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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참모습은

이인우 2013.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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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은 공자.jpg

제자들과 함께 유랑하는 공자.  사진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에서




[소설 논어 명장면]6회/군자의 참모습



 吾道 一以貫之

 (오도 일이관지)

 -<논어> ‘이인’편 15장

 

 나의 도는 하나로 모두를 꿰뚫을 뿐이다.


 

 

 1. 외뿔소도 호랑이도 아니건만


 서기전 489년, 공자가 열국을 주유한 지 8년째 되던 해. 초나라 소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공자 일행은 이레 동안 들판을 헤매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고난을 겪는다. 공자는 그런 곤경 속에서도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타며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제자들은 지치고 병이 나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수행자들 사이에서 공자에 대한 미묘한 불신감이 흘렀다. 자로는 화가 난 나머지 “군자가 이런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하며 스승에게 대들었고, 공자는 “군자는 원래 궁한 자이다”(君子固窮, ‘위령공’편 1장①)라는 유명한 말씀으로 제자들을 달랬다. 이 위기에서 공자 일행이 벗어난 것은 자공의 수완 덕분이었다. 식량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간 자공이 거짓말처럼 쌀을 구해 나타난 것이다.


 자공의 활약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난 공자와 제자들은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공자가 강론을 예고하신 것이다. 공자의 이날 강론은 훗날 유가들 사이에서 공자 정신의 불굴성과 위대성을 증언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역사가의 엄정함과 작가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교직한 드라마틱한 필체로 유명한 사마천이 이 전설적 이야기가 지닌 불멸성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수백 년 뒤의 사람임에도 <사기> ‘공자세가’에서 마치 본 사람처럼 이날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현장에서 직접 강론을 들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아무튼 이 사건은 유가들이 스승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불후의 전설이 됐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행한 산상수훈(山上垂訓)이나‘오병이어(五餠二魚②)의 기적’처럼 말이다. 그날 내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뜻 모를 불안과 초조감을 연륜의 힘으로 제어하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그날 공자께서는 자신의 강론이 지니게될 거대한 역사성을 의식했는지 모른다고. 물론 한갓 가정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날 강론은 문답식으로 진행됐다. 사마천은 공자와 제자들이 각각 따로 문답한 것으로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언덕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둘러앉은 가운데 이뤄졌다. 강론에 참석한 사람들은 문답을 나눈 자로, 자공, 안연뿐 아니라 재여를 비롯해 몇몇 제자들이 더 있었다. 우리 짐꾼들도 장소가 노천인 덕분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이날의 강론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나 이생이 있으니 ‘거의’라고 해야 할까? 청강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참석자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2. 깊은 숲 속의 향기로운 난초


 공자가 강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행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을 맞추며 말씀하셨다. 

 “들판을 걸으며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보겠느냐?”

 나는 공자의 지명을 받은 것이 너무 흥분되어 잠시 어쩔 줄 모르다가 배불뚝이 채인을 함께 일으켜 세워 진나라 짐꾼들에게 배운 노래를 불렀다.

 

 어느 풀인들 시들지 않고 배겨날까 

 어느 날인들 우리 행군 멈출 날 있을까

 슬프다 우리 신세 사람 대접 못 받네.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건만

 왜 들판을 헤매이는가

 슬프다 우리 신세 아침저녁 쉴 틈이 없네.

 (<시경> ‘소아’편③)

 

 노래를 마치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시던 공자가 제자 중 가장 연장자인 자로에게 먼저 말했다.

 “우리도 저 노래처럼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匪시(외뿔소 시)匪虎 率彼曠野). 왜 이런 고생을 하는가? 과연 나의 도(道)가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뭔가 잘못해서인가? 유야, 어째서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④


 자로가 대답한다. 

 “제가 궁금한 점도 그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덕(德)을 쌓고 의(義)를 품은 지 오래십니다. 곤경에 처할 때도 의연히 인(仁)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진나라, 채나라에 여러 상하 대신들이 있음에도 선이 닿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맹자> 제7편 하 18장⑤) 우리가 아직 인의 경지에 들지 못해서인가요, 지(知)의 경지에도 들지 못해서인가요? 사람들이 우리의 갈 길을 이처럼 가로막으니 말입니다.”


