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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기념은 잘 하는데, 순교는 언제?

박기호 신부 2013. 07. 10
조회수 18406 추천수 0

순교자 기념은 잘 하는데, 순교는 언제 하려는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 축일에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는 서소문 유적지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작년 이래 주교님의 강론에는 순교의 신심과 더불어 서소문 성지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만이 아니고 각 교구마다 순교자 유적지 개발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성 문제에 있어서 유적지라고 말하기는 검증이 더 필요한 장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순교의 사실과 약간의 인연을 근거로 해서 성지라고 강조하면서 신자들의 순례코스가 되기를 원하는 의도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순교자의 신앙과 은거, 피신 생활이나 체포되어 이송되고 처형되고 시신을 옮기고 묻히고 이장하는 과정에 연루된 추측 내용들이 있겠지요. 그러면 먼저 관심있는 신부를 지명해 교회사 자료 뒤지는 작업을 맡게 할 것이고 관련 순교 사화록을 정리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곳의 성인 묘소를 이장해 와서 성지대열을 만든 곳도 있지요.

이런 식의 정리에는 뻥튀기도 많이 들어가겠지요. 만약에  순교사를 뻥튀기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자신의 신심이나 성화를 위한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신자들에게 픽션을 팩트처럼 전하고 성지화 욕구를 관철하려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토목 작업 하고 조경하고 조형물을 세우고, 주차장과 센타를 세우고 홍보하고... 등의 순서로 가겠지요. 암튼 이런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김대건 신부님과 전봉준 장군과 조선조의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한 분은 생각 안남-)들이 모였습니다. 저기 하늘나라에. 

“그대가 처형 당한 이유는 무엇인고?”

충신 성삼문: 단종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하려고 수양대군 옹위를 반대했습니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그대의 정파가 정쟁에서 숙청을 당한 거로군! 인간의 욕망과 야망과 탐욕은 합법적 살상도 서슴치 않아. 내가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렇게 강조했는데... 참 마음 아픈 일이네.” 

전봉준 녹두장군: 저는 동학도로써 농민들을 수탈하여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와 일본 약탈자들로부터 백성들의 사람됨을 확보하고자 농민봉기를 일으킨 죄로 처형당했습니다. 우금치 전투에서 1천 여 명 이상이 죽었어요.  

“내 알고 있네, 정의로운 세상이 내 뜻이라서 관심이 많네, 어쩌겠는가. 통치자와 국가란 늘 폭력에 의지한다네.  그래도 세상은 진보해 가려는 힘이 있으니 산 자들에게 맡기고 너무 상심하지 말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저는 이 땅에도 그리스도 교회를 도입하고자 했는데 조선조의 성리학과 유교적 관습과 신념에 어긋난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했습니다. 2만명이 넘는 당신의 양떼들이 죽어갔습니다. 

“지배욕이란 게 그런 거라니까!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의 고수를  위해서 타종교를 박해하면서 그것을 진리로 알고 있어. 왜 사람들은 신들에게 서열이 있고 서로 싸운다고 생각할까?  우리 신의 세계에는 그런 다툼 자체가 없거등... 서로가 한 몸이니까. 참 답답하네,” 
"그대들은 모두가 정의와 진리와 상식을 위해 살았고, 그 신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된 것이오. 그대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목숨 바친 충절과 가치는 크고 작을 수도 없고 귀하고 덜 귀하고가 없느니, 그대들의 희생을 역사에 길이 남겨 후학들이 배우고 따르게 할 것이오.“ 

순교편집.jpg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봉준 장군, 김대건 신부, KBS 드라마 <사육신>의 성삼문과 신숙주 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축일에 생각합니다. 김대건 사제가 망나니 칼날에 목이 잘려 처형되었던 새남터 용산 뱃머리는 이미 그보다 250여 년 전, 사육신들이 능지처참을 당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남종삼 요한 등 44명의 순교자가 처형당했던 서소문은 녹두 전봉준 장군이 역도죄로 처형되었던 바로 그 곳입니다. 

진리 앞에서 동학 서학이 무슨 이유가 되겠습니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건 이 땅은 하느님의 진리와 민중의 삶을 위한 정의의 투쟁으로 피를 흘린 거룩한 성지임을 순교의 역사임을 각성합니다. 이 땅에는 진리와 자유, 정의를 따르는 이들의 우뚝 선 산맥이 있고 그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희생의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생각합니다. 

삼별초, 사육신, 지조와 절개를 생명처럼 여겼던 선비들, 항일 독립군, 그리고 노동자를 위해 분신한 전태일 열사와 박종철 이한열 등 끝없는 죽음의 행렬... 

우리가 순교자 신심을 앙양하면서 이들을 두루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들이 목숨을 바쳤던 이유를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순교 신심은 절름발이 반쪽짜리 신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소문과 새남터 성지를 단장할 때 우리가 사육신을 기념하는 비석 하나라도 세우고, 전봉준 장군의 동상 하나 정도는 함께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안맞지요? (2013. 7.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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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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