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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가톨릭, 식민지의 예수

이길우 2016. 01. 26
조회수 13524 추천수 0
  [필리핀의 검은 예수] <1>
 스페인 식민지 멕시코서 옮겨져 면죄·기적의 상징으로
 침략자 요새 정문에 ‘스페인 기병에 깔린 예수’ 조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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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예수이다. 피부가 칠흑처럼 검다. 기존의 한국 성당에서 보는 예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검은 피부의 예수는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의 키아포 성당은 지난 21일 금요일 오후 수천명의 카톨릭 신자들이 강론을 듣기 위해 성당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성당에 못 들어간 신도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중계되는 신부의 강론을 빽빽히 서서 듣고 있었다. 영상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이지만 누구도 짜증스런 표정이 아니다. ‘금요 특별 미사’다. 성당의 제단 중앙에는 검은 예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예수는 한쪽 무릎을 반쯤 꿇고 있다. 인자한 표정이 아니라 고통에 일그러져 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신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같이 지자고 호소하는 듯 하다.

10.jpg » 블랙 나자렛의 성지인 마닐라 카이포 성당의 예배 모습

 검은 예수는 이렇게 호소한다. “너의 주님, 너의 하느님인 나를 보아라. 내가 채찍질을 당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며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를 보라. 내가 이런 고통을 견디는 것은 나의 탓이 아님을 기억하라. 너를 위해,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네가 참된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면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너의 어려움, 너의 필요와 문제를 나에게 말해다오. 나는 늘 너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화재·지진·포화 속에서도 손상 안돼 ‘신비의 힘’
 이 검은 예수상은 성당 한편 외부의 천막에도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신도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수건이나 깨끗한 손으로 예수의 손을 잡고, 닦아준다. 검은 손에 노랗고, 하얀 손이 겹쳐진다.

15.jpg » 해마다 1월9일 카이포에서는 블랙 나자렛 축제가 열린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으로 필리핀 가톨릭 신도들은 블랙 나자렛에 대한 경외심은 거의 광적이다.

 이 예수는 ‘블랙 나자렛상’으로 불린다. 예수께서 나자렛 사람이기에 ‘나자렛으로 부른다. 필리핀 신도들의 이 블랙 나자렛에 대한 경외심은 거의 광적이다. 해마다 1월9일 카이포에서는 블랙 나자렛 축제가 열린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남자들이 이 조각상을 들것에 싣고 줄을 연결한 채 거리를 행진한다. 길거리 사람들은 상에 연결된 줄을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죄를 용서받고 소원이 이뤄지며,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필리핀의 가톨릭은 스페인에서 전래됐다. 스페인에는 검은 예수상이 옛날부터 있었을까? 아니면 필리핀에서 검은 피부를 지닌 성자가 있었나?

13.jpg » 블랙 나사렛에게 소원을 비는 참배객들

 궁금했다. 이 블랙 나자렛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왔다. 1606년 스페인 정복자와 함께 범선을 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사제가 이 성상을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 색깔은 제작 당시 짙은 갈색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갈색 예수 상이 항해 도중 배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전혀 타지 않고, 피부색이 더 검게 그을렸다고 한다. 이후 필리핀에 자리 잡은 이 성상은 수차례의 성당 화재와 지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이 검은 피부의 예수는 신비의 힘을 지닌 조각물로 믿게 되며 성지 역할을 했다.
 침략자의 손에 만들어졌고, 침략자의 손에 운반됐고, 침략자의 손으로 자리 잡은 블랙 나자렛에 대해 필리핀 가톨릭 신도들은 반감을 갖지 않았을까?