 공자가 탄식하며 말한다.“아, 실로 덕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⑥”

 “유야, 내 말해 주마, 그런 것이 아니다. 네 말대로 인하다고 해서 반드시 남이 믿어준다면 백이와 숙제(주나라 귀족 형제. 무왕이 신하된 자로서 은나라 주왕을 토멸하는 데 반대했다)가 수양산에서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네 말대로 지혜로운 자라고 해서 반드시 남에게 인정받는다면 왕자 비간(은나라 주왕의 숙부. 주왕의 폭정을 직간하다 죽임을 당했다)이 심장이 갈라지는 화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사기> ‘공자세가’⑦)


 공자가 이어 모두를 향해 말했다.

 “군자로서 학식이 넓고 뜻이 깊음에도 시대를 만나지 못한 이가 많다. 어찌 홀로 나뿐이겠느냐? 깊은 숲 속의 난초가 보아주는 이가 없다고 해서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군자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다가 곤궁에 빠진다 해도 절의를 바꾸지 않는 법이다. 시대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시운(時運)이며,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군자는 오직 쉼 없이 자신을 닦으며 때를 기다리는 자이다.”(<순자> ‘유좌’편⑧)

 


 3. 도(道)를 약간 낮추신다면


 공자가 자공을 돌아보며 같은 질문을 한다.

 “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의 도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자공이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선생님의 도는 지극히 원대하여 세상의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선생님께서 약간 도를 낮추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공자가 한동안 말 없이 자공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군자는 본래 궁하다’고 했다. 사야, 내가 너희들보다 많이 배웠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냐?”

 자공이 공손하게 답한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아니라면 감히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다.


 “사야, 네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도란 한 쪽을 낮추어 다른 쪽을 높이고, 하나를 내주어 다른 하나를 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도는 하나로 모두를 꿰뚫을 뿐이다.”(予一以貫之(‘위령공’편 2장), 吾道一以貫之(‘이인’편 15장)⑨)


 공자가 이어 모두를 둘러보며 말한다.

 “훌륭한 농부가 씨 뿌리기를 잘 한다고 해서 수확까지 잘되리란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다. 훌륭한 기술자가 물건을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항상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군자가 아무리 그 도를 잘 닦아 기강과 계통을 세운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도를 부지런히 닦지도 않은 채, 스스로 도를 낮추어 세상에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래서는 그 생각이 원대해질 수 없고, 그 뜻이 넓어질 수 없는 것이다.”(<사기> ‘공자세가’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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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생전에 올랐던 중국 산둥성 태산.  사진 조현



 4.보라, 안씨의 아들을


 질문이 마침내 안연에게 돌아왔다. 우리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회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의 뜻을 듣고 싶구나.”


  안연이 묵상하듯 앉아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투다.

 “선생님의 도는 지극히 원대합니다. 천하의 그 누구도 능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이미 도를 추구하고 행하고 계신데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은들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군자의 참모습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도가 닦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치욕이요, 도덕이 높은 인재를 쓰지 않는 것은 그 나라의 수치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해서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군자의 참모습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입니다! ”


 안연이 말을 마치자 공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보아라, 여기 안씨의 아들이 있다! 만약 회가 돈을 많이 번다면, 나는 그의 집사라도 되고 싶구나.”(<사기> ‘공자세가’⑪) 

 


 5. 한겨울에 소나무가 푸르른 것은


  나와 몇몇 제자들은 강론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더 문답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화제는 단연 안연의 대답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공자와 안연의 문답을 들으며 차오르는 희열로 가슴이 벅찼는데, 정작 안연은 스승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져 짐꾼들까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안연의 답변이야말로 공자가 이 굴욕의 고난 속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자, 자신이 직접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보아라, 여기 진정한 군자들이 있다!”라고. 안연은 공자에게 제자이기 이전에 같은 수행의 길을 가는 도반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안연이 저 높은 곳에서 스승과 함께 노니는 경지를 보여주었다면, 자로는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단순 직정한 사람답게 자로의 사고 회로는 늘 선악의 인과관계를 축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자로의 울분에 더욱 공감했다. 하늘에 도가 있다면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자는 벌을 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덕(德)과 복(福)은 반드시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바로 그러하기에 천명(天命)이 존재한다는 걸 공자는 잘 알고 있었다. 

