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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가정의 비결

박기호 신부 2015. 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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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자들의 치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루가 6,39~42)



도움이란 것은  두 가지 인데  ‘남을 돕는 것'과 ‘도움 받는 것’ 입니다. 내가 제대로 알거나 할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고 모르거나 할 수 없는 것은 도움 받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능력이 없는 데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히려 능력도 안되는 데도 아는 척 하면서 도와주겠다고 나서거나 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참 늘 누군가를 가르치고 아는 채 하고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물건이라서 제 눈에 들보가 끼어 안 보이는데도 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기 교만이 자신을 속이는 현상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어떤 소경이 '누구 없소? 내 눈에 티가들어 따가워요. 훅 좀 불어서 꺼내주세요?' 그는 보지를 못하는지라 곁에 있는 사람이 소경인지 모르고 말한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소경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아예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당신 눈에 티를 빼주는 일이나 길을 인도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지압을 할 줄 알고 침을 놓는 일은 잘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지요.”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시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는 일만 하라는 것, 뭐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를 제대로 알아 내 부족함을 통해서 타인의 허물을 너그럽게 봐주고 용서할 수 있어야지 자신은 완전한 사람처럼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로 자신을 먼저 심판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 심판받게 됩니다. 타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절대 옳고 진리의 기준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지요.


나의 믿음이 진리인가 거짓인가를 식별 방식은 간단합니다. 그 기초로 행한 태도에서 평화가 나타나는가? 갈등이 나타나는가? 를 보면 답이 됩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나 ‘공동체의 평화’는 모든 진실을 검증하는 리트머트 실험지입니다.


festival1.jpg

*평화로운 공동체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중에서


공동체 평화와 조화로운 관계의 길은 나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타인을 가르치고 인도하려는 데 있지 않고,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 인도받고 도움을 청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나를 정확히 알면 내가 공동체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도움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해병특공대 소재의 영화가 많았는데 인상 깊은 장면 하나가 아직도 기억됩니다. 부대가 모두 퇴각해 버린 전쟁터에서 낙오된 부상병들이 눈을 다쳐 보지 못하는 병사가 다리를 잃어 걷지 못하는 병사를 엎고 계곡을 내려옵니다. 아, 자신의 발을 전우에게 내어주고 전우의 눈을 얻어 하나가 되는 상생! 군대는 자신들을 버렸지만 그들은 전우와 함께 자신들만의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위력입니다.


공동체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신비체임이 분명해요. 옛날의 선생님들은 공동체 의식을 위한 놀이를 많이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학교 운동회 때에도 눈감고 친구를 엎고 공을 몰아 돌아오는 그런 놀이도 생각나고...


한 가정에 정신장애자 셋이 있어 함께 살 경우에는 정상인보다 더 조화롭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실증 사례는 볼수 없고 이론으로만 그렇다는 건데, 저는 실제하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가정방문을 하면 그 때부터 한 사람은 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고 한 사람은 머리를 감고 또 한 사람은 부엌으로 가서 덜거덕 거립니다. 그 남매들은 다툼도 없고 전혀 어려움을 모르고 노모까지 모시고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그들 행동의 특징은 웃지도 울지도 않으며 형제에게 강요하는 것도 없고 형제가 자신에게 무엇을 하건 거부하지 않고 야단치지도 않는 것입니다.


형제나 이웃이나 타인을 심판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삶에는 평화가 있는데 옳고 그름을 따지고 방식을 강요하고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데는 늘 불화가 발생하지요.


정신장애란 무엇일까? 배우고 아는 것이 많은 정상인은 늘 시기와 경쟁과 불만족으로 갈등과 불화 속에 살아간다면 우리는 장애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저! 전쟁터의 부상병처럼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는 능력을 배우고 장애자에게서 평화의 비결을 배웁시다.


공동체 마을에는 어려운 일 억울한 일 마음 다쳐 상처받은 이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고요. 마을에 출중한 치유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공동체 자체가 서로에게 환자가 되고 의사가 되는 상호 치유의 마을입니다. 공동체는 성령의 신비체이기 때문입니다. (2015. 9. 11).


오늘은 대철이가 아홉 걸음을 걸었다. 그래 아장아장 걸어서 하늘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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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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