在)하고 입파무애(立破無碍)한 세계를 향해 세상은 나아가고 있구나! 산개(散開)하면 개인이고, 보합(補合)하면 공동체다. 지금은 산개하여 개인이 해방되는 시기이지만 무질서와 혼란으로 번잡하지 않고, 보합하면 공동체이지만 서로 침범하고 간섭하는 좁은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세우거나(立) 무엇을 파기하여도(破) 사리사욕에서가 아니라 공의(公意)공욕(公慾)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 '내' 생각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아서 주장하여도 걸림이 없고, 반대하여도 잃음이 없는 무타협(無妥協)의 세계에 노닌다. 


이러한 마음,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진정한 호연지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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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서울대 법대 재학 때부터 민주화에 투신 4년간 징역을 살고 나온 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으로 진리를 향한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토회 불교사회연구소장을 거쳐 경기도 화성 야마기기마을공동체에 살았으며, 2004년부터 전북 장수의 산골로 이주해 농사를 짓고 된장·고추장 등을 담그며 산다. 서울에서 매주 ‘논어 읽기’ 모임을 이끈다.
이메일 : namgo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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