 

 자로야, 천명과 시운은 사람의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군자는 학문을 함에 있어 배부르게 먹는 것과 안락한 거처를 바라지 않는다.(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학이’편 14장⑫) 군자는 그러므로 보답을 바라고 인의(仁義)를 행하는 자가 아니다. 먼저 실천하고 요행히 보답이 주어진다면 따를 뿐이다.(仁者 先難而後獲, ‘옹야’편 20장⑬) 인격을 닦는 목적이 명성이나 부에 있지 않을 때, 그 도는 비로소 도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리하여 군자는 한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과 같다. 날이 추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들지 않는 기상을 우리가 알게 되지 않더냐?(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자한’편 27장⑭) 


 자공의 질문이야말로 다들 하고 싶었으되 감히 꺼내지 못한 우문이었다. 불굴의 철인에게 역사상 가장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는 악역을 맡았다. 그러므로 자공이 가장 용감한 질문자였다. ‘도를 약간만 낮추면 안 되겠습니까?’ 참으로 절묘한 질문이 아닌가? 명민한 현실주의자 자공은 공자의 이상이 이 비루한 세상에서는 실현될 가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공은 그래서 평소에도 이 질문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선생님은 그저 모른 척하십시오. 눈높이를 낮추는 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현실 감각 하나는 끝내주는 이 자공이 선생님을 중원 제일의 히트 상품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런 자공의 비즈니스 감각을 훤히 꿰뚫어보는 이가 또 누구인가? 공자는 ‘하늘을 상대로 한 장사꾼’이다. 그랬기에 ‘지상의 장사꾼’인 자공의 제안을 웃으며 일축할 수 있었다. 공자가 일찍이 자공류의 타협안을 수용했다면 일세의 명재상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만세의 스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자에게 현실타협론은 강물에 떠가는 나뭇잎 위에서 춤추는 개미에 불과한 것이었다.

 


  6. 그때 그들은 울었을까


 감흥이 지나가자,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공자가 안연을 칭찬하며 한 말이 눌러앉아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안연이 돈을 많이 벌면 그의 금고지기가 되겠다는 말씀은 정말 유머러스한 극찬이지만, 정작 그 말뜻이 정확히 가슴에 와닿지 않아서이다. 단표누항(簞瓢陋巷,‘옹야’편 9장⑮)의 안연은 팔자에 없는 부자의 길을 획책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을 전제로 그 사람의 집사가 되겠다니,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 반어법이나 역설일까? 이를테면, 결코 지옥에 갈 리는 없지만, 너라면 함께 갈 수 있다. 지옥에 가서도 내가 너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다. 뭐 그런 어버이의 마음?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회야, 너의 창고에 도가 가득 쌓인다면 나는 그 도를 관리하는 창고지기가 되어도 좋으리…. 이런 비유는 너무 뻔한가? 허허, 하필이면 왜 부자였을까? 아무래도 이건 공자가 특별히 나에게만 남겨주신 숙제인가 보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혼자 실없이 웃다가 요기(尿氣)를 풀러 밖으로 나왔다. 어둠 저 편에 긴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공자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안연이 함께 있었다.


 광활한 평원의 검은 반구(半球)에 은하수가 가득한 밤이었다.

 “회야, 왜 자지 않고 나왔느냐?”

 “선생님이 겪으신 고초를 생각하니 마음이 분합니다.”

 안연은 어제 거문고를 켜며 몰래 눈물을 흘리던 공자의 모습이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박혀버린 모양이다.

