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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모기, 거미 그리고 '그 분'

휴심정 2015. 09. 09
조회수 8577 추천수 0

                    


   나, 모기, 그리고 거미
                                               
                      김형태 <공동선> 발행인·<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입추 지난 지가 보름, 어제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습니다. 그래도 한낮 햇살은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콘크리트 골목길이며 집들을 뜨겁게 달굽니다.


아침에 운동을 하는데, 마당 국화잎들 사이 거미줄에 늘 매달려 있던 연두색에 검정 빛 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 주말 이틀 보지 못한 사이에 거미가 죽어 말라비틀어져 겉껍질만 희미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그 위에 조그만 새끼거미가 죽은 어미의 지난 봄 새끼 때 모습 그대로 매달려 있더군요. 윤회(輪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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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에서


영혼이 그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에 다른 것으로 몸을 바꾸는 게 윤회이니 거미 같은 미물에게는 윤회가 없다느니 하면서, 감히 우리 머리로는 잘 알 수도 없는 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건 부질없어 보입니다. 죽은 저 거미는 지난 봄 부터 가을이 다되어 저렇게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로 남을 때까지 내 눈앞에서 모기며 하루살이며, 벌 같은 저보다 작은 벌레들을 숱하게 잡아먹었습니다. 나는 그 죽음과 삶의 순간들을 여러 번 목격했더랬습니다.


내가 운동하며 내뿜는 숨결과 땀 냄새를 따라 모기가 피를 빨러왔다가 덜컥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 칩니다. 거미는 줄이 흔들리자마자 득달같이 내려와 거미줄로 칭칭 포박을 하고는 모기의 몸속에 빨대를 꽂고 진액을 빨아 껍데기만 남깁니다. 그러길 여름 내내. 그리고 이제 새끼 까서 제 거미줄에 저렇게 매달아 놓고 갔습니다. 저 거미 개체 자체는 아주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없음(無)으로.

그리고 이제부터 저 새끼거미가 그 어미와 똑같이 숱한 벌레를 잡아먹다가 늦은 가을 어느 날 제 어미처럼 저리 희미한 껍데기로 남아 제가 처 놓은 거미줄에 매달려 있겠지요.


사람을 비롯한 모든 개체들은 저 자신이 영원히 살아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래 윤회니 구원이니 하는 생각에 기대어 그 꿈을 이어가 보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나 말은 이 세상의 실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윤회나 구원의 주인공은 누구냐 물으면 그 답이 간단치 않습니다. 이 세상 전체이며, 이 세상 밖까지 아우르는 전체의 전체. 이를 두고 ‘신’이니, ‘하느님’하고 이름 지으면 자칫 그 신은 그 전체의 일부인 개체 우리의 ‘상대’가 되는 또 다른 ‘객관’의 자리에 떨어져, 나, 이 ‘개체’의 안녕과 영원을 보장해 주는 종에 불과하게 되고 맙니다.


힌두교의 ‘브라만’이나 불교의 ‘불성(佛性)’이란말도 ‘말’인지라 ‘하느님’이란 말과 비슷한 역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힌두교인들이 제일 큰 가르침으로 받들어 모시는 <바가바드 기타>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일찌기 있지 않았던 때가 없으며, 너도, 저 왕들도, 또 이 앞으로도 우리가 있지 않게 될 때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전체의 전체 ‘브라만’이 개체인 사람으로 내려오신 크리슈나를 가리킵니다. 기독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전체의 전체이신 ‘하느님’이 개체인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크리슈나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나 “왕들”은, ‘이기심’이라는 적과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나’그리고 우리 모두, 이 불쌍한 개체들을 뜻합니다.


<바가바드 기타>의 이 구절에 대해, 인도 대통령까지 지낸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 이렇게 주석을 했습니다.
“자아를 지닌 이 수많은 개체들의 존재는 이 경험 세계의 실상이다. 이 개체들은 처음에는 아예 없었지만 나중에는 완전한 존재에로 귀일한다.”


불교의 윤회라는 생각은 본디 힌두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원후 800년경 인도의 최고 철학자 상카라는 <기타>의 이 구절을 두고 “신 (브라만)이야말로 오직 유일한 윤회의 주체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개체들이 나고 죽으며 윤회를 거듭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이 수많은 나고 죽음, 윤회의 주체는 오직 전체의 전체이신 그 분 뿐이라는 겁니다. “그 분”이라고 말해놓고 나면 그 분은 나와 대비되는 객체인 또 하나의 개체라는 생각을 이끌어 내니 “그 분‘이라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부를 수도 없고.
 “...”
그 분께서 그냥 전체의 전체로서 아무 일도 않고 계셨더면 이 수많은 개체들의 나고 죽음도 없었을 터이지만 당신이 이 개체들을 낳으시니 이 개체들의 속성상 자기를 위하지 않을 수 없어, 이 세상이 이기심들의 전쟁터가 된 것은 당신 창조의 필연적 결과인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주님이신 크리슈나 곧 예수께서는 이 개체가 근원이신 전체에 돌아가려면 이기심을 없애라 가르치시니 개체들은 불쌍한 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타> 4장 7절을 보면, 그래서 그 분께서는 바름이 무너질 때마다, 이기심으로 야기된 이 바르지 않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고 합니다. Avatara, 화신(化神). 전체가 개체를 구하기 위하여 개체로 몸을 나투신 화신.  크리슈나, 석가세존, 예수가 바로 이 화신입니다.
힌두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 <기타>를 해설하면서 예수야말로  사람들이 입은 상처, 고통을 떠안은 분이고, 이 피조물들이 처해진 조건, 상황을 슬퍼하고 직접 끌어안으신 분이라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의 조건을 끌어안으신 분, 석가세존은 그 조건을 잘 헤아려 분석하고 그 조건의 실상을 가르쳐 주신 분.


이 개체 ‘나’는 수많은 조건들이 잠시 모여 이루어진 연기(緣起)적 존재일 뿐이니, 나 스스로에서 유래되어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전체의 전체’의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존의 가르치심대로 나를 잘 분석해보면 나는 공(空)하므로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개체들은 개체의 존재론적 한계에 갇혀, 이기심을 걷어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이기심에 허덕이며 다른 개체를 핍박하는 개체의 조건, 실상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파하시고 떠안으신 예수.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개체’가 실은 존재 저 깊숙이 전체의 모습 (Imago Dei 하느님의 모상) 을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라 하셨고, 세존께서는 네 안에 있는 불성(佛性)을 밝히 알라 하셨고, 힌두교에서는 브라만이 이 개체 속에 아트만으로 들어 있다 가르칩니다.


bom22.jpg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에서


개체는 개체에 불과하여 영원을 살 수도, 이기심이라는 ‘조건’에서 해방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개체, 내 안에 계신 전체 그 분은 나를 이기심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다른 개체 안에도 계신 바로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내일도 우리 집 마당 한구석에서는 모기가 내 피를 빨려 달려들고, 거미는 또 그 모기를 꽁꽁 포박하여 빨대를 꽂을 겁니다. 그래도 전체가 갈라주신 이 개체들, 나와 모기와 거미는 그저 당신의 품안에서 잠시 놀다가 당신께로 돌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이랍니다.              



*이 글은 <공동선 2015. 9·10월호>  (http://www.comngood.co.kr/article_view.htm?selected_no=979)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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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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