독립운동가가 등 돌려 총살당한 이유 
 이런 의문은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1861~1896)이 수감됐다가 처형된 마닐라 시내의 산티아고 요새 정문에서도 강하게 일었다.
 이 요새 감옥에 투옥됐다가 1896년 12월30일 공개처형된 호세 리잘을 기념하는 기념관에 들어가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형 벽화가 있다. 공개 처형된 순간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호세 리잘은 사형 집행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등지고 있다가 등에 총을 맞고 숨졌다. 벽화는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들의 총구에서 나온 총탄이 그의 몸을 관통하는 순간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41.jpg » 호세 리잘 기념관 벽화에 있는 총살 당시 모습

  두 손을 뒤로 묶힌 채 호세 리잘은 몸이 앞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다. 조국의 땅을 굳게 딛고 있던 두 발은 총탄이 등에 박히며 뒷꿈치가 들렸다.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호세 리잘이 사형당한 이유보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소원 때문이다. 그는 사형관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제발 등지고 사형당하게 해달라.” 그의 마지막 소원은 받아들여졌다. 결코 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무서워했기 때문이 아니다. 죽은 순간에도 스페인 군인들을 향해 무릎을 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37.jpg » 필리핀 독립영웅인 호세 리잘이 투옥됐던 마닐라 산티아고 요새 정문에 새겨진 조각물

 필리핀은 그가 사형당한 12월30일을 국경절로 지정해 기념한다. 그런데 이 요새의 정문에 높게 새겨진 조각물이 눈에 띈다. 늠름한 스페인의 기마병에 한 남자가 고통스럽게 깔려있다. 누굴까 유심히 보니 바로 예수이다. 16세기에 스페인인 손에 의해 지어진 이 요새는 ‘성 야고보’의 이름에서 따왔다. 요새 한 켠의 강가에는 위에 쇠 창살을 한 비교적 큰 시멘트 구덩이가 있다. 바닷물이 몰려와 강물의 수면이 높아지고, 이 구덩이에 물이 차면 처절하게 익사를 당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니리 일본의 잔악한 손길 때문이었다. 약소민족의 아픔이 진하게 전달된다.

발자국.jpg » 스페인 정복자들이 만든 요새 뜰에 길게 새겨진, 호세 리잘이 감옥를 걸어 나와 처형장까지 가던 발자국.

 스페인 정복자들이 만든 이 요새의 뜰에는 길게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호세 리잘 감옥를 걸어 나와 처형장까지 가던 발자국을 납으로 발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촘촘한 발자국이다. 호세 리잘의 키는 150㎝ 정도로 크지 않다. 작은 키에, 형장으로 가는 발자국이 성큼성큼했을까?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흔적, 동상과 망고나무
 다시 이 요새의 정문 조각물 이야기를 하자. 예수가 가장 밑에 깔린 이 조각상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의 아픔을 예수가 대신한다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비록 침략자들이 전해준 가톨릭이지만, 필리핀은 인구 약 1억명 가운데 83%가 가톨릭 신도이고, 개신교 9%, 이슬람교도는 5%뿐인 동양 최대 가톨릭 국가가 됐다.
 필리핀 세부에서는 24일부터 일주일간 전세 계 71개국에서 온 1만5천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성체대회를 연다.

7.jpg » 블랙 나사렛의 손을 만지며 기도하는 장봉훈 청주교구장

 한국에서도 장봉훈 청주 교구장을 대표로 41명의 대표단이 참가해 서로의 믿음과 희망, 사랑의 체험을 나눈다. 특히 세부는 마젤란이 1521년 성직자들과 함께 필리핀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다. 필리핀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파한 마젤란은 가톨릭을 거부하는 원주민들과 전투에서 세부 도착 20일만에 전사했다.

김대건.jpg » 롤롬보이의 김대건 성당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조형물과 망고 나무로 만든 예수상.

 필리핀은 한국의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5살의 어린 나이에 마카오로 천주교 유학을 왔다가 마카오 내란을 피해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가 공부하던 롤롬보이의 김대건(안드레아)신부 성당 성지 순례는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의 김대건 신부가 그 앞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 편지를 읽으며 울던 망고 나무가 있다. 성당 제단의 십자가도 망고나무 가지를 다듬어 만들었다.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하다.
 세부(필리핀)/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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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종교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이메일 :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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