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우리시대 예수를 따른다는건 어떤것일까

박기호 신부 2016. 12. 02
조회수 5135 추천수 0
평화의 예수를 따르기에
“내 말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마태 7, 21~27)  


십자가-.jpg


마태오 복음의 백미는 산상설교(5~7장)과 공동체 설교(18장)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권위를 부여하고 따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새로운 가르침인 산상설교와 공동체 설교에 평화로운 삶의 해법과 권위를 부여하고 따릅니다.    

설교를 포함하여 무릇 가르침이란 실천하지 않으면 영향력을 갖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나 경전이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실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로 들었거나 듣고 감동을 가졌던 것에 관계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마치 모래성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의 마무리를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의 비유로 못 박아 말씀하십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산상설교가 도루묵이라고.... 크리스챤 공동체들은 산상설교를 공동체 헌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크리스챤 공동체라고, 예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한결공동체 김태룡 목사와 가족들 세 분이 마을에 찾아오셨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서 사내 아니들은 몇 년 후면 군대에 가야할 나이가 되는데,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로서 병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야 하는가? 결정을 하고 지금부터 교육으로 강조해야 하는데 박신부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러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국민의 의무와 국가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더 큰 것이니 마땅히 평화의 왕이신 분을 따라 병역을 거부해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김목사님도 내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 바를 공동체 사목자들과 나누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종교사회, 우리 교회도 국민의 의무를 강조하고 사목의 사각지대를 보살피고자 군종신부도 보내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뜻은 분명히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죽음과의 일치성에 분명히 맞지 않습니다. 중세 유럽교회는 컬럼버스의 대륙침략을 비롯해서 강대국 식민지배 점령정책에 편승하여 선교해 왔습니다.   

식민지 파견 군대에 끌려간 병사들의 고백성사 성체성사도 집전해 주고 기도생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요. 식민지배 정책 자체를 막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전쟁과 식민지 군대에 동원된 그리스도인의 성사생활을 챙기고 돌보겠다는 것은 권력에 무력하고 권력이 저질러 놓은 상처를 씻어내는 일만 하는 교회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방화범을 막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고 불에 타 죽은 사람의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라 구분되어야 하는가? 그것을 정교분리(政敎分離)라고 하지요. 그러나 삶의 모든 차원이 사회로 구성되어 있는 한 정치와 신앙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국민이고 신앙인인데 그 피해는 모두가 받아야 하는 것이니 정치적 행위인 선거와 투표행위에 신앙과 정치가 하나인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이라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없는 거겠지요.   

정치 권력자는 정교분리를 강조하고 스승을 세상 권력의 십자가에 빼앗긴 교회는 모든 것을 생명의 차원으로 강조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금융도 예술도 모두 생명이고 삶의 차원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정치는 신앙을 분리시켜 자신들의 지배 영역을 확보하려 하고 신앙은 정치를 평화주의의 복음정신으로 운용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길은 강도가 침탈하지 못하도록 더 강한 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챔피언은 무너지는 날이 오듯이 무장이란 항상 더 강자를 만들어 내고 그래서 전쟁은 그칠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는 생명에 위해 되는 모든 것을 버리고 평화의 길을 찾는 것을 강조합니다. 무사의 칼은 백 명의 목숨을 처치하는데 용맹하지만 신은 단 한 명의 목숨을 살리시기 위해서 노심초사하심을 예수님이 아십니다.   

군대란 전쟁을 전제로 한 조직이고 그렇게 일상을 훈련시킵니다.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지 토끼사냥을 연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단 하루도 그칠 날이 없이 내전과 침략전이 지속되고 핵무기와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평화가 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칼을 든 자는 칼에 죽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에는 원수 사랑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많지만 어디에도 보복하고 선제공격 하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기독교와 무슬림의 신은 다른가기독교와 무슬림의 신은 다른가

    박기호 신부 | 2017. 03. 24

    ‘인샬라!’는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 사제서품을 받는 후배들아사제서품을 받는 후배들아

    박기호 신부 | 2017. 02. 24

    사제생활에 넘어질 수 있지만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 하느님은 하느님일뿐!하느님은 하느님일뿐!

    박기호 신부 | 2017. 02. 05

    내가 믿는 믿음에 대한 반성  10년도 넘었을 건데, 터키 중서부 지방을 보름 동안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니데’ 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민박을 했어요. 물론 무슬림들이지요. 그 가정의 대학3년, 고3, 초등 6년생인 3남매와 대화를 하는...

  • 왜 성모마리아를 숭배할까왜 성모마리아를 숭배할까

    박기호 신부 | 2017. 01. 23

    천주교는 마리아의 교회로 이단과 같다고 합니다.

  • 공동체 사제로서 부끄러운 이유공동체 사제로서 부끄러운 이유

    박기호 신부 | 2016. 11. 22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으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마태 9,9~13)