 공자는 자신을 절대적 표상으로 여기는 순결한 정신의 안연이 무척 사랑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됐다.

 

 회는 이상이 높으나 현실을 모른다…

 이 혼탁한 세상과 부대끼다 상처투성이가 되면 어쩌나…

 

 어둠 속에서 공자의 말이 들렸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마치 거대한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웅혼했다.

 “회야, 나는 하늘이 주는 괴로움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나에게 주는 이 행복과 기쁨은 외면하기 어렵구나. 고맙다. 그러나 회야, 너는 지금 나의 슬픔을 너무 애닯게만 여기지 말아라. 하늘이 주는 시련을 참을 수 있는 자라면 사람이 주는 기쁨과 슬픔도 기꺼이 초월할 수 있어야 하리니. 회야, 너는 나를 그렇게 여기거라.”

 

 그 목소리는 마치 거짓 없는 삶을 살아온 가난한 아버지가 이제 막 거친 세상으로 나가려는 아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들아, 너는 이 아비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안연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흐느낌 같은 바람소리만이 어두운 밤공기를 타고 들판으로 퍼져나갈 뿐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숲 속에 남겨둔 채 최대한 인기척을 감추고 조용히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그때 나도 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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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공자가 올랐던 것을 기념하는 비석.  사진 조현



 7. 지금 노래를 부르는 이는 누구인가


 약 200년 뒤에 쓰인 <장자>(莊子)에는 이날 두 사람의 심야 대화가 묘한 형태로 남았다. 기자(記者)가 장주(莊周, 기원전 365?~270?) 자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가를 조롱하는 빼어난 우언(寓言)으로 곧잘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했던 장주 일파가 왜 이날의 대화를 자기들의 경전에 남겼는지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무튼 장자의 우언들이 유파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교묘한 의미 조작에 불과하다고 해도, 적어도 이날의 묘사만큼은 나, 이생이 목격한 장면의 진실과 무엇인가 통하는 맥이 있었다. 


아, 그때 나 말고 또 누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그때 내가 그 은자를 만날 수 있었다면 내 이 기록은 얼마나 더 풍요로워졌을까! 

 

 ‘은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공자는 안연이 자신을 무척 사랑한 나머지 슬퍼할까 걱정되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회야! 하늘이 주는 고난쯤이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주는 은혜와 기쁨은 견디기 어렵구나. 회야, 잊지 마라. 세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하늘과 사람은 하나일 뿐이니, 지금 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가 누구이겠느냐?”(回, 无受天損易 无受人益難, 无始而非卒也 人與天一也. 夫今之歌者其誰乎? <장자> 20편 ‘산목’(16))   


 子路問義 子貢問智 顔淵問仁(자로문의 자공문지 안연문인)

 夜深天漢 孔子不眠 流星歸天(야심천한 공자불면 유성귀천)

  

 자로는 정의를 묻고, 자공은 지혜를 묻고, 안연은 인을 물었다.

 밤은 깊어 별은 찬란한데 공자는 잠 못 이루고,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끌며 하늘로 돌아갔다.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논어> 원문의 한글 번역은 <논어집주>(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편)와 <안티쿠스 클래식6-논어>(한필훈 옮김)를 나란히 싣는다. 각각 신구 번역문의 좋은 사례로 생각되어서이다. 표기는 집(논어집주)과 한(한필훈 논어)으로 한다. 이와 다른 해석을 실을 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힐 것이다.


   ***<논어>는 편명만 표시하고, 그 외의 문헌은 책명을 밝혔다.

   

 ①위령공 편 1장

  子路온(성낼 온)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집-자로가 성난 얼굴로 (공자를) 뵙고,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진실로 궁한 것이니,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

  한-자로가 화난 얼굴로 공자에게 따졌다. “군자도 이렇게 곤궁한 지경에 빠집니까?”“군자라야 이런 어려움을 굳게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소인은 곤궁해지면 탈선하고 만다.”

 

 ② 그리스도교 <신약> 마태복음 5~7장, 14장

  산상수훈은 예수가 선교활동 초기에 갈릴리의 작은 언덕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행한 설교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인 ‘주기도문’이 여기서 유래했다. 오병이어는 예수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여명을 먹인‘기적’을 말한다.


 ③ <시경>(조두현 역해) 소아(小雅)편‘하초불황’(何草不黃:풀은 시드네)

  (상략)何草不玄 何人不矜 哀我征夫 獨爲匪民. 匪시匪虎 率彼曠野 哀我征夫 朝夕不暇.(하략)

  어느 풀인들 마르지 않는가, 어느 누가 홀아비 아니랴, 슬프도다 우리 역군 사람대접 못받네. 들소도 아니고 범도 아니건만 넓은 들을 헤매이네, 슬프도다 우리 역군 아침저녁 쉴 틈이 없네.

 

 ④<사기>(김원중 옮김) 공자세가

 孔子知弟子有온心 乃召子路而問曰, 詩云 匪시匪虎 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爲於此?  

 공자는 제자들이 언짢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는 곧 자로를 불러들였다.“<시경>에 말하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저 들판에서 헤매고 있구나.’라고 했으니, 나의 도-주장-에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⑤<맹자>(범선균 해역) 제7편 하 18장

  孟子曰 君子之액(좁을 액)於陳蔡之間 無上下之交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진나라와 채나라의 어간에서 곤욕을 당한신 것은 위아래로 접촉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⑥위령공 편 3장

 子曰 由 知德者鮮矣.

 집-공자께서 말씀하셨다.“유야! 덕을 아는 자가 드문 것이다.”

 한-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도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⑦<사기> 공자세가

 子路曰 意者吾未仁邪? 人之不我信也. 意者吾未知邪? 人之不我行也. 孔子曰 有是乎! 由, 譬使仁者而必信, 安有伯夷叔齊? 使知者而必行 安有王子比干?

 자로가 말했다. “아마도 우리가 어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신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가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공자가 말했다.“이 정도란 말인가! 유야, 만약에 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게 한다면 어찌하여 백이와 숙제같이 굶어 죽는 일이 있었겠느냐? 또 만약에 지혜로운 사람으로 반드시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어찌 왕자 비간처럼 심장을 도려내는 일이 있었겠느냐?”

 

 ⑧<순자>(이지한 해역) 제20권 ‘유좌’편 

 (상략) 君子博學深謀不遇時者多矣. 由是觀之 不遇世者衆矣 何獨丘也哉. 且夫芷蘭生於深林 非以無人而不芳. 君子之學 非爲通也 爲窮而不困 憂而意不衰也 知禍福終始而心


不惑也. 夫賢不肖者 材也 爲不爲者 人也. 遇不遇者 時也 死生者 命也 (중략) 故君子博學深謀修身端行以俟其時. 

 군자가 널리 배우고 깊이 꾀하는데 시운을 만나지 못한 자는 많이 있다. 이러한 것으로 관찰하건대 세상을 만나지 못한 자는 많을텐데 어찌 홀로 나뿐이겠느냐! 향기를 뿜는 난초는 깊은 숲에서 자라는데 사람이 없다고 향기를 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통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궁색하더라도 곤궁하지 않고 근심해도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으며 재앙이나 복의 끝과 시작을 알아도 마음에 의혹을 갖지 않는 것이다. 대저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은 재질이고, 하고 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시대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시운이며,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중략)그러므로 군자는 널리 배우고 깊이 생각하고 몸을 닦고 행동을 단정히 

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⑨위령공편 2장

 子曰, 賜也,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집-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느냐?”하시자, 자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이다.”


 한-공자가 자공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가 박식하여 모든 이치를 안다고 생각하느냐?”“예.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아니다. 나는 하나의 도로 모든 일을 꿰뚫을 뿐이다.”


 *이인편 15장에는 공자가 증자에게 한 같은 말이 실려 있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爲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집-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아! 우리 도는 한 가지 리(理)가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하시니, 증자께서 “예”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물으니, 증자께서 대답하셨다. “부자의 도는 충과 서일 뿐입니다.” 


 한- 공자가 말하였다. “삼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증자가 말하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공자가 밖으로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다. “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입니다.”

 

 ⑩<사기> 공자세가

  子貢曰 夫子之道至大也 故天下莫能容夫子. 夫子蓋少貶焉? 孔子曰 賜 良農能稼而不能爲장(벼 화+담장 장), 良工能巧而不能爲順. 君子能脩其道,綱而紀之,統而理之,而不能爲容. 今爾不脩爾道而求爲容. 賜, 而志不遠矣!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원대하기에 천하의 그 누구도 선생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도를 약간 낮추지 않습니까?”공자가 말했다. “사야, 훌륭한 농부가 비록 씨 뿌리기에 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잘 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장인이 비록 정교한 솜씨를 가졌을 지라도 반드시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그 도를 잘 닦아서 기강을 세워 그것을 다루고 계통을 세워 그것을 다스리더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지금 너는 너의 도는 닦지 않고서, 스스로의 도를 낮추어서까지 남에게 받아들이기를 구하고 있다. 사야, 너의 뜻이 원대하지 못하구나!”


 ⑪<사기>공자세가

 顔回曰 夫子之道至大 故天下莫能容. 雖然 夫子推而行之 不容何病 不容然後見君子! 夫道之不脩也 是吾醜也. 夫道旣己大脩而不用 是有國者之也. 不容何病, 不容然後見君子! 孔子欣然而笑曰 有是哉顔氏之子! 使爾多財 吾爲爾宰.


 안회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원대하므로 천하의 그 누구도 선생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추진하여 그것을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 군자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도가 닦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치욕입니다. 그러고는 도가 잘 닦여진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은 나라를 가진 자의 치욕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서 군자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공자는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그렇던가, 안씨 집안의 자제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가! 자네가 만일 많은 돈을 번다면 나는 너의 재가 되겠다.”  


 ⑫학이편 14장

 子曰 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집-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때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하며, 도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질정(質正)한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만 하다.”


 한-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배부르게 먹는 것과 안락한 거처를 바라지 않는다. 또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삼가며,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가 지도를 받는다. 이 정도가 되어야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⑬옹야편 20장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집-번지가 지(智)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智)라 말할 수 있다.” 다시 인에 대하여 묻자, 또 말씀하셨다. “인자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물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사람의 도리를 지키려 애쓰며, 신을 공경하되 의지하지 않으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어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먼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노력한 뒤에 그 결과를 바라면 어질다고 할 수 있다.”

 

 ⑭자한편 27장

 子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집-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공자가 말하였다. “추운 겨울이 온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⑮옹야편 9장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집-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


 한-공자가 말하였다. “어질구나,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며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것을 남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변함없이 그 생활을 즐기는구나, 어질구나, 안회여!”

 

 (16) <장자> (임동석 역주) 20편 ‘산목’

 顔回端拱還目而窺之. 仲尼恐其廣己而造大也 愛己而造哀也 曰. 回 无受天損易 无受人益難. 无始而非卒也 人與天一也. 夫今之歌者其誰乎?


 안회가 두 손을 모아 단정히 하여 눈길을 떨어뜨린 채 그를 바라보자, 공자는 그가 자신을 존경한 나머지 이 재난이 너무 크다고 여기거나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슬퍼할까 걱정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회야! 하늘의 재난을 받아도 이를 인정하기는 쉽지만, 사람의 세상에서 이익을 생각하며 마음이 편하기란 어려운 것이란다. 모든 일은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으니, 사람이란 하늘과 하나란다. 지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그 누구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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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
한겨레신문에서 20여년간 여러 부서를 돌며 기자 생활을 했으나 그리 유능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현재 한겨레라이프 편집장이다. 만 50살에 문고리 더듬듯 지천명의 뜻을 새기다가 내친 김에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공부도 일천하고 생각도 앝은데 마음만 앞서서 덜컥 소설이란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공자 이야기를 쓰게 됐다. 좋은 뜻으로 저지른 일이니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이메